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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오바마 리더십, 왜 흔들리나?

[안병진의 '오바마와 미국']<1> 그가 '루즈벨트'가 될 수 없는 까닭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의 '오바마와 미국' 연재를 시작합니다. 미국 전문가인 안병진 교수가 격주 수요일 집필하는 이 코너에서는 세계인의 관심과 기대 속에 출범한 오바마의 미국호가 앞으로 어떤 행로를 걸을 것인지 추적하면서, 그 변화가 한국과 세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지금 워싱턴 정가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회의와 불안감이 만연해 있다.

진보의 상징인 폴 크루그먼 교수와 대표적 보수 정치인이며 한 때 초당적 내각의 일원으로 거론되기도 했던 저드 그레그 상원의원이 최악의 경우 오바마 시대의 미래에 대해 내린 공통의 결론은 거칠게 요약하자면 '미국의 파산'이다.

오바마 시대의 실패가 단지 대통령 지지율의 추락이나 재선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파산이라는 충격적 결론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는 그 어느 미국 대통령도 직면하지 못한 악몽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지금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오늘날 미국 대통령직이 감당해야할 끔찍한 무게감에 새삼 안도의 한숨을 내쉴지도 모르겠다.
▲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로이터=뉴시스

오바마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이유에 대해 어떤 이들은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3월 22일 부시 시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어두운 유산을 청산하는 데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그의 이중성을 비난했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의 그 어느 역대 대통령이 의회도 통제하기 어려운 괴물로 자라난 미사일방어(MD) 체제나 관타나모 기지에 대해 그만큼 전향적인 태도를 취한 적이 있는지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21세기 현실에서 미국의 대통령은 낭만적인 슈퍼맨 영웅주의보다는 영화 <다크나이트> 속 배트맨의 고뇌에 더 가깝다는 것을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다.

또 어떤 이들은 오바마가 우연히 경제적 위기나 이라크 전쟁의 수렁 속에서 당선된,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임을 지적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바마의 탁월한 인수위 활동과 내각 인선, 예산안 '광속' 통과 등에 환호성을 보낸 것을 쉽게 잊어버린다.

시장근본주의에 대한 반성이 없다

오바마가 부단히 비틀거리는 보다 근본적 뿌리는 다른 곳에 있다. 그 이유를 알려면 오늘날 오바마 정부의 혼과 콘텐츠를 상징하는 두 권의 책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미국에 대한 애국적 혼을 담은 <담대한 희망>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비서실장이 미국 최고의 정책통 브루스 리드와 공저로 미국 개혁의 미래 비전을 총결산한 <플랜>이다. 이 두 권의 책은 거친 당파성과 무모함에 의해 일그러진 미국의 가치를 복원하기 위한 오바마와 측근들의 진정성과 내공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오바마 신드롬이 불기 전 그 책을 읽었던 필자를 무척 놀라게 했던 것은 그 두 권의 책 어디에도 미국의 보수와 진보가 초당적으로 수용한 시장 근본주의가 얼마나 민주공화국을 극심히 타락시켜왔으며 오늘날 미국이 어디까지 망가져 있는가에 대한 냉엄한 현실인식을 발견하기란 어렵다는 사실이다.

아마 오바마의 비서실장 램 이매뉴얼이 오늘날 자신의 책을 다시 펼쳐본다면 그 책에 '금융규제' 와 '이라크 전쟁 반대' 라는 핵심 키워드가 존재하지 않음에 무척 부끄러울 것이다.

이 점에서는 오바마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당시 오바마 후보는 극단적이었던 부시 시대에서 벗어나 미국이 국내외적으로 당파성을 버리고 건전한 상식을 회복하고 견제와 균형을 부분적으로 강화한다면 잃어버린 위대함을 되찾을 수 있다고 소박하게 믿고 있었다.

퇴조기의 제국에서 교훈 찾아야

오바마와 측근들이 취임을 앞두고 위대한 진보주의자였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을 집중적으로 벤치마킹하고자 했던 것은 상징적이었다. 루즈벨트나 케네디는 모든 개혁적 대통령들의 영원한 꿈이다.

그들과 같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고자 강렬히 원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그린스펀, 루빈 등에 의해, 월가의 균형예산에 대한 협박에 직면하면서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다. 마키아벨리가 고전적으로 지적한 것처럼 지도자는 시대의 제약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균형예산으로 상징되는 대중적 보수주의 시대가 종료되면서 운명의 여신은 오바마에게 위대한 성공으로의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바마나 그의 측근들이 아직도 깨닫고 있지 못한 냉엄한 사실이 있다. 자신은 루즈벨트들이나 케네디와 같은 범주의 성공적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여기서 루즈벨트들이라는 복수형은 두 명의 위대한 대통령을 가리킨다. 하나는 위대한 보수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즈벨트이고 다른 하나는 위대한 진보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이다.

전자는 국내적으로는 소위 천민 문어발 기업 체제를 개혁하고 국제적으로는 패권 정책을 통해 제국으로 도약의 토대를 구축하였다. 후자는 그 토대위에서 국내외적 조정 자본주의를 통해 미 제국의 황금기를 만들어냈다. 케네디는 비록 단명했지만 미국 제국의 낙관적 미래에 대한 대담한 희망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불운한 오바마가 맞이한 미국은 2002년 엠마뉴엘 토드가 <제국의 몰락>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듯이 제국으로의 상승기가 아니라 하강기의 미국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바마는 미국 역사상 어느 대통령도 본격적으로 직면해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퇴조기의 리더십을 요구받고 있다.

