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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낮은 데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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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낮은 데서 옵니다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139>

봄은 낮은 데서 옵니다.
산꼭대기에서부터 오는 게 아니라 산발치에서 먼저 옵니다.
언덕 위에서보다 밭둑에서 먼저 옵니다. 개울가에서 먼저 오고 담밑에서부터 꿈틀거리며 옵니다. 어린 풀들은 그런데서 먼저 푸른빛을 되찾습니다. 나무 둥치 아래 모인 풀들이 푸르게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며 나뭇가지도 하늘을 향해 어깨 관절을 풉니다.

봄은 변두리에서부터 옵니다. 사람들이 아직 찾아오지 않은 논둑이나 개울가 이런 데서 먼저 옵니다. 들판 끝에서 힘들게 겨울을 견디고 고개를 든 꽃다지나 냉이의 여린 잎에서부터 옵니다. 도심에서 먼저 오지 않습니다. 아니 도시 한복판에 가장 늦게 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가장 늦게 오고, 사람들이 관심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먼저 옵니다. 사람들이 따스한 눈길을 주지 않는 곳,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봄은 먼저 옵니다.

봄바람은 그런 먼 곳, 낮은 곳, 구석지고 응달진 곳에 사는 풀과 나무들을 푸르게 바꾸어 놓은 다음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와서 도시 한복판의 가로수 껍질을 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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