"비보도를 전제로 기자에게 격의없이 이야기하느라 그랬다." 강희락 경찰청장이 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해 자신의 성매매 발언에 대해 사과한 내용이다. '편하게 한 이야기', 강희락 청장의 발언을 보도하지 않은 언론의 인식도 그다지 다르지 않을 듯하다.
<프레시안>의 첫 보도 이후 현장에 있던 <한겨레> 기자가 사회면 머리기사로 강희락 청장의 발언을 보도한 것 외에는 일간지 중 강 청장의 발언을 보도한 언론이 없었다. 몇몇 언론은 강 청장이 국회 행안위에 출석해 사과한 것을 보도하면서도 정작 그의 문제 발언은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시민의 '상식'보다 출입처의 '어우렁더우렁'에 취했다?
언론의 침묵은 경찰청장 간담회에 참석했던 기자들이 문제의 그 발언에 대해 '비보도'를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사실 기자들의 '비보도' 결정은 강희락 청장의 발언이 가진 폭발력과 문제점을 의식하고 있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현장 기자가 <프레시안>의 취재에 답한 것처럼 "별 문제 없다"고 생각했고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라고 느꼈다면 '비보도'가 아니라 기자들의 자율 판단에 따라 보도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어야 맞다.
현장에서도 "강 청장의 발언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기자가 있었다. 그러나 경찰청 기자단은 '청장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봐주자'는 분위기에서 비보도를 결정했다고 한다. 또 <프레시안>의 보도 다음날 <한겨레>의 경찰청 출입 기자가 직접 기사를 썼음에도 그 이외의 언론에선 강 청장의 발언을 고발하는 기사는 없었다.
강 청장의 발언의 의도는 분명했다. 청와대 행정관의 성매매 사건에 집중하고 비판하는 언론에게 "너희도 마찬가지 아니냐" 또는 "성접대? 그거 별거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설령 이 자리에 있었던 기자들이 강 청장과 막역한, 성 접대 문화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남성들뿐이었더라도 '기자(!)'라면 정색하고 "무슨 말이냐"라고 반문해야 맞았다.
혹시 이미 그 자리에는 '권력과 언론' 간 긴장 관계보다 '형님과 동생' 간의 유대 관계가 더 짙게 드리워져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너희도 똑같지 않느냐'는 희롱에 침묵함으로써 이들은 '그렇다'고 응답한 것일까.
권력과 가까우면 정보는 늘어도 비판의식은 약해진다. '다 아는 사람끼리 왜 그러냐'는 분위기는 비판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어느새 '성매매는 범죄이고 경찰청장은 더욱 그러면 안된다'는 일반 시민의 상식보다 출입처의 논리와 이해관계를 먼저 생각하고 '이들과 잘 지내야 한다'는 '어우렁더우렁' 논리가 앞섰다.
실제로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출입처 동조화' 현상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기사가 나간 이후 타사의 여러 기자들은 "당연한 기사를 썼다", "현장 기자들이 판단을 잘못한 것 같다"는 메일을 보내 기사의 문제의식에 적극 공감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현장 기자의 분위기는 달랐다. 한 기자는 "현장에 기자들이 있었는데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기사화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느냐"며 "출입 기자와 청장이 '비보도' 하기로 했으니 '없던 일'이 된다"며 <프레시안>의 취재에 마뜩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강 청장의 발언에 대한 '비보도' 결정과 이러한 기자의 반응은 '출입 기자들이 담합해 침묵하면 국민들은 절대 모른다'는 권위의식이 깔려 있다. 그리고 기자들의 이러한 분위기는 당연히 경찰청의 '출입 기자만 잘 관리하면 된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오죽하면 경찰청 관계자가 "경찰청장은 그런 이야기한 적 없다. 출입 기자들이 다 여기 있는데 무슨 이야기냐"며 출입 기자 핑계를 대고 거짓말을 했겠는가?
접대의 결과는 '성공'?
"기사가 나가면 법적 대응하겠다"던 엄포와는 달리 기사가 나간 후, 경찰청에서는 항의 전화가 온 게 없다. 대신 강희락 경찰청장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해 자신의 발언을 해명하고 거듭 사과했다. 그는 "기자들이 피곤해보여서 모텔 키를 나눠줬다"거나 "술접대는 사비로 호프에서 했다"는 등 향후 접대 논란에 휘말린 이들에게 '전형'이 될만한 변명들을 여럿 만들어냈다.
그의 코미디 같은 변명을 보면서도 경찰청장의 발언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언론은, 스스로 '대변인'인 양 경찰청장의 발언을 덮어주려 했던 언론은 여전히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혹시 문제의 그날도 '덮어준' 대가로 술 한 잔 거하게 얻어 마시기라도 한 건가? 그날 마신 술이 아직도 덜 깬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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