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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삶의 신화는?

[정혜윤의 날아다니는 여행기] 런던에서 점퍼가, 대영박물관1

언젠가 누군가 자신의 꿈은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에게 보내는 보물 상자 속에 들어가 보는 것이라고 말했던게 기억난다. 또 언젠가 어린 날의 운동장 느티나무 아래서 너 트로이에 대해 들어봤니? 조심스럽게 물었던 것이랑 어느날 맥주를 마시면서 람세스 2세와 그의 히타이트 족 아내, 아부심벨 신전과 그들이 광적으로 꿈꿨던 불멸, 그리고 영화 미이라에 나오는 파라오의 정부 아낙수나문이 실제 인물이었을까? 같은 이야기를 나눴던게 기억난다. 그런 기억 중 언제나 내 마음에 서늘한 한 줄기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내 나이 열세살 때 우연히 읽었던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나오는 리디아왕에 관한 것이다. 아내의 아름다움에 취한 왕은 자신의 신하에게 몰래 아내의 나신을 볼 것을 명하고 밤에 드디어 신하는 왕비의 조각 같은 몸을 보게 되는데… 이 장면은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가장 운명적인 장면으로 재탄생한다. 모닥불이 타오르는 사막의 밤에 모두들 둥글게 모여앉아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아름답고 지적이고 강한 여인이 리디아의 왕비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던 남자 중 하나가 그녀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다.

▲ 아우구스투스의 흉상. 스스로 신이라 부르는 것에 결국 성공한 작고 나이든 남자의 슬픈 듯 겸손한 얼굴!
인간을 신으로 만들어주는 땅의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를 신비감에 푹 빠져들게 한다.

나는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가 죽은 후 안토니우스를 사로잡기 위해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진주를 식초에 녹여 포도주에 넣어 마셔버리는 장면, 결국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의 치마폭에 빠졌다가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에게 패하는 것, 살아남은 클레오파트라가 로마로 끌려가 개선 행진에서 웃음거리가 되기 전 뱀에게 칭칭 감겨 자살(자살이냐 타살이냐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나는 자살 쪽에 은근히 기대를 건다. 그녀는 프톨레마이오스의 피를 이어받은 파라오 아닌가?) 하는 것,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원로원에서 받고 달력의 8월 달 속에 영원히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 것까지의 이야기에 깊숙이 매료되는데 그 아우구스투스의 흉상 중 하나를 이곳 대영 박물관에서 봤을 때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가 꿈꿨으나 이루지 못한 것, 즉 스스로 신이라 부르는 것에 결국 성공한 한 작고 나이든 남자의 슬픈 듯 겸손한 얼굴을 봤을 때, 나는 그만 흉상의 딱딱한 피부를 벗겨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싶은 유혹을 느낀 것이다. 일찌기 로마인이 두려워 한 사람은 딱 둘뿐이었는데 하나는 한니발이었고 하나는 가냘픈 여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였던, 그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집트의 잉여 농산물이 로마를 풍성하게 해주었던 그 시절이야기요!

대영 박물관은 길을 잃고 헤매기 좋은 곳이다. 이곳엔 '원조'들이 모여서 스스로의 가치를 두고 고결한 경쟁을 벌이는 곳이고 오래된 신들이 중단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곳이다.

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을 대영박물관의 44개 이오니아식 계단을 앞에 두고 생각해냈다. 레오나르도는 모델을 구하지 못해 쩔쩔 매는 제자들에게 젖은 담벼락을 가리키면서 저것을 모델로 취하게,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으니,전투 장면이든 여인의 몸이든, 동물의 몸이든. 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대영박물관이 내겐 초현실주의 공간으로 느껴지는 것은 천이백만 점 유물 들을 그저 박물관에 보관중인 예술 작품으로만 본다면 대영 박물관은 우리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진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이 유물들 중 어느 하나가 나에게 젖은 담벼락이 되어주길 간절히 원하는데 우리가 매끈한 여인의 다리를 털장갑을 끼고 만지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듯 이 유물들을 감히 질문 없이 대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우리는 유물을 통해 유물 너머 어머어마한 문명과 도시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인데 이 유물들은 CG의 테크닉도 아니고 상상으로 가득찬 문장만도 아니고 어떤 구체적인 존재가 꿈을 안고 믿음으로 땅에 다리 붙이고 밥 먹으면서 고민하면서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이 나를 떨리게 한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한 가지 주문을 외면서 대영박물관 안으로 들어섰다.

