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 정부기관이 심의를 하는 것이 타당한가?"
방송의 공정성 심의를 위한 가이드라인의 내용에 관한 문제점을 지적하기에 앞서 우리는 반드시 방송 내용, 특히 보도와 시사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놓고 준 국가기관인 방통심의위가 심의를 하는 것이 과연 적합한지 타당성을 따져봐야 한다.
정부 여당의 추천인사가 심의위원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예산권이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준 정부기관인 방통심의위가 보도와 시사 프로그램을 심의하는 것은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방송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위협할 소지가 다분하다. 최근 정부의 정책에 비판적인 내용을 방송한 MBC 뉴스 프로그램과 시사 프로그램들에 대한 징계 조치는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준 정부기관인 방통심의위가 갖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방송 공정성 심의 기준안은 뉴스 프로그램의 내용뿐만 아니라 인터뷰 대상자나 시간, 카메라 앵글, 영상 처리 방식, 자막, 그래픽 등에 대한 기준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아주 세부적인 부분까지 심의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결국 시사 보도 프로그램의 방송 제작을 통제하겠다는 의도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시사 보도 프로그램의 방송 내용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만든 정형화된 틀에 맞춰 천편일률적으로 만들도록 족쇄를 채우려는 시도는 아닌지 의문을 떨칠 수가 없다.
이러한 의문을 갖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 1년 동안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방송심의 규정상 공정성 조항에 저촉되었다는 이유로 제재를 가한 프로그램이 주로 현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을 방송한 프로그램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공정성 조항 등을 들어 쇠고기 광우병 사태를 보도한 MBC <PD수첩>, 노조가 부른 희망의 노래를 방송한 YTN <뉴스오늘>, 그리고 언론 관계법에 관한 보도를 한 MBC <뉴스데스크>와 <뉴스후> 등에 중징계를 내렸다. 정부의 정책에 비판적인 보도내용을 방송한 프로그램들에 대해 공정성의 잣대를 들이대 징계 조치를 내린 것이다. 결국 공정성 심의 기준에 아주 세부적인 부분까지 포함시켜 방송의 표현과 제작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언론의 정부 비판기능을 억압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미국에선, 진행자가 수시로 '닥쳐'를 외쳐도"
▲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채널인 '폭스뉴스(FOX News)'가 일방적으로 보수층을 옹호하는 시사 보도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진보 측 인사와의 인터뷰에서는 진행자가 수시로 "닥쳐"를 외치며 발언을 방해하는 등 편파적인 방송을 내보내도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방송 내용에 대해 어떤 규제도 가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MBC |
어떠한 경우에도 정부기관이 심의를 통해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에서다. 정부기관이 방송 내용에 대해 심의를 하게 되면 언론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거나 위축될 소지가 많기 때문에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정부기관의 방송내용 심의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사 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반면, 외설적이고 음란한 내용 또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는 내용이 방송되었을 경우에는 FCC에서 신고를 받아 법원을 통해 징계를 할 수 있다.
정부기관에 의한 방송의 공정성 심의는 그 자체로 공정한 심의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방통심의위는 지난 1년간의 시사 보도 프로그램 심의 과정에서 그 의구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단초를 제공했다. 정부기관이 방송의 공정성을 심의할 경우,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언론통제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만큼 준 정부기관이 심의주체인 우리나라의 방송 심의제도는 반드시 재검토 되어야 한다. 미국의 사례처럼 시사 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공정성 심의는 언론사 자율심의에 맡기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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