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가운데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반발을 초래할 게 분명한 움직임을 잇달아 보이고 있어 남북관계는 끝 모를 위기로 치닫고 있다.
PSI 참여, 독자적인 대북 '제재' 의미
정부는 북한이 다음달 4~8일 '인공위성' 발사를 강행할 경우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전면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실무 담당자들에게 PSI 전면 참여에 대한 득실을 따져보는 작업에 착수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20일 알려졌다. 유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비확산 문제가 부각이 되니 PSI 전면 참여 문제를 검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검토'라는 유보적인 표현을 썼지만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실제 로켓을 발사할 경우 '군사적으로는 결국 대량살상무기 기술'이라는 명분으로 PSI 전면 참여 쪽으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부시 전 행정부 주도로 2003년 시작된 PSI는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WMD) 및 WMD 관련 물질·장비 등을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을 자신의 영해에서 검색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주로 북한, 이란, 시리아 등을 겨냥하고 있다.
한국은 2005년 미국의 요청으로 PSI의 8개항 중 참가국간 역내·외 훈련에 참관단 파견, 브리핑 청취 등 옵서버 자격으로 가능한 5개항에는 참여하고 있지만 △역내·외 차단훈련시 물적 지원과 △정식 참여는 하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그 선에서 참여 정도를 조정했던 이유는 북한의 반발과 중국의 문제 제기 가능성, 실제 군사적 충돌 우려 때문이었다. 북한은 2006년 2월 9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성명을 통해 PSI를 "조선반도에 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오는 도화선"이라고 규정하는 등 강력히 반발해왔다.
▲ PSI 훈련 장면 ⓒ로이터=뉴시스 |
"위기관리는 못할망정 위기 악화 조치 취해"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출범 때부터 PSI 전면 참여 가능성을 시사해왔다. 외교부는 이미 작년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PSI 회원국으로 정식 참여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외교부는 G8(주요 8개국)을 비롯한 전 세계 9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만큼 북한의 반발은 PSI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현재 5개항 참여가 사실상 전면 참여이기 때문에 실제로 전면 참여를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PSI 카드가 로켓 발사를 계기로 나온, 한국 정부의 '독자적 대북 제재'라는 의미를 띠기 때문에 '북한이 오해하고 있다' '전과 달라지는 건 없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이날 논평을 발표하고 "PSI 전면 참여를 공식화하려는 것은 무력 충돌 가능성만 높이는 위기 악화 조치"라고 비판했다.
평화군축센터는 "한층 악화되고 있는 남북관계와 북한의 로켓 발사를 둘러싼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는 이 때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긴장완화를 유도하는 것이지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이 아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논평은 이어 "북한의 핵과 로켓 발사 문제는 6자회담과 북미협상과 관계 정상화 그리고 남북관계 개선 등을 통해 풀어야 할 문제"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과 공세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북핵과 미사일 개발을 둘러싼 갈등의 역사에서 줄곧 확인되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논평은 "외교적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은 채 PSI에 전면 참여할 의사를 드러내는 것은 한국 정부가 북한의 핵개발과 로켓 발사 문제를 북에 대한 봉쇄와 압박을 통해 풀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는 점에서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참여…北조평통, 즉각 성명
정부가 10차 유엔 인권이사회에 상정된 북한 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 것도 남북관계의 파탄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는 지적이다.
유럽연합(EU)이 주도한 이번 결의안은 제네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오는 23∼27일 처리될 예정으로 26일 표결이 유력하다. 이번 결의안은 북한 인권 특별보고관의 방북 허용 및 임무 수행을 위한 정보 제공 요청과 함께 북한 내 인권침해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정부는 작년 3월에 열린 인권이사회에서는 북한 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지 않은 채 찬성표만 던졌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열린 유엔 총회의 북한 인권결의안에는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 이에 찬성하는 것도 조심스러운데 공동제안까지 해서 갈등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왔었다.
외교부는 공동제안국 참여에 대해 "'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로서 여타 사안과 분리, 인권문제 그 자체로 다루어야 한다'는 북한인권 문제에 관한 기본입장과 작년 유엔총회에서 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북한 조평통은 이날 즉각 대변인 담화를 발표해 "(남한이) 인권모략 소동에 매달리는 한 그 어떤 대화나 북남관계 정상화란 있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조평통 대변인은 "반공화국 인권모략 소동은 곧 체제대결이고 우리에 대한 엄중한 정치적 도발"이라며 "우리는 우리의 존엄높은 체제를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자들에 대해서는 추호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인권모략 소동으로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그것은 파멸을 재촉할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발의한 '북한인권법안'에 대해서도 "대결과 전쟁을 추구하는 용납할 수 없는 반민족적 망동"이라고 비난했다.
北, 세 번째 개성 통행 차단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북한은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키 리졸브' 한미 합동 군사훈련(9~20일) 기간 군 통신선을 차단함으로써 개성공단 출입을 두 차례(9일, 13일~15일) 막았던 북한은 20일 또 다시 개성 육로통행을 막았다.
북한은 남측 인원의 방북 및 귀환 계획에 대해 동의 통보를 보내오지 않는 방법으로 통행을 차단했다. 다만 남측으로 귀환 신청을 한 외국인 4명과 질병, 본인 결혼 등으로 긴급히 귀환해야 할 사유가 있는 남측 국민 2명만 통행을 허용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홍양호 차관이 직접 기자회견에 나와 "북한이 군 통신 차단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키 리졸브 훈련도 사실상 어제로 종료됐음에도 불구, 오늘 또 다시 육로통행을 차단한 것은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북측의 추진 의지를 의심케 하는 처사"라고 대북 발언의 수위를 높였다.
홍 차관은 "정부는 국민들의 신변안전 확보를 최우선시해서 필요한 제반 조치를 취해 나가고 있다"며 "무엇보다 통행의 제도적 보장과 실효적 이행 확보에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정부의 1차적인 관심은 개성공단의 안정적 발전"이라며 "이런 일이 계속 되풀이된다면 그에 합당한 조치를 도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개성공단에는 우리 국민 752명이 체류하고 있다.
통신선 '약속대로' 정상화…개성 통행 가능 여부 두고 봐야
그러나 한편으로 북한은 키 리졸브 기간 차단했던 군 통신선을 21일 오전 8시부터 정상화겠다고 통보하기도 했다.
북한은 20일 남측 동·서해지구 군사 실무 책임자를 수신자로 지정해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 전화통지문을 보내 "역사적인 북남공동선언들의 이행을 군사적으로 보장하려는 입장과 의지로부터 차단하였던 북남 군 통신을 21일 오전 8시부터 다시 회복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통신선이 끊긴 뒤 개성공단관리위를 통해 인편과 팩스로 출입 업무를 해온 남북은 이르면 21일 오전 방북 승인 통보 때부터 군 통신선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신선이 정상화되더라도 북측이 개성공단 통행을 허용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따라서 통행 가능 여부는 당일 아침 북측의 동의 통보가 와야 알 수 있다. 만약 북한이 통보를 하지 않으면 일요일인 22일까지 통행이 불가능해 또 다시 '억류'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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