'당신의 소원을 조심하라 -이루어질지도 모르니까'

'당신의 소원을 조심하라 -흔적을 남길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인디애나 존스 4>에 나오는 크리스탈 해골과 길가메쉬 서사시, 아프리카 베닌의 흑인 예술가. 미이라, 수메르의 점토판들 사이에서 곧 길을 잃고 말았다.

나는 제일 먼저 그 옛날 이혼의 슬픔에 잠겨 여행을 떠났던 아가사 크리스티가 고고학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던 수메르 문명의 우르 (성서의 아브라함의 고향인 것으로 짐작되기도 하는 곳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 곳의 폐허에서 아가사 크리스티는 귀를 기울여 수로를 따라 흐르던 강물이 햇빛아래 출렁대는 소리, 그 옆에서 밀이 황금색으로 일렁대는 소리, 지구라트의 그림자를 등 뒤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수런거리는 소리를 다 들었을지도 모른다. 우르 발굴의 최대 화제작은 푸아비란 이름을 가진 왕비 무덤이었던 것 같다.

"푸아비 여왕은 죽음이 다가오자 먼저 간 남편 곁에 묻어달라고 요청했다. 사람들은 구덩이를 파고 선왕의 무덤 위에 여왕의 묘실을 마련했다. 여왕의 손 옆에는 황금 술잔이 놓여있었다… 금과 은 청금석, 홍옥수, 마노 따위를 엮은 목걸이가 아직도 여왕의 목에 걸려 있었다. 입성은 다 썩어 없어졌지만 한 때 그 옷차림을 장식했던 황금 부적들은 이제 여왕의 초록빛 아이쉐도우가 가득 들어 있는 그릇과 나란히 놓여있었다… 여왕은 황금 빨대로 음료를 마실 수 있고 곁에서 악사들이 연주하는 하프 소리도 들을 수 있을 터였다."
(스티븐 버트먼, <낭만과 모험의 고고학 여행> -우르 편)

그것은 은으로 만든 리본이었다. 하지만 그 리본은 여인의 머리에 달려있지 않고 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다. 여인은 리본을 똘똘 말아서 주머니에 넣은 채 집에서 나왔는데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 리본의 주인은 왜 리본을 머리에 달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녀는 장례식에 늦는 바람에 제대로 몸치장을 할 시간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장례식에 늦을까봐 걱정한 나머지 걸음을 서두르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몸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끼고 하프가 흙먼지 속으로 천천히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았을 때 그녀의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스친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낭만과 모험의 고고학여행 -우르 ,어느 순장당한 여인의 몸차림)

일식과 월식에 관심을 갖고 있고 점성술을 믿는가? 당신의 별자리를 오늘의 운세난에서 읽어보는가? 맥주를 좋아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수메르 문명의 리듬 안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 모두를 우리에게 알려줬다. 수메르 문명에서 원의 중심각은 360도이고 하루는 24시간이고 한 시간은 60분이고 바퀴는 굴러갔고 학생들은 분수와 제곱을 배웠다.

