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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유토피아, 언론인의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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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명박의 유토피아, 언론인의 디스토피아

[칼럼] 2009년, 대한민국에서는…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고 해서 그때마다 보도 내용을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고 언론인을 소환하고 체포하면 언론 자유는 말살되고 민주주의는 일시에 붕괴되고 말 것이다." (송일준 MBC PD)

2009년 4월, 검찰은 문화방송(MBC) <PD수첩> 제작진을 명예 훼손과 업무 방해 혐의로 결국 기소했다. 이춘근 PD를 시작으로 속속 체포된 PD와 작가 등 제작진은 하나같이 검찰 강제 수사의 폭력성과 부당함을 지적하며 진술을 거부했으나 검찰은 무리한 강제 구인마저도 이미 세워진 기소 방침에 따른 구색 맞추기용임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기소 직전에는 서울 여의도 MBC 사옥에 대한 압수 수색도 실시됐다. 언론노조 MBC 본부(본부장 이근행) 조합원을 비롯한 전국언론노조(위원장 최상재) 조합원들이 모여 반발해 1차 압수 수색은 저지했으나 며칠 뒤 이뤄진 기습적인 수색에는 무력했다. 게다가 MBC 경영진은 검찰의 압수 수색에 사실상 협조하는 태도를 보여 강한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경영진의 태도는 2008년 8월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기습적으로 <PD수첩> 광우병 보도에 대한 '시청자 사과' 방송을 내보낼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그 직전 정권의 전방위적인 압박 속에 해임된 정연주 전 KBS 사장의 사례를 지켜본 엄기영 사장의 '학습 효과'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은 8월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를 친정부 인사로 대거 교체하면서 사장에 대한 압박을 전면화해 엄 사장도 좌불안석의 처지에 이르렀다.

정부 비판엔 '명예 훼손', 언론인 파업엔 '업무 방해'

<PD수첩> 강제 수사는 일종의 신호탄에 불과했다. 정부의 언론 탄압은 3월 체포·구속된 노종면 언론노조 YTN 지부장을 시작으로 몇달 사이 검찰과 경찰에 체포·구속된 언론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그 실체를 드러냈다. 5월엔 전국언론노조가 <PD수첩> 탄압과 한나라당의 언론 관련법 강행 처리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재개하자마자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과 집행부가 긴급체포·구속됐다.

물론 반발도 적지 않았다. 몇몇 언론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그중 한 언론은 청와대가 경찰과 검찰에 강경 수사를 지시한 정황을 포착하고 관련 문건을 공개하면서 논란을 확산시켰다. 이에 분개한 언론인들과 시민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촛불 집회가 촉발될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이 문건을 폭로한 기자를 이명박 대통령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에 대한 명예 훼손으로 고소해 체포했다.

연이은 언론인 체포에 반발해 파업에 돌입한 이들에겐 또다시 '업무 방해'가 적용됐고 이를 비판하는 이들에게는 경찰청장, 검찰청장 '명예 훼손'이 적용됐다. 이 와중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언론 탄압을 비판하는 방송에 대해선 '방송사가 논란의 이해당사자일 경우 해당 방송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일방의 주장을 전달해선 안 된다'며 꼬박꼬박 '시청자 사과'등 중징계를 내렸다. 또 이러한 사태가 누적되자 방송통신위원회는 '재승인' 문제를 거론하며 방송사 경영진들을 압박했다.

▲ 구속된 노종면 언론노조 YTN 지부장과 체포 후 석방된 이춘근 MBC <PD수첩> PD. ⓒ뉴시스

이명박 정부의 대언론 진압 기조는 6월 국회에서 언론 관계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이름 뿐이나마 사회적 논의 기구로 설립한 미디어발전위원회도 파행으로 이끈 뒤 6월이 되자 표결 처리를 강행했고 야당과 언론노조는 반발했다.

방송 3사와 신문사 등 언론사들은 일제히 파업에 돌입했으나 경찰은 노종면 위원장의 사례에서와 같이 또다시 명예 훼손, 업무 방해, 폭행 등 온갖 명목으로 언론인들을 체포 구속했다. 유치장, 구치소, 교도소를 언론인들로 가득 채운 채 이명박 정부는 6월엔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는 언론관계법을, 10월엔 공영방송법을 통과시켰다.

이명박 정부가 원하던 '침묵'이 도래하다

한바탕 폭풍이 몰아치고 나자 언론계에는 신문, 방송, 인터넷 할 것 없이 '침묵'만이 감돌았다. 이미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이병순 사장이 들어선 KBS는 가장 대표적인 정부의 홍보 수단이 됐다. 특히 '공영방송법'이 통과된 이후 <유인촌·신재민의 버라이어티쇼>가 제작되는가 하면 <최시중의 무한책임> 등이 방영됐다. 이러한 프로그램 등은 이명박 대통령의 TV 연설과 함께 시청률 0.001%를 달성하기도 했으나 예산권을 쥔 국회는 이 방송사의 성과를 높게 평가해 지난해보다 많은 예산을 확보해줬다.

