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가 추방당할 것을 각오하고 밀린 임금을 달라고 하면 회사에선 줄 것 주고 빨리 끝내는 게 현명하다. 어영부영 시간을 끌다 불법체류자가 단속에 걸리면 막대한 벌금을 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회사는 그렇게 빨리 행동하지 못한다. 밀린 임금을 조금만 주려고 줄다리기를 시작하니까. 하지만 줄다리기를 하면 할수록 벌금 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A회사는 퇴직금을 깎으려고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안 깎이려고 버텼다. 보름이 지나갔다. 노동부에 진정서를 내자 회사측에서는 몸이 달아서 과장 두 사람을 나에게 보냈다.
"65프로까지 드리겠습니다. 700만원."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노동부 출석까지 1주일의 기한이 있었으므로 그 안에 노동자의 통장에 돈을 넣어주면 상황 끝이었다. 그러나 회사측에선 무슨 까닭에서인지 돈을 주지 않았다. 아마도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서 금액을 더 깎으려고 했던 것 같다. 노동자들에게 계속 전화했으니까. 난처해진 노동자들은 회사와의 접촉을 피했다.
그러다가 노동자들이 출입국의 단속에 걸렸다. 노동자들은 모든 권한을 나에게 위임해놓았기 때문에 잡히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들은 보호소에 잠깐 있다가 추방되었다.
진짜 문제는 그 후에 불거졌다. 노동부와 출입국 양쪽에서 사장에게 소환장을 보낸 것이다. 회사는 발칵 뒤집어졌다. 퇴직금은 퇴직금대로 주고 사장이 형사처벌 당할 위기에 처했으니까. 아마도 벌금만 천만 원 이상이 나갈 걸. 이를 어이할꼬?
어째서 과장 두 사람이 꼭 세트로 움직여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회사에선 과장 두 사람을 또 나에게 보냈다. "퇴직금 드리겠습니다. 사장님이 처벌만 안 당하게 해주세요."
나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일단 태국으로 돈 보내놓고 얘기합시다."
다음날 회사에선 태국으로 송금하고 나서, '과장 두 사람'이 또 나를 찾아왔다.
"목사님, 출입국에 얘기 좀 해주세요."
"뭐라고 얘기해줘요?"
"걔네들이 우리 회사에서 근무 안했다고요."
"말도 안되지. 급여명세서를 내가 다 갖고 있는데."
출입국에서는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기간이 문제가 된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벌금 액수가 늘어나니까. 그래서 회사에서는 아예 고용 안 한 걸로 버틸 심산이었다.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우리 센터는 거짓말 못합니다, 공신력이 있는데."
"그럼 출입국에서 전화 오면 얘기 좀 잘해 주세요."
"그러죠."
나에게서 화끈한 대답을 듣지 못해서 그런지, 두 과장은 일어서며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언젠가 우리도 이런 센터 하나 만들 겁니다."
"좋죠."
"노동자 센터가 아니라 그 반대요."
"사장님 센터?"
"예."
"거기서 뭐 하시게?"
"사장님들 억울한 거 해결해드려야지요."
사장님이 억울하다면 뭐가 억울할까? 노동자에게 월급이나 퇴직금 주는 게 억울한가? 아니면 정부에 벌금 내는 게 억울한가?
법을 지키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법을 어겨놓고 억울하다니!
나는 기가 막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틀 후 출입국 Y실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사님, 태국 사람들 돈 받았다면서요?"
"예. 받았대요."
"그럼 문제 없죠?"
"문제 없어요. 우린."
"그 회사 이상한 얘기 많이 하던데요. 그 회사에서 태국 사람 근무한 적 없다고 딱 잡아떼네요."
"허허허."
"태국 사람들한테서 팩스로 각서도 받았더라구요."
"무슨 각서?"
"태국 사람들이 그 회사에 근무한 게 아니라, 회사에 돈 7백만원을 빌려줬다가 받은 거라나?"
"허허허. 난 아무 말 못합니다. 하여간 그 회사 한 번 봐주세요."
"목사님 불만 없는 거죠?"
"없어요."
"그럼 됐네요."
대한민국에서 안 되는 일이 없다더니, 그 회사는 그렇게 해서 살았다. 운 좋은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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