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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레스는 얼마나 고집이 센지!

[정혜윤의 날아다니는 여행기] 런던에서 점퍼가, 대영박물관 3

1799년부터 1803년간 터키 콘스탄티노플 주재 영국 특별 대사였던 엘진 후작이 파르테논 신전의 소벽을 사느라고 가산을 탕진한 몇 년 뒤, 그리고 아직 국가의 개념도 모르던 런던 사람들이 눈앞에 펼쳐진 그리스의 아름다움에 놀란 몇 년 뒤, 대영 박물관은 건축되기 시작했다. 런던 사람들은 그리스 양식에 열광해서 브리티시 헬레니즘이란 것을 염두에 뒀다. 대영 박물관이 그리스 양식 건물이 된 거나 근처에 마블 아치가 세워진 것이나 런던 사람들의 그리스 동경을 반영한 것인데 처음에 엘진 수집품을 본 사람 중 하나인 헤이든의 묘사를 보면 런던 사람들이 그리스 조각에 얼마나 놀랐는지를 알 수 있다. 이를테면 그는 테세우스 상을 보고는 내장이 골반 쪽으로 밀려들어가 있는 것까지 표현했다고 썼고 여성 조각품의 손목과 팔꿈치에는 요골, 척골, 같은 것들이 표현되어 있으니 그리스 조각이야말로 최고로 영웅적인 예술 양식이 일상 생활의 모든 필수적 세부 상황과 결합되어 있는 것이고 그걸 본 자기 자신이 받은 충격은 영원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썼다.

이곳에 수천점이 있다는 그리스 항아리에 가장 매료된 것은 런던에 살던 병약하고 섬세한 시인 (그때쯤이면 사랑에 가슴 아파하고 있을) 존 키츠였다. 그는 그리스 항아리와 엘진 경이 수집한 그리스 유물에 바치는 시를 썼다. 당시 런던 사람들의 기분도 다르지 않을 것 같아 소개한다.

듣는 가락은 달다, 허나 들리지 않는 가락은
더욱 달다. 하여 고요의 피리를 마냥 불거라
감각의 귀가 아니라 보다 고귀한 것
영혼을 위하여 곡조 없는 노래를 부르라
나무 아래 젊은이여! 너는 노래를 그칠 수 없다
그 나무 또한 잎 질 날이 없겠구나
대담한 연인이여! 너는 언제까지나 입 맞출 수 없겠구나
너의 소원이 곧 이루어질 듯하건만 -그러나 슬퍼마라
행복에 못 미치는 대신 그녀 또한 이울지 않으리
영원토록 너는 사랑하고 그녀 또한 아름다우리
(존 키츠 <그리스의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나는 사실 살아남은 미노스의 꽃병 하나를 자세히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대신 하나의 꽃병이 산산히 깨져나가는 상상을 해본다. 그때 깨지는 것은 옛 사람들의 그림자, 침묵 속의 노동, 은밀히 교환되던 시선, 대담한 연인들의 사랑과 쾌락, 흥겨운 춤과 피리 소리의 한때, 파도와 감정. 프라이드와 갈망, 영원한 증표. 맘속으로 꿈꾸던 이상적인 세계….

▲엘진 마블, 즉 엘진이 통째로 뜯어왔다는 파르테논 신전의 동쪽 벽 부분은 그리스 문화재 반환 운동의 핵심 부분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끈다.

이 놀라운 예술품 또한 어지러운 아픔을 주고
그 속에 그리스의 영광과 거친
시간의 퇴화를 범벅하고 -물결 높은 바다를
태양을, 장려한 그림자를 섞는다

(존 키츠-<엘진 경의 대리석 조각품을 보고>)

