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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안 바래요

[한윤수의 '오랑캐꽃']<56>

폭행을 당한 외국인은 직장을 바꿔줘야 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피해자는 그 사업장에서 다시는 일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고 둘째, 가해자는 대부분 상습적으로 폭행하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다 일하는데 한국인 J과장이 일을 안하고 뒤에서 왔다갔다 하며
"나 어젯밤에 뭐했는지 아냐?"
하면서 시시껄렁한 농담을 걸기 시작했다. 베트남 사람 팜칸은 도무지 집중이 안되고 심란해서
"같이 일해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J과장이 건방지다며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한 번은 참고 두 번째는 피했으나 세 번째 가격하자 팜칸이 맞받아쳤다. J과장은 흥분해서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쳤다. 밖으로 나가자 J과장은 얼굴을 쳤고 팜칸이 막자 몽키를 집어들어 옆구리를 쳤다. J과장은 상습 폭행범이었고, 과거에 그에게 맞은 사람이 오히려 베트남으로 쫓겨간 적도 있었다.

팜칸은 분하기보다 황당한 얼굴이었다. 그는 그 회사에서 3년 일하고 재입국한 고참 노동자로 베트남에서 공과대학을 나온 인테리 기술자였고 얼굴에 항상 잔잔한 미소를 띄는 인품이 있는 사람이었다. 얌전한 인상이 꼭 여학교에 갓 부임한 총각 선생 같은 분위기를 풍겼는데, 실제 총각은 아니고. 대학 교수인 부인과의 사이에 아이가 둘이나 있는 가장이었다. 그는 조금 전에도 부인과 통화했지만 그녀가 속상해 할까봐 맞았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말하며 얼굴이 굳어졌다.
그가 요구하는 것은 아주 단순했다.
"다른 건 안 바래요. 회사만 바꿔주세요."

근처 병원에서 진단서를 떼었는데 안면과 옆구리 타박상으로 2주 진단이 나왔다. 그러나 진단서 떼는 비용으로 15만원이나 들었다는 말을 들으니 속이 상했다. 아는 병원에 직접 데리고 가야 싸게 해준다고 그렇게 일렀건만, 내 말을 무심히 흘려버리고 팜칸을 혼자 가게 내버려둔 직원이 원망스러웠다. 이 사람 정말 돈도 없는데!

센터에서 팜칸을 대리하여 회사측에 직장 이동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의 관리책임자인 C실장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었다.
"J과장은 생산라인의 작은 관리자일 뿐이구요. 아마도 말을 듣지 않아 때렸을 겁니다. 이건 쌍방 폭행이므로 직장 이동은 시켜줄 수 없습니다. 현장 사원간의 개인적 폭행이니 별 거 아니에요. 우린 두 사람을 화해시키고 일을 같이 하고 싶거든요. 한국 사람이 먼저 사과를 했으니 받아줘야 하는데 안 받아주는 베트남 애가 진짜 문제 아니겠어요?"

회사하고는 도무지 얘기가 되지 않아서 노동부 평택고용지원센터에 사고 현장을 실사(實査)해서 만일 위법사항이 발견될 때에는 직권으로 직장을 이동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공무원 Z(가명)씨는 우리 직원더러
"잠깐 나가 계세요."
해놓고는 회사측과 20분 넘게 통화했다. 그리고는 회사측과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몰라도 대단히 미온적으로 나왔다.
"실사(實査)보다는 서로 원만한 결과를 위해서 사업주의 동의를 얻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업주가 동의 안하면 직장을 못 옮겨주겠다는 뜻이다. 결국 아무것도 안 해주겠다는 얘기지! 그는 공무원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인 공정(公正)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여겨졌다.

수원고용지원센터에서는 폭행사건의 경우 거의 백 프로 현장 실사를 나가고 가능한한 직장이동을 시켜주건만, 평택고용지원센터는 실사마저 나가지 않으니 폭행에 대한 감수성이 너무나 둔감하다는 것을 느꼈다. 회사도 못 믿고 노동부도 못 믿고, 이제는 경찰밖에 믿을 데가 없었다.

다행히도 평택경찰서 K형사는 베트남 통역을 정식으로 고용하여 사건을 정밀하게 조사했다. 쌍방 과실은 맞지만, 회사의 상급자가 하급자를 먼저 폭행한 것이 사실이므로 회사도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경찰에서 계속 회사에 전화를 걸어 조사를 진행하자, 심리적 부담을 느낀 가해자 J과장이 맨 먼저 손을 들었다. 전과자가 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상급자인 C실장은 좀 더 버텼다.
"치료비는 물어줄 수 없습니다."
어이가 없었지만 양보하기로 했다.
"좋습니다. 직장 이동만 시켜주세요."
팜칸은 20일 이상 일을 못하는 바람에 수입이 전혀 없어서 다른 직장을 잡는 게 너무나 급했다. 그래서 치료비마저도 포기한 것이다. 그제서야 회사에서 직장 이동에 동의했다.

회사나 노동부나 다 폭행사고 처리에 미온적이었지만, 오로지 경찰이 적극적이어서 한국의 명예를 살렸다. 아마도 경찰은 폭행사고를 많이 처리해보아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폭행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때리는 사람은 상습범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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