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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악령'에 사로잡힌 이시하라 신타로의 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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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악령'에 사로잡힌 이시하라 신타로의 망언

[권혁태의 '일본읽기']<30> 일본의 아시아주의

요즘 아시아가 붐이다. 아니, 동아시아가 유행이다. 크고 작은 국제회의의 주제에는 동아시아나 아시아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또 정치가들의 언설에도 아시아나 동아시아는 빠지지 않는 단골 수식어다.

아시아 유행은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일국 단위에서 논의되었던 기존의 경제론이나 안전보장론에서 벗어나 주변 지역과의 네트워크나 정합성 위에서 자국의 '진로'를 모색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특히 냉전 해체 이후, 글로벌라이제이션과 지역 불록의 움직임이 가속화되면서 이런 '아시아 구상'은 미래의 청사진으로뿐만 아니라, 현실의 정책 대안으로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게 '아시아론'은 단순히 현재진행형의 국가전략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의 아시아론에는 반드시 '역사의 악령'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악령'은 장밋빛 미래에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들이대는 호사가들의 '딴지걸기'가 아니다. 지금의 아시아론은 과거의 역사에서 뻗어 나온 현재이기 때문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서양화'의 길을 치닫던 일본에게 아시아는 '야만의 땅'이었다. 아시아는 '개조' 혹은, '약탈'의 대상이었다. 철저히 '타자'였다. 당시 유행했던 '탈아입구'는 '아시아를 벗어나서 서양으로 들어간다'는 뜻이지만, 일본은 실제로는 아시아를 벗어나지 않았다. 철저히 아시아를 짓밟아 서국제국주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하는 기반으로 삼았다.

▲ 일본 고립주의적인 아시아주의의 토대에 서 있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로이터=뉴시스
탈아입구에서 탈구입아로

1930년대 이후, 일본의 진로는 반전한다. 굳이 말하자면, 기존의 '탈아입구'가 '탈구입아'로 바뀐다. 물론 이것은 레토릭에 불과하다. 아시아를 타자화시키는 일본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전전(戰前)의 '대동아 공영권' 구상은 '서양으로부터 아시아를 해방시킨다'를 명목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일본을 맹주로 하는 서열화된 수직 관계 하에 아시아 각 지역을 자리매김하는 발상이었다.

이런 발상 하에서 아시아 각국에 대한 침략은 '아시아 해방'이라는 이름하에 미국과의 전쟁 뒤에 은폐되었다. 당시 진주만 습격을 통해 미국과의 전쟁 돌입 소식을 접한 일본의 젊은이들이 중일전쟁 시기에 가졌던 같은 아시아 국가를 침략했다는 윤리적 죄책감에서 벗어나, 일본의 침략행위에 전면적으로 협력해나간 것은 이 때문이다.

타이완, 조선, 중국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침략에 다소간의 죄책감을 느꼈던 일본의 지식인들에게 '서양으로부터 아시아를 해방하자'는 미명 하에 진행된 미국 등과 전쟁이 일종의 면죄부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고 전쟁은 끝났고, 일본은 철저히 친미국가로 '돌변'하였다. 아시아와의 관계는 오직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만 자리매김되었다. 1950년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배상교섭과 국교정상화, 그리고 1960년대의 한일회담은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 계열 하에서 자본의 논리와 안보의 논리가 결합된 결과였다.

일본의 고도성장으로 일본의 경제력이 비대화되자, 미국은 일본에게 아시아의 '분단장'을 맡기려 하였다. 경제적 역할 뿐만 아니라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 리더십을 기대한 것이다. 일본은 자위대의 외연확대로 이에 부분 화답하였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엔의 국제화'와 일본 자본의 아시아 진출을 배경으로 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발언권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아시아는 여전히 일본의 '타자'이었다.

그런데 냉전 해체 이후, 일본 사회를 둘러싼 환경이 변화한다. 냉전 해체는 아시아에 지각 변동을 가져다주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일본을 둘러싼 주변 지역의 민주화였다. 민주화는 일국 내의 민주적 질서와 제도의 정착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대외적으로는 냉전형 반공 정권의 몰락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미국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계열 관계 속에서만 아시아와의 관계를 맺고 있었던 일본에게 주변 지역의 민주화는 일종의 '재앙'이었다. 이와 같은 일본을 둘러싼 대내외적인 조건의 변화는 일본 사회가 전후 누려왔던 일국주의적 호헌평화주의에 입각한 경제성장주의(일국주의)에 일대 궤도수정을 요구하게 된다.