우르는 수메르 문명에서도 가장 번창했던 초기 도시 국가였지만 메소포타미아의 강들이 물줄기를 바꾸는 바람에 버려져 한때는 늑대들의 차지가 되기도 했던 곳이다. 1927년과 1932년 사이에 대영박물관 발굴팀이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사이 도시의 쓰레기와 무덤들 사이에서 우르를 발굴해 냈을 때 그 화려함에서 최고였던 것은 푸아비 왕비의 무덤이었다. 나는 그녀의 시신 곁에 있었다던 초록색 아이쉐도우 한 통의 존재에 계속 마음이 쓰인다. 죽어서도 아름답고 싶은 마음이 수천 년 전의 여인과 나를 연결시켜준다.(나는 그날 그녀와 나의 인간적인 욕망을 위해 초록색 아이쉐도우를 두 통 샀다. 한 통은 쓰고 한통은 묻으려고) 무덤에서 가장 놀라왔던 것은 순장당한 사람들이었다는데 도대체 누가 왜 순장 되었을까? 그것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나는 스키타이족들의 정신없는 닥치는 대로의 순장 습관에 대해선 들어봤지만 우르의 순장 습관에 대해선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순장당할 여인이 주머니에 말아 넣고 나온 리본 한줄기는 그래서 주인과 함께 영원히 수수께끼다. 그녀는 자신이 순장당할 것을 알고 있었을까? 알았더라면 리본이나 몸치장 따위는 상관없지 않았을까? 아니면 알았기 때문에 리본이나 몸치장이 더 중요했을까? 나는 대영 박물관에서 보드게임, 전승 기념판 ,황금 하프 같은 우르 무덤 출토물 들을 보았는데 그 모자이크 상감 조각 속에서 왕은 신뢰하는 신하들과 수메르 군인에 둘러싸여 한낮의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죄수들은 왕 앞에 끌려가 고개를 조아리고 자비로운 사면을 기다리고 있고 악사들은 대기 중이었다. 그들 모두가 우르에서 보낸 한 나절 찬란한 오후다. 이 수메르를 물리친 것으로 알려진 왕이 바로 바빌론의 위엄 있는 왕, 함무라비 법전으로 잘 알려진 함무라비다.(함무라비 법전의 효력은 지금도 살아 있어서 이란에서 스토커에게 화상을 입어 실명한 여인이 함부라비 법의 눈에는 눈의 정신을 들어 스토커도 실명시킬 것을 요구했고 재판이 그녀의 손을 들어준 것 때문에 국제 사회가 논란중이다. 법의 집행을 빌미로 한 또 하나의 범죄라는 의견이 인권 단체 쪽에서 강력하게 제기되었는데 스토킹한 남자는 곧 눈에 산이 부어질 예정이다. 그러나 당시 함무라비 법전의 의미는 지금과 달랐을 것 같다.야만의 상태에서 어떤 식으로든 질서가 부여되는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보는게 옳지 않을까 싶은데..)

▲ 푸아비 왕비의 무덤에서 발견된 원통 인장.