그러나 엘진 마블, 즉 엘진이 통째로 뜯어왔다는 파르테논 신전의 동쪽 벽 부분은 그리스 문화재 반환 운동의 핵심 부분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끈다. 사랑하는 아내인 여배우 멜리나 메리쿠리의 국적을 따라 그리스인이 된 세계적인 명성의 줄스 다신 감독은 1994년 세상을 떠난 아내를 위해 '멜리나 메리쿠리 재단'을 설립하고 전 세계에 흩어진 그리스 문화재의 반환 운동을 주도해 왔다. 그가 특히 관심과 열정을 기울였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엘진 마블로 불리는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품들이었다. 영국 정부와 대영박물관 측은 '엘진 마블'이 그리스만이 아닌 인류 전체의 문화유산이며, 대기오염으로 악명 높은 아테네에 돌려줄 경우 훼손이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서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언덕 위에 서서 바다를 향해 넘실대지 못하는 파르테논 신전을 보는 것은! 확실히 답답하긴 하다. 파르테논의 뜻은 처녀에게 바쳐진 신전, 즉 아테네에게 바쳐진 신전이란 뜻인데 신전은 아테네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페리클레스의 황금기에 세워졌다. 그래서 당시 파르테논의 존재는 다름 아닌 아테네의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아테네 여신 이야기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그녀가 제우스의 머리에서 창과 방패로 완전 무장한 채 함성을 지르며 뛰어나오며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 탄생 신화는 들을 때마다 갑자기 각성한 누군가의 머릿속을 놀라움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솔직히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런 각성은 행동으로 이어지니까.

전 세계에 걸친 제국주의적 약탈의 결과로 박물관을 차렸다는 대영 박물관과 영국 사람들이 모처럼 콧대를 세우며 기뻐 날뛸만한 발굴이 영국에서도 한 차례 있었다. 서포크 지방의 서턴 후에서 1939년에 이뤄진 발굴인데 보물이 묻혀 있다는 소문이 돌던 오래된 둔덕을 파 내려갔더니 거기서 길이 27미터의 배가 발견된 것이었다. 그 배안에는 갑옷, 방패, 투구, 칼, 술잔 (끝이 뿔 모양이라서 한번 든 술잔은 원샷으로 마시기 전에는 결코 내려놓을 수 없게 되어있다) 들이 들어 있었다. 더 자세히 보니 그 배는 배 자체로 왕릉이었다. 살아서 위대한 전사였던 왕이 힘겨운 이생에서의 싸움을 끝내고 난 다음 보물을 가득 실은 배를 타고 보이지 않는 사공들의 힘을 빌어 저승으로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죽음의 보물선의 주인공은 7세기의 레드월드 왕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배안에서 그의 뼈나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도 서턴후의 배는 앵글로 색슨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과거로 영국 사람들에게 프라이드를 제공한다.

런던의 초기 역사는 안개를 뚫고 나타난 로마군의 등장에서부터 시작된다. 템즈강에 로마 군단이 왔을 때 여전사 부디카로 불리는 브리튼 족의 여왕이 앞장서 맹렬히 싸웠지만 패배하고 그 뒤로 런던은 로마의 보급기지인 항구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그래서 런던을 산책하다보면 로마시대의 유물들을 종종 마주치는데 나는 로마 시대 때 만들어졌다는 시장인 보로 마켓을 런던에서 가장 흥미 있는 곳 중 하나로 꼽고 싶다. 그 근처만 걸어도 로마의 와인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 같고 실제로 보로마켓 근처에선 와인투어가 이뤄지고 있다. 보로마켓에서 레몬즙을 뿌려가며 서서 먹던 굴이 런던 체류 전체 기간 중 먹어본 음식 중 단연 최고의 음식이었다. 거기서 한물간 줄 알았던 리바이스 청바지를 진짜 멋지게 소화해 낸 남자가 양손 가득 장을 보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따라갈 뻔했지만 간신히 억제했다.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 매일 생각이 바뀐다) 대영 박물관에서 우리는 부디카를 진압한 후 네로가 임명한 총독의 관이나 로마 군인들이 가장 좋아했던 신인 미트라 신의 흉상, 혹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흉상을 볼 수 있다.

▲ 나는 로마 시대 때 만들어졌다는 시장인 보로 마켓을 런던에서 가장 흥미 있는 곳 중 하나로 꼽고 싶다.

