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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수의 '오랑캐꽃']

베트남 노동자 도안은 충북 옥천에서 일했는데 석 달 임금과 퇴직금을 합해서 715만원을 받지 못했다. 청주 노동부에 진정서를 냈다.

감독관 앞에서 사장님이 사정했다.
"어렵습니다. 부동산을 팔아서 갚을 게요. 하지만 조금만 깎아주십쇼."
나는 두 달 안에 완불하는 조건으로 20%를 깎아주겠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좋다고 했으나 결국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얼마 후 사장님은 우선 318만원을 줄테니 형사처벌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또 사정했다. 나는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S변호사는 말했다.
"일단 주는 건 받는 게 낫죠. 나머지는 민사로 해도 되니까요."
그 말이 유리하여 나는 일부만 받고 형사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각서를 써주었다. 대신에 회사 재산을 가압류하고 민사소송을 진행시켰다. 그러느라고 5개월이 또 흘러갔다.

그러다가 도안을 한 번 더 부르게 되었다. 민사소송을 도와주는 법률구조공단 청주 지부의 요청으로 그의 인감도장을 새기고 *외화송금 전용계좌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직장을 옮겨 우리 센터에서 멀지 않은 회사에 근무하는 도안이 일요일날 왔다. 하지만 그는 못마땅하여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고, 왜 돈을 한꺼번에 못 받는지 이해하려고 들지 않았다. 우리 직원이 당황해서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이제 5개월만 기다리면 돼."
아무리 설명해도 표정 변화가 없어서 내가 나섰다.
"노동부 끝났어. 이제 법원 가야 해."
그래도 못 알아듣는 척해서 나는 베트남어 사전에서 <법원에 가다>라는 단어를 찾아서 상황을 설명했다.
"라 또아 태오 루엇 스."
도안은 얼굴이 점점 굳어지더니 화를 팍 냈다.

"왜 돈 안 줘요? 다른 사람 다 받았는데."
불신의 태도가 확연히 드러났다.
"준다니까. 이건 대한민국 정부에서 도와주는 일이니까 꼭 줘."
"빨리 받아내요."

베트남 사람은 원래 한 성깔 한다. 그래도 그렇지, 그는 우리 직원과 나를 마치 하인 부리듯 대하고 있었다. 아니, 이 녀석이, 우리를 뭘로 알고? 화가 났지만 꾹 참고 말했다.
"평일날 한 번 더 와서 외화송금 전용계좌 만들고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돼."
그러나 그는 의자에 비스듬히 누우며 우거지상을 지었다.
"나 머리 아파."

머리끝까지 올라있던 나의 화가 폭발했다.
"니가 머리 아프면 난 머리에 쥐가 나, 인마. 넌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되잖아. 그게 힘들긴 뭐가 힘들어? 좋아! 그래 니 말대로 니가 고생은 했지. 그래도 너는 돈 받을 당사자라 고생하는 거지만 그럼 나는 뭐냐? 내가 돈 한 푼이라도 받냐? 내 돈 쓰고 다녀, 인마. 청주까지 쫓아가서 너 대신 사장님하고 싸우고, 한 닢이라도 더 받아주려고 감독관하고 말다툼하고, 법률구조공단 쫓아다니며 법무관한테 부탁하고, 변호사한테 자문 받느라 아쉬운 소리 하고. 내가 너희한테 수수료 받고 일하는 사람이냐? 내가 너희들 뒤치다꺼리하느라고 한 달에 4백씩 깨진다, 이 우라질 놈아. 정부에서 두 사람 인건비라고 한 달에 180 여만 원씩 도와준다만 턱도 없다. 후원금이 나우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너희들 외국인은 한 푼도 안 내잖아. 그럼 나는 어떡하냐? 내가 돈병철이냐? 집 팔아서 다 쓰고 전세 뽑아 다 쓰고 이제는 한 달에 8만 원짜리 임대아파트 산다 이놈아, 센터 꾸려갈 목돈이라도 생길까 해서 목사라는 놈이 혹시나 하고 토요일마다 로또 산다고 동네사람들한테 손가락질 받고, 동료 목사들이 로또목사라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 자식아. 그리고 착각하지 마라. 내가 너희 놈들 이뻐서 이러는 줄 아냐? 한국사람 명예가 있어서 이 고생을 한다. 혹시라도 한국사람 베트남 가서 욕먹고 다닐까봐 이 지랄한다, 이 우라질 놈아."

이렇게 내 성깔대로 퍼부었으면 속 시원할 뻔했다. 그러나 그건 마음속으로만 씨부린 독백일 뿐이었다. 옛날 성깔 다 죽었지! 현실에서는 도안을 붙잡고 통사정했으니까.
"그래도 어떻게 해? 머리 아파도 좀 참아."

도안은 성질이 나서 핑하니 나갔다. 그리고 한 시간쯤 후에 다시 들어와서 베트남 통역에게 뭐라고 한마디 던지고 또 사라졌다.
궁금해서 물었다.
"쟤 뭐래요?"
통역은 겸연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믿어도 되냐구 하네요."

*외화송금 전용계좌 : 외화 송금 이외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는 계좌. 민사재판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재판에 이겼을 때는 이미 외국인 노동자가 출국하고 난 다음일 경우가 많다. 그때 대비하여 이 계좌를 만들어놓으면 송금하기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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