'공동의 집' 구상의 등장

당연히 지난 100년 동안 일본 근현대 속에서 수없이 등장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아시아, 좁게는 동북아시아 속에 일본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한 모색으로 이어진다. 주로 2000년대 이후에 등장한 민간 측의 아시아론을 거칠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통적인 친미 반공 노선에서 벗어나(미일동맹 체제로부터의 탈피), 동북 아시아국가와의 협력/공존을 강화하자는 입장이 있다. 일종의 아시아 중시 노선이다. 물론 유럽연합(EU)과 같은 지역주의로부터 받은 자극이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저명한 사회학자인 미야다이 신지(宮台真司)는 미국 중심의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항하기 위한 '아시아주의'(미야다이는 아시아주의라는 말 대신에 亞細亞主義라는 말을 사용한다)를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아시아주의는 원래 국수주의와 무관했으나 제국주의 일본의 대륙진출과 대동아공영권을 정당화하는데 이용되었고, 이 과정에서 일본을 맹주로 하는 아시아주의가 자리를 잡아갔으며 이에 대한 반동으로 전후 일본 사회에서 아시아주의는 일종의 '금구'(禁句)가 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친미 동맹 노선 속에서 경제발전을 구가하던 전후 일본에게 아시아란 철저하게 경제적으로 '타자화'된 시장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냉전 해체 후, 미국주도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세계적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유럽연합(EU)처럼 아시아도 약자연합으로서의 '맹주 없는 아시아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시아를 하나의 지역적 개념으로 묶어낼 수 있는 문화적 기반은 애니메이션, 음악, 영화 등과 같은 젊은 세대 중심의 서브 컬처이며, 이와 같은 문화적 기반 위에서 군사경제 불록의 결성을 상정한다. 미야다이의 아시아주의의 특징은 미국 중심의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한 약자연합으로서, 그리고 애니메이션 등의 서브 컬처 중심으로, 그리고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역사적 비판으로서 주창하는 점에 있다.

▲ 강상중 도쿄대 교수 ⓒ프레시안
이와 같은 동북아시아론은 다소의 시각차는 존재하지만 와다 하루키(和田春樹)나 강상중(姜尙中)에게서도 발견된다. 와다는 첫째로 전후 일본에는 '국가에 대한 책임 의식과 지역주의가 금기시'되었는데, 이는 대동아 공영권의 파산이라는 역사적 유산과 일본이 처해있는 동북아시아라는 지역 현실에서 기인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냉전 해체 이후 등장하게 된 새로운 조건들은 일본을 지역주의라는 틀 속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요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둘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시아는 유럽과 같은 문화적 동질성이 높지 않으며, 따라서 정치적/전략적 개념으로서 '공동의 집'을 구상하여야 하여 이곳에 포함되어야 할 국가는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를 구성하는 다양한 국가 및 지역 군이다.

셋째는 이와 같은 '공동의 집' 구상의 실현은 한반도가 중심이 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한국과 재외한국인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분열적인 동북아시아론의 등장

문제는 이와 같은 '다양성과 공생'(미야다이), '내셔널한 틀에서 벗어난 보편적인 시민권'(강상중), '인간적인 협력관계'(와다)를 내용으로 하는 동북아시아론과는 달리, 분열적인 동북 아시아론도 동시에 대두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들은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동북아시아론을 중국 중심의 '일본 때리기'의 일환으로 해석하면서, 따라서 주변국(중국, 북한)과의 대립관계를 분명히 하면서 미국과의 동맹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공격적인 '고립주의적 일본'을 주장한다.

일본 핵무장과 헌법개정을 주장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우파 학자인 나까니시 테루마사(中西輝政)는 한국에서 일고 있는 '동북아시아론'을 "유교적 중화질서 사상에 있는 「교린」의 현대판이며,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문자 그대로의 「제국」적 질서 속에 일본을 점점 끌어당기려는 대륙발 계절풍이며, 이는 언젠가는 회오리바람이 되어 일본에 큰 재앙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중국위협이 현실 속에서 '중화사상의 복원'이라는 형태로 일본을 포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와타베 쇼이치(渡部昇一)는 이와 같은 중국 중심의 일본 포위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은 미국을 설득해서 타이완을 독립시킨 다음, 미국/일본/타이완이 삼국 동맹을 맺어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을 세워야 되며, 이와 같은 중국 포위의 새로운 동맹체제의 구축이야말로 아시아의 평화 질서 구축과 그 유지를 위한 핵심 고리라고 단언한다.

또 도쿄도 지사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는 나카니시와의 대담에서 중국은 언제나 일본을 '가상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폭발하는 중국 내셔날리즘을 봉쇄하라"고 말한다.

이 같은 입장들은 주로 근현대 이후, 특히 최근의 냉전 해체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중국 부상과 한반도의 긴장완화의 흐름을 일본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일본 사회의 고립주의적 대응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일종의 전략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급진적인 숙명론적 동아시아 연합 불가론도 있다. 후루타 히로시(古田博司)는 중국, 한국, 북한의 내셔날리즘은 '고층(古層)의 중화사상'에 '신층(新層)의 국가주의/민족주의'가 겹쳐진 이중구조의 내셔날리즘이며, 중화사상에는 '야만족' 일본에 대한 멸시가, 그리고 국가주의/민족주의에는 '반일'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다시 말하면 이들 나라의 중세 역사는 일본 멸시의 중화사상의 역사이며, 근현대 국가의 역사는 일본에 대한 저항이며, 따라서 일본 멸시는 '전통'이고 반일은 수정 불가능한 '국시'라고 단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남북한의 화해는 일본을 포위하는 중국, 한국, 북한의 '반일 트라이앵글'의 완성의 계기라고 말한다.

일본에서 최근 등장하는 중국 위협론은 중국을 국제질서 밖에 존재하는 특수 국가로 간주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특수국가론은 위에서 말한 역사와 결합됨으로써 중국 위협은 일본에게 숙명으로 다가온다. 일본에서 말하는 '위협'이라는 발상 자체가 멸시의 다른 표현이며, 원래 세계적인 서열화된 차별구조의 산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중국위협론'이 '실체'와 관계없이 일본 사회에서 냉전 해체 이후에 분열적 아시아주의/고립주의적 일본주의로 귀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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