이 대영박물관을 우리보다 앞서 마르고 닳도록 찾던 런더너 중에는 마르크스와 버나드 쇼, 헨리 무어가 있었다. 찰스 다윈과 같은 시대의 인물인 마르크스는 망명 지식인, 세계주의적 혁명가, 헌신적인 사회주의자, 급진적 저널리스트로 살았다. 그는 영국의 자본주의의 참상을 고발하기 위한 자료를 바로 대영 박물관의 학구적인 분위기 안에서 찾아냈다. 초기 자본주의로 생긴 인간 희생에 대한 통계 자료를 주로 정부 측 공장 감독관이 작성한 보고서에서 찾아냈다는건데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꼭 그를 만나보고 싶다. 아마 이런 보고서였을 것이다

나이가 몇 살입니까?
-스물 셋입니다
몇 살 때 공장 일을 시작했습니까?
-여섯 살 때입니다
어떤 공장입니까?
-아마 천을 짜는 공장이었습니다
작업시간이 몇 시부터 몇 시까지였습니까?
-일이 밀릴 때는 새벽 다섯 시에서 저녁 9시까지였습니다
식사 시간은 얼마나 주었습니까?
-정오에 40분입니다
일을 하는 동안 늘 서있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틀이 많이 있고 돌아가는 속도가 빠르니까요
일을 잘못하거나 늦을 때는 어떤 일을 당합니까?
-혁대로 때립니다
맞는 사람을 지나치게 아플 정도로 때립니까?
-그렇습니다… 감독은 혁대를 들고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있으며 쇠사슬을 가지고 있을 때가 있는데 아이들을 쇠사슬로 묶어 방을 가로 질러가며 혁대질을 했습니다
집에 시계가 있습니까?
-아니요. 없었습니다
대개 늦지 않게 출근했습니까?
-네. 어머니가 새벽 4시에 일어났고 어떤 때는 두시에 일어났습니다. 갱부들이 보통 서너 시에 일하러 갔는데 그들이 움직이는 소릴 들으면 어머니가 나가 그들에게 시간을 물었습니다.
당신 몸에 기형이 생긴 것은 노동 때문인가요?
-네
복사뼈가 약해지고 다리가 휘는 것은 흔한 일입니까?
-네, 아주 흔한 일입니다
... (<역사의 원전> -의회조사단에 제출된 한 여공의 증언)


▲ '노동자가 혁명 속에서 잃을 것이라곤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대영박물관에 앉아서 칼 마르크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나는 이래서 마르크스가 놀랍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이런 문서들을 지금도 숱하게 읽을 수 있으니까. '노동자가 혁명 속에서 잃을 것이라곤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란 문장을 대학 초년생 때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고 영원히 독수리에게 간을 뜯어 먹히는 프로메테우스 이야기와 함께 읽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데, 세상은 마르크스 시대와 다른 어떤 해법을 요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는 어떻게 정의가 승리할 것이란 걸 믿었을까? 비인격적인 힘이 지배하면서 생겨난 우리의 공허함을 그는 어떻게 분석해 낼까?

대영 박물관에 앉아서 그의 이런 모습을 상상해 본다. 아이들로 들끓는 소호 집의 소란을 피해 대영 박물관 도서관의 책 속으로 도망치는 것, 치질로 고생하며 "자본론을 끝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앉을 수는 있어야겠네. 부르즈와 계급이 나의 뾰로지를 기억해주길 바란다네"라고 엥겔스에게 농을 거는 것. 쉴 때나 아내가 아플 때,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면서 위로받는 것, 어느 날 아이들을 데리고 햄스테드 히스로 놀러가는 것. 아이들과 피크닉 샌드위치를 먹으며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것

아빠의 행복은 ? 싸우는 것
아빠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굴종
아빠가 좋아하는 영웅은? 스파르타쿠스와 케플러


그러다가 결국 두 아이가 죽고 아내는 신경 쇠약에 걸리고 전 세계의 정부는 일치단결하여 그를 비난한다. 그의 이론 덕에 세계적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지지만 그 중에서 '가난한 자들은 서로 그렇게 사랑한다'는 말만큼 좋았던 것은 없었다. 그에게 이런 조언을 듣는 상상은 어떨까?