차라리 오바마는 1964년 영국 제국의 퇴조기와 파운드 가치 하락의 경제위기에서 집권해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에 만족한 노동당 윌슨 총리의 운명과 더 친화성을 지닌지도 모른다. 필자가 오바마 팀이라면 루즈벨트의 달콤한 시절을 벤치마킹하는 것보다 차라리 퇴조기의 제국들로부터 반면교사의 교훈을 찾는 것에 더 시간을 보내겠다.

이는 비유하자면 마치 노안이 찾아오기 시작한 중년들의 시대와 비슷하다. 미국은 원래 <컬처 코드> 저자의 지적처럼 청년기의 나라다. 열정적이고 무모하고 이분법적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이는 가장 전형적인 미국인이다. 클린턴 시대는 자신들이 아직까지는 청년기라는 순진한 생각 속에서 좌충우돌한 시기였다. 부시 시대는 청년기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불안감 속에서 무모하고 난폭하게 행동한 시기였다.

하지만 그러한 무모함이 더 늙음을 자초한 것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시기가 바로 오바마의 시기이다. 오바마는 국내적으로는 조정 자본주의, 국제적으로는 상호 의존적이고 문화 혼성적인 공동체를 통해 클린턴·부시 시대보다 문제의식이 성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낙관적 메시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하지만 오바마가 보다 성숙한 것은 사실이나 아직 퇴조기임을 선명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조금씩 학습해나가는 것 같다.

그는 취임 초 대담하지 못했던 경기부양책이 합의만 되면 마치 미국 경제가 부활의 날개짓을 할 것처럼 이야기한 바 있다. 그에게 있어 초당적 합의와 낙관적 시그널을 보낼 필요성이 정치적으로 절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잠시 후면 오류로 판명될 메시지는 그의 정치자본을 잠식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보다 교정되었지만 여전히 낙관적 메시지와 그걸 실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미온적 정책 사이에서 중요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정치의 기본 개념인 '기대치 게임'에서 치명적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탁월한 마키아벨리스트인 그가 이러한 실수를 범하는 것은 순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구조적 결함의 어두운 심연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해서다. 그가 과거 금융구제안에서 어정쩡한 민간 파트너십의 투자펀드를 제시했다가 결국은 국유화로 몰리는 상황까지 온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그는 최근 시장친화적인 민관 배드뱅크로 승부수를 걸었지만 과연 지금 상황이 시장친화성에 더 집중해야 할 정도의 온건한 위기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오바마 정부가 성공하길 절실히 바라는 진보 논객 크루그먼조차 이에 대해 절망감을 표시할 정도이다.

물론 오바마가 처한 상황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즉 크루그먼이 보기에는 전혀 대담하지 않아 문제지만 그간 시장 전체주의에 초당적으로 중독된 워싱턴 정가에서는 이 조치 조차도 급진적이라 현실적 합의를 형성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바마가 구조적 결함의 심연을 이해한 바탕 위에서 다만 불가피한 합의 형성을 위해 온건한 조치들을 추구한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그간 부단히 악화되는 경제 예측에서 그와 경제팀이 실패해온 것을 보면 말이다.

문제는 만약 그 심연이 더 강력히 모습을 드러내고 오바마가 이후 더 급진적 조치들을 요구할 때 그의 정치자본의 잔고가 별로 남아있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 오바마 마스크를 쓰고 시위하는 사람들 ⓒ로이터=뉴시스

브레진스키는 알고 있었다

그는 국제관계에서도 구조적 결함의 심연을 이제야 조금씩 학습하고 있다. 후보 시절 이라크 전쟁 반대로 다시 미국이 건전한 상식과 리더십을 회복할 것 정도로 생각한 그는 당시 그를 자문한 브레진스키 등과 달리 퇴조기의 미국이 당면한 딜레마들을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그 당시 이미 아프가니스탄이 제2의 베트남이 될지 모른다는 경고가 나오는 상황이지만 그는 한때 미군 증파 정도로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믿기도 했다. 그는 최근 이라크에 5만 병력을 잔류시키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목표를 수정하면서 보다 현실주의적 노선을 확정짓고 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의 디엘이 3월 29일자에서 지적했듯 모든 것이 예상대로 잘 되어도 최소한 3년에서 5년이 흐른 후에야 이 노선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빛을 볼 가능성이 높다.

그 동안 그는 과거 클린턴 시대의 순진했고 때로는 오만했던 시절과 부시 시절의 불안한 마초주의의 난폭함에서 나온 모든 부작용들의 청구서(중동에서 한반도에 이르기까지)를 집권 기간 내내 처리해나가며 부단히 동요할 것이다.

더구나 과거 빚 청구서만이 아니라 미국의 퇴조를 감지한 노회한 이란과 러시아, 심지어 중국까지 새로이 청구서의 액수를 재조정하고 있다.

아직 취임 100일도 되지 못한 오바마 행정부지만 지금 그들에게는 앞으로 부단한 국내외적 정치·경제의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

지금의 시점에서 오바마 정부는 그 역대 어느 정부도 해보지 못한 자신들 앞의 과제를 다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국내외적으로 퇴조기 미국의 관리 리더십에 대한 대전략을 다시 정식화하는 것에서 출발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바마가 미국의 국내외적 구조의 위기의 심연을 더 선명히 들여다보고 예방할수록 미국과 오바마 리더십의 연착륙은 더 용이해 질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구조적 심연이 그와 미국에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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