우리는 대영 박물관에서 이라크전을 겪은 바그다드가 완전히 잃어버린 것까지 포함해 메소포타미아 번영의 천일야화를 한도 끝도 없이 보거나 들을 수 있다.수메르,바빌로니아,히타이트,아시리아,페르시아.정복자가 바뀌면 신화도 바뀌었지만 그래도 신들은 언제나 두 개의 강물줄기 사이에 있고 전사들은 갈대밭이나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습지에서 싸우고 사람들은 바벨탑 같은 지구라트를 세우고 왕들은 험악한 산 같은 천연 요새가 없는 평야의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끝없이 벽을 쌓고 사자를 조각하고 문을 달았다. 메소포타미아 주변엔 돌이나 나무가 거의 없어서 점토로 된 유물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것들은 어떤 해의 보리 수확량을 기록한 문자판이나 맥주의 성분을 적은 것, 기원전 2600년경의 무덤에서 나온 도장 같은 것들이다. 그들이 그 도장으로 무슨 계약을 맺었을까 상상해 보는 건 즐겁다. 누가 어떤 이유로 얼마나 빚을 졌을까? 언제 몇 배로 갚을 것인가? 그들은 손바닥 만한 점토에 갈대나 상아로 만든 철필로 쐐기 문자를 정성껏 기록했을 것이다. 점토판 2만 5천개를 수집해서 편지, 의학적 자료, 하늘을 관찰한 것까지 모조리 왕궁의 도서관(바로 길가메쉬가 발견된 곳)에 보관하게 했다는 아시리아 제국의 아슈르바니팔 왕, 아시리아의 수도였던 니네베(이라크 전쟁으로 유명해진 모술이란 도시근처)의 왕국 성벽을 장식하던 사자 두 마리. 사자 사냥, 그리고 이국적인 동식물로 가득 차 있었던 왕궁 옆의 공원. 아시리아 멸망 후 들어선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 바빌론(신들의 문 이라는 뜻이었다).신들의 문에 인간의 박물관을 만들어서 제국 영토의 끝과 먼 지역에서 구한 물품이나 조각상을 보관하도록 했다는 위대한 마지막 왕 네부카드 네자르. 그는 왕궁이 모든 사람의 놀라움, 제국의 중심, 빛나는 거주지, 장엄한 주택이길 꿈꾸며 몽환적인 푸른색으로 궁전을 꾸미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바빌론의 많은 이야기 중 공중 정원 이야기는 언제나 경이롭다. 먼 이국 동방 메디아 출신의 아내 아미타스 여왕의 향수를 달래기 위해, 왕비가 언제고 고개를 들면 고향의 푸른 언덕을 상상할 수 있도록 왕의 명령으로 만들어졌다는 공중 정원.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였던 그 정원은 이제 이라크 전쟁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신바빌로니아 왕국은 곧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고, 그 페르시아 제국은 다시 알렉산더에게 무릎을 꿇어, 다리우스 황제의 인간의 상상 이상이었다는 지상 최대의 화려한 궁전과 애통함은 유물이 되고 알렉산더 대왕 역시 바빌론에서 죽음을 맞았다. 알렉산더의 시신은 당시 바빌론의 관습대로 황금 꿀에 담겨져 마케도니아로 호송되었는데 그때 그의 황금관을 실은 수레를 끌던 64마리의 노새들은 각각 금관을 쓰고 움직일 때마다 딸랑딸랑 황금 종소리를 냈다고 알려졌다. 그의 시신 행렬은 고향에 이르지 못하고 이집트에서 멈췄는데 그의 친애하는 장군 프톨레마이오스와 후손들이 이집트 땅 어딘가에 몰래 몰래 숨겨두어서 왕조의 멸망과 함께 알렉산더왕의 시신은 영원히 비밀 속에 묻혀 버렸다. 징기스칸의 무덤이나 알렉산더의 무덤 둘 중 하나가 발견된다면 세계는 다시 한번 경이로움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페르시아의 번영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알 수 있는 역설적인 사례로는 이웃 나라 이오니아의 식민지에 살던 천재 학자 데모크리토스의 말을 떠올리면 좋을 듯하다. 그는, 나는 페르시아의 왕이 되느니 차라리 하나의 인과율을 터득하는 쪽을 택하겠소이다 라고 했다. 페르시아의 부귀 영화엔 눈길 한번 안주고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에 몰두해 있는 가난한 데모크리토스를 상상해 보는 것도 좋긴 좋지만 솔직히 다리우스 황제의 궁을 한번 보고 싶기도 하다.

지금 메소토파미아 지역은 대부분 이라크의 땅인데 만약 우리가 어느 날 바그다드 사진을 보게 된다면, 폭탄과 공습으로 얼룩진 폐허 너머 그 앞에 여전히 흐르고 있는 강이 바로 티그리스 강이라 생각하면 된다. 나는 언제고 한번 하늘에서 티그리스 강을 내려다보고 싶다. 그 강이 물줄기를 바꾸지 않고 지금도 지지하는 도시의 상처받은 모습을. 그 강은 혹시 인간의 눈물이 넘쳐흘러 물줄기를 바꾸지 못하고 있는건 아닐까?

어느 날 런던 사람들이 대경실색할 뉴스를 들은 것도 바로 이 메소포타미아 문명 때문이었다.1872년 12월 3일 쐐기 문자를 연구하던 대영박물관의 조지 스미스 연구원이 길가메쉬 서사시에도 성서의 대홍수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발표했던 것이다. 성서의 노아가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일 수 있다니? 그렇다면 성서가 무언가를 베꼈단 말인가? 성서는 오로지 성령의 힘만으로 일필휘지로 기록된 것 아닌가? 데일리 델레그래프 신문사는 재빨리 그 젊은 연구원에게 재정 지원을 해주고 그는 득달같이 티그리스 강변으로 가서 이듬해엔 대홍수의 잃어버린 점토판 문서를 잔뜩 찾아내 대서특필된다. 그 때 그가 찾아낸 길가메쉬 서사시의 점토판 역시 대영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오랫동안 종교적인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노아의 홍수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를테면 지구라트는 바벨탑에 영감을 주었는가? 창세기의 6일간의 천지 창조 역시 메소포타미아 창조 서사시의 영향을 받은 것인가 ?니네베 유적 왕실 도서관에서 나온 왕들의 명단은? 논란거리는 많았다.