"인간의 뇌는 어떤 명령 센터의 명령을 통해 움직이는게 아니죠. 인간의 결정은 신체 전체와 소통하고 주위 환경과 소통하는 전체 신경 네트워크의 배열이란거죠. 우리가 뭘 결정하든 우리는 네트워크 안에 있어요. 바꾸고 싶다면 이야기하고 행동해 보세요. 참여하세요. 당신에게 올바른 힘이 있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인류가 되세요."

세계사의 모든 시대와 모든 문제에서 인간은 오로지 투쟁을 통해서만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이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알려준 인간의 운명이다.

▲버나드 쇼가 런던에 와서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지성을 획득하고 가공할 논객이 되는데 큰 역할을 한 곳 역시 대영박물관 도서관일 수 있다.
더블린 태생의 빽도 줄도 없던 버나드 쇼가 런던에 와서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지성을 획득하고 가공할 논객이 되는데 큰 역할을 한 곳 역시 대영박물관 도서관일 수 있다.당시 번득이는 총기에 관해서는 아무도 따를 수 없었다던 그가 한 말 중 딱 한마디만 골라서 소개할 수 있다면 나는 이것을 고르겠다

"남한데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지 마라
나와 남은 취향이 다를 수 있으니까"


그에 관해선 아주 부러운 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그에게 논리적으로 공격을 당한 어떤 사람도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끼거나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워있는 여인'이란 조각은 아마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도 한두번 봤을 것 같다. 누워있는 조각 시리즈를 만든 이가 바로 헨리 무어인데 그는 1920년대 런던에 사는 동안 대영 박물관에 다니면서 아프리카나 멕시코 아즈텍 조각에 빠져 들었다.그가 가장 좋아했던 조각품 하나를 나는 대영 박물관에서 찾아냈는데 당시 프랑스 점령 오스트랄 제도 섬 중 하나인 루루투에서 만든 18세기 나무신상이었다. 헨리 무어는 연못에서 튀어 오르는 개구리처럼 생긴 둥근 머리통, 둥근 몸통, 빈약한 팔다릴 가진 이 신의 모습에서 놀라운 생명력을 느꼈다고 훗날 썼다. 헨리 무어하면 내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1940년 9월 어느 날 런던 대공습 시기에 지하 대피소에서 공습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을 그린 작품들과 누워있는 사람들의 연약하고 웅크린 둥근 몸통 조각들이다. 손가락을 빨 것 같은 둥그런 몸통들은 이상하게도 슬픔만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도 꺼지지 않는 생명의 힘과 숨결까지도 느끼게 한다. 혹시 헨리 무어는 이 대영 박물관의 아프리카관, 남미관에서 길을 잃고 넋을 잃으면서 인간의 존재의 깊은 곳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 단서를 찾지 않았을까? 목이 메일수록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모든 사람은 마치 갓 태어난 것처럼 삶에서 벗어난다'고 에피큐러스는 말하지 않았던가?

▲ 헨리 무어의 '누워있는 여인'. 혹시 헨리 무어는 이 대영 박물관의 아프리카관, 남미관에서 길을 잃고 넋을 잃으면서 인간의 존재의 깊은 곳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 단서를 찾지 않았을까?

옛날에 나는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성의 도서관을 찾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도서관에는 도서관 사서 말고도 쾌락을 줄 여인들,장수들,점성가들,까마귀들,티티새들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왕은 날마다 그곳에서 금지된 신들에게 제물을 바쳤는데 그 제물은 순교자를 말하는게 아니라 침묵 속에서 이집트의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펼쳐가며 아이네이아스의 무훈담을 읽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내가 도서관에 대해 들은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중 하나다. 나의 금지된 신에게 바치는 나만의 온갖 정성을 다한 정갈한 제물.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어느날 런던 대영 박물관을 찾았다가 이런 표현을 남겼다.