그나마 제 목소리를 낸다고 평가됐던 MBC도 <PD수첩> 사태, 방문진 교체 등을 기점으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메인 뉴스프로그램 <뉴스데스크>에서 소신 멘트로 MBC의 마지막 양심을 상징하던 신경민 앵커는 '낮은 시청률'을 이유로 앵커 자리에서 밀려났다. MBC 기자·PD들은 '클로징 멘트 때문에 앵커를 교체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맞섰으나 무력했다. <PD수첩> 사태는 시사 보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수많은 PD들에게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쳐 이명박 정권을 직접 비판하는 프로그램은 눈에 띄게 줄게 됐다. 언론 관계법의 통과로 대주주 지배 체제를 강화한 SBS에서도 친재벌, 친정부 보도가 급격히 늘어났다.

신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운이 나쁘게도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를 거친 한 기자는 대통령, 국회의장, 재벌 총수, 검찰청장의 명예를 모두 훼손해 5차례에 걸쳐 고소됐다. 청와대가 언론 탄압을 본격화하자 그나마 광고를 게재하던 기업들은 '경제 위기'를 내세워 광고를 일제히 중단했다. 일각에서는 몇몇 기업이 <경향신문> <한겨레> 등에 광고를 실을 때마다 청와대 모 인사가 "광고 잘 봤습니다. 그 신문 어떤 신문인지 아시죠"라며 압박성 전화를 돌린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결국 한 신문사가 무너졌고 실업 언론인이 속출했다. '불패 신화'를 자랑했던 신문의 위기가 눈앞에 드러나자 기업들은 더욱 냉담해졌고 몇몇 신문사는 은행 대출도 쉽지 않은 처지에 놓이게 됐다. 결과 '정권 찬양만이 살 길'이라는 논리 하에 신문사 내부의 검열은 더욱 치열해졌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일부 보수신문들은 대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종합편성채널과 지상파 방송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으나 경영난을 피하지 못했다. 이미 똑같은 정권 찬양 지상파 방송을 3개나 보게된 시민들은 똑같은 내용에 세련미는 떨어지는 방송이 새로 등장한다고 해서 딱히 반기지 않았다. 이에 한 신문은 <문화일보>의 연재소설 '강안 남자'의 판권을 구입해 드라마화기로 했고 다른 신문들도 그간 '선정적'이라고 비판해 오던 기존 케이블 방송의 프로그램을 사서 방송했다.

이명박 정권 3년차, 경제는 더욱 어려워져 새로 건립된 광화문 광장에서는 분신 자살하는 빈민, 장애인까지 나타났으나 방송에는 일절 보도되지 않았다.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경찰의 진압 중 시민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으나 함께 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이 그 책임을 쓰고 처벌을 받았다. 언론은 이들을 '테러범'이라고 보도했다. 뉴스에는 연쇄살인과 강간 등 선정적인 범죄 보도가 늘어났고 스포츠 보도도 반 이상 차지해 일부 방송에서는 아예 스포츠 뉴스를 폐지하고 '대통령의 하루'라는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시민들의 눈은 인터넷으로 쏠렸으나 인터넷도 침묵하긴 마찬가지였다. '미네르바'가 정확한 글을 써 대중의 주목을 받다 한번 틀린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체포·구속된 이후 누리꾼들은 맞는 글을 올릴 수도, 틀린 글을 올릴 수도 없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이후 일부 '용자'들의 글을 지지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견을 소극적으로 밝혀온 누리꾼들도 '클릭수 조작'이라며 구속되면서 인터넷에는 '구속 당하지 않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법' 등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시민들은 댓글을 다는 것에도 상당한 공포감을 느껴 세계 정신과 의학사전에는 'MB댓글포비아'라는 단어가 새로이 등재됐다.

2010년 7월 노동부는 "언론인은 직업이 아니다"라는 발표를 냈다. 노동부 대변인은 "전문 시위꾼이 직업이 아닌 것처럼 언론인도 직업일 수 없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현재 유치장, 구치소, 교도소에 대거 수감된 이들이 스스로를 '언론인'이라고 지칭하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됐다. 이에 현장에 있던 기자들이 "그럼 우리는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방송업계 보도 부문 종사자, 신문업계 보도 부문 종사자로 바꾸라"고 했다. 이에 외신은 "한국에선 '저널리스트'라는 단어를 공식 폐기했다"고 대서특필했다. 한 신문은 "실제로 한국에서 아직 현업에 남아있는 이들을 볼 때 이명박 정부의 규정이 딱히 틀린 것은 아니다"라고 논평했다.

(※ 노종면 전국언론노조 YTN 지부장의 구속과 이춘근 MBC PD의 체포에 비춰 한국 언론의 가까운 미래를 추론해본 가상 칼럼입니다. 이 칼럼이 지나친 우려이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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