나는 언젠가부터 인류 최초의 영웅이라는, 3분의 2는 신이고 3분의 1은 인간인 길가메쉬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종교적인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 아마 출발은 전적으로 이 묘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성난 이마
들소의 눈
청금석 수염
보리 같은 머리털
멋진 손가락의 소유자였다
어른이 되었을 때 그의 남성미는 완벽했으며
세상 최고의 남자였다
그는 세상 모든 곳을 둘러 보았으나
우르크 성으로 돌아왔다
긴 여정이었고 피로에 쌓여 몹시 지쳐있었다
그가 돌아오자 곧장 이 이야기를 돌에 새겨놓았다'
(길가메쉬 서사시 중에서)

'옛날에 옛날 옛적에 먼 옛날 옛밤에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신들의 모임에서 인간의 씨를 홍수로 쓸어버리기로 결정한 후에' 그러니까 대홍수 이후에 영웅이자 변강쇠, 반신반인 왕이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길가메쉬였단 것이고 그 길가메쉬의 내용은 앞뒤 거두절미한다면 서사시 안에 거의 완벽하게 이렇게 정리되어있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
그렇지만 지금도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
한 친구를 사랑하다가 그 친구를
잃은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친구를 다시 살려낼 힘이
자기에게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는 이야기'

(<길가메쉬 서사시> 중에서)

▲ 길가메쉬 서사시 점토판.
길가메쉬 서사시의 서글픈 인간적인 결말은 어느 날 하루 몸이 아픈 친구와 자기 자신을 위해 대홍수 이후 살아남은 현자에게서 영생의 식물을 구한 길가메쉬가 깜빡 잠이 든 사이에 뱀이 그 식물을 먹어버린다는 것이다.(그래서 뱀은 젊어지느라고 매번 허물을 벗는다는 설이 등장한다) 잠에서 깬 길가메쉬는 친구를 구하는 것도, 영생을 누리는 것도 자신의 운명이 아니고 오직 이 도시의 성벽만이 자기 자신보다 오래 살아남으리라는 것을 깨닫고 성벽을 슬픈 눈으로 바라본다. 이것이 야단스럽게 인생을 즐긴 영웅의 마지막이다. 그가 헤라클레스처럼 하늘에 올라가 하늘의 별이 되었단 이야기는 못 들어봤어도 나는 밤길에 하늘의 별을 볼 때 가끔 수메르인들 생각을 해보곤 한다. 수메르인들은 별들을 그의 병사로 보았고 은하수를 왕도라 보았고 훌륭한 여자는 별들의 움직임을 담는 그릇으로 보았다. 그들은 뛰어난 과학자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어린 시절 할머니 댁으로 가는 밤길을 혼자 걷다가 밤하늘의 신비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허둥지둥 대던 내 혼란스러우면서도 경외감을 품고 있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따뜻하다. 그 때 나는 밤하늘이 내 머리위로 무너져 내리지 않는 것과 별이 무슨 상관이 있지 않을까 몰두해 내가 모르는 보이지 않는 끈이란 게 하늘에 있지 않을까 상상했었던 것 같다. 강을 숭배하던 바빌로니아인들은 민물과 짠물의 신을 만들었고 마른땅은 신이 물 위에 멍석을 깔아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민물과 짠물이 만나는 곳이 얼마나 비옥한 삼각주인가를 아는 우리는 물리적 힘을 아직 모르던 시대 오래전 사람들도 우리랑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었단 것을 알게 된다.

어쨌든 노아의 홍수와 수메르 길가메쉬 중 누가 승자일까? 많은 현명한 학자들은 자! 자! 차분하게 들으세요. 원래 빙하기의 끝에는 세계 도처에서 홍수가 아주 많았답니다. 쾅! 쾅! 쾅! 이렇게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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