"런던은 지저분한 도시지만 그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박물관에다 대리석으로 표현된 신들의 시간을 보관하고 있다. 마치 근엄한 청교도가 과거의 색정적인 순간과 즐겁고 황홀한 죄악의 순간을 그의 기억 깊숙이 묻어두고 있는 것처럼"

나는 이 말이 좋다. 무덤 속에서 나온 물건일지라도 이곳의 많은 유품들은 인간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먹고 마시고 어울리고 하인들이 서빙하고 연인들은 보드게임을 하고 과일은 쌓여있고 술잔은 충분하고 여섯 줄 하프는 울리고 아시리아 정원에 새들이 지저귀고 왕들은 사자 사냥을 떠나고 파라솔은 햇빛을 가리고 푸아비 여왕은 수금을 타고 항아리속의 관능적인 여인들은 수줍어하면서 도발하기도 하고 돌고래는 뛰놀고 배는 떠나고 사내들은 잔치 상 옆에 비스듬히 누워있고 벌거벗은 긴팔을 가진 무희들은 춤을 추고 사내들의 근육은 울퉁불퉁하고 턱수염은 풍성하고 치아는 튼튼하고 누군가는 문을 노크하고 엄격한 신관들은 어쩐지 뾰로통한 표정으로 위엄을 세우려 애쓰고, 전쟁 뒤에는 잔치가 있고 왕과 전사들은 말을 타고 신들은 즐기길 허락하고....! 모든 것들 위에 시간은 흘러간다.

대영 박물관을 나오면서 든 생각은 신들의 모습은 각자의 천국을 닮았다는 것이다. 나의 천국은 어떤 것일까에 대한 대답은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식으로 하면 이럴 것 같다

'여러분이 어렸을 때 하던 일
시간을 초월하게 만들고
시간을 잊어버리게 만든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거기 우리 삶에 깃든 신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신화와 역사 사이를 거닐다 온 우리에게 대영박물관의 유물들이 주는 힌트라면? 나에겐 상상력을 가지라는 말로 들린다.

금은보화와 주지육림에 파묻혀 죽음을 택했던 아시리아 왕 사드라나팔루스의 관능적 방탕이 우리에게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 만큼이나 낯익은 현실 역시 그 우스꽝스러움, 엽기스러움, 비애, 혼란스러움, 번쩍거림, 불안, 기대, 평범함 등에서 상상력을 요구한다. 상상력이야말로 현실을 다시 새롭게 보게 하는데 그런 일을 하다가 결국은 우리도 부활하듯 새로워질 것이다. 사람들은 시칠리아 시라쿠스 히에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다. "왕이 되기 위해 그에게 부족한 것은 오직 왕국뿐이다" 나는 그말을 헤아려보며 계단을 내려왔다.

끝으로 노벨상 수상작가 쉼보르스카의 박물관에 관한 시를 한편만 소개하고 싶다. 이 시는 내 친구와 내가 어느 날 함께 읽으면서 너무나 감탄하고 열심히 살아보자고 손을 맞잡았기 때문에 그 날 이후로 내 자연사 박물관의 유물이 되었다

접시들은 있지만 식욕은 없어요
반지는 있지만 이심전심은 없어요
최소한 삼백년 전부터 쭉

부채는 있는데-홍조 띈 뺨은 어디있나요?
칼은 있는데 -분노는 어디있나요?
어두운 해질녘 류트를 퉁기던 새하얀 손은 온데 간데 없어요


영원이 결핍된 수만가지 낡은 물건들이
한자리에 다 모였어요
....

쇠붙이와 점토, 새의 깃털이
모진 시간을 견디고 소리 없이 승리를 거두었어요
고대 이집트의 말괄량이 소녀가 쓰던 머리핀이
킬킬대며 웃고 있을 뿐

왕관이 머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어요
손은 장갑에게 굴복하고 말았어요
오른쪽 구두는 발과 싸워 승리했어요

나는 어떨까요. 믿어주세요, 아직도 살아있답니다
나와 내 드레스의 경주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어요
아 ,이 드레스는 얼마나 고집이 센지!
마치 나보다 더 오래 살아남기를 열망하듯 말이죠.


(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중에서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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