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러냐...우선 북한의 국내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3월 8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있는데, 그 후에 첫 회의가 4월 초 쯤 소집될 거예요. 우선 금년 예산심의를 할 거고, 정부 조직과 관련 선거도 몇 가지 할 겁니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재추대하는 일입니다.
1998년 8월 31일 '대포동 1호'를 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김정일 위원장이 9월 초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되는 걸 기념하는 의미가 있었고, '광명성 1호라는 인공지구위성'이라고 선전했습니다. 우리는 그냥 인공위성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은 좀 더 자세하게 표현해요. 그 위성이 지구를 돈다는 거지.
축구공만한 크기의 위성이라고 했는데 주파수까지 확인해 주면서 '김일성 장군의 노래', '김정일 장군의 노래'가 나온다고 했지요. 그런데 다른 나라들이 아무리 체크를 해도 수신은 안 됐었습니다.
이번에 쏜다는 광명성 2호 역시 대내외 겸용입니다. 그러면서도 발사는 우주개발 차원이기 때문에 군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건 옳지 않다는 식으로 얘기합니다. 그러나 누가 봐도 군사적인 의미가 크지요. 98년에도 밖에다는 위성이라고 해 놓고, 내부적으로는 '장거리 탄도미사일과 그 발사 기술을 가지고 있다. 선군 시대의 기술 진전이다'는 식으로 인민들에게 자긍심 심어주는 말을 했었습니다.
이번에도 아마 거리가 몇 Km 나오느냐에 따라 '강력한 방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선군정치랑 연결시켜서 설명할 거고, 김정일 위원장과 후계자를 연계해서 후계 문제를 정당화하는 소재로도 삼을 겁니다. 그래서 어쨌든 쏘긴 쏠 겁니다. 미국이 아무리 달래도.
▲ 지난달 27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기자회견을 갖고 스티븐 보즈워스 특사를 6자회담 당사국인 한국, 일본 ,중국에 파견하기로 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클린턴 국무장관, 스티븐 보즈워스 특사(전 주한 미대사), 성김 북핵 특사 ⓒ연합뉴스 |
대포동 1호와 페리 프로세스의 추억
대외적으로는 물론 대미협상용인데, 거기에는 뿌리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걸 좀 캐볼까요.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푸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정치적 요구인 수교협상 개시와 경제적 요구인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해주는 대가로 핵 활동을 하지 않게 하는 거였습니다. 94년 10월 체결된 북미 제네바합의가 그 구도입니다.
그런데 그 직후 치러진 미 의회 선거(중간선거)에서 야당인 공화당이 승리하고, 제네바합의의 이행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자 미국의 대북약속 이행이 좀 지체됩니다. 그렇지만 클린턴 대통령만은 인기가 있어서 97년부터 두 번째 임기를 맞게 되는데, 98년에는 한국에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양국이 대북정책의 궤도를 같이 하게 됩니다.
바로 그 때 미국 쪽에서 8월 중순에 '금창리 지하동굴 핵개발 의혹' 사건이 언론에 터졌습니다. 아마도 공화당 강경파와 연계되거나 군산복합체와 가까운 쪽에서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을 역류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제기한 의혹이었다고 봅니다.
당연히 여론이 역류하기 시작했지요. 그런 분위기에서 8월 말 북한이 미사일까지 쐈단 말예요. KEDO 사업(원자력발전소 건설)도 자꾸 늦어지고 수교협상은 아예 물건너가는 것 같으니까 역으로 강수를 둔겁니다. '약속을 지킬 거냐 아니면 대충 뭉갤 거냐' 하고 미국에 대든 겁니다.
아, 그런데 내가 이렇게 말하면 '거 봐라. 그러니까 북한한테는 잘해주면 안 돼. 잘 해줄수록 거칠어지고 요구조건도 높아진다니까. 오냐오냐 키워서 버릇없는 애들처럼 말이야'라고 하는 분들이 또 나오겠네요.
그런데 외교에서는 강국들이 '약자의 공갈'에 이런 식으로 유연하게 대응들을 해요. 강국들이 국가이익과 관련해서 전략적 손실을 입지 않기 위해서죠. 미국 입장에서는 핵과 미사일 같은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방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죠. 물론 철학이 다르면 대응도 달라지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악마와의 키스'도 합니다. 부시가 그거 안 하려다가 핵물질 문제를 핵무기 문제로 '격상'시킨 거 아닙니까.
어쨌든 98년 미사일은 1500~1600km 정도 날아가다가 떨어진 걸로 돼있는데, 그걸로 실력을 충분히 과시했죠. 미국 본토로 날아가 꽂혔다면 진짜 복잡해지는 건데, 그 정도 날아가다가 바다에 떨어져서 미국을 더 이상 곤란하게 하지 않았고, 미사일의 위력을 입증해서 협상 고지를 확보할 수 있었죠. 북한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결과였죠.
미국 내 여론도 역류하려 하고 일본에서도 비분강개하니까 클린턴 정부도 고민됐죠. 그런데 그렇게 미국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한국 정부가 적극 나서서 '절대 흥분할 일이 아니다. 동북아 냉전구조가 해체되지 않으면, 북한의 도발과 위협작인 행동의 원인을 발본색원하지 않으면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라고 미국을 설득했습니다.
냉전구조가 해체되지 않았다는 건 무슨 얘긴가. 잠깐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가서...우리는 90년대 초에 북한의 동맹국이던 소련, 중국과 수교했는데 북한은 미국, 일본과 수교하지 못한 걸 말하는 거죠. 북한은 90년대 초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동독이 서독에 흡수 통일되는 상황에서 심각한 체제위기를 느꼈습니다. 당시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에 그런 내용이 절절하게 자주 나왔어요.
현실적으로 북한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일조(북일)수교를 시도하고, 또 92년 1월에는 김용순 비서를 미국에 보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할 테니 관계를 정상화하자고 말했습니다. 한반도에 냉전구조가 해체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고, 남쪽에 흡수당할 거라는 절박한 심정 때문이었죠. '조선은 하나다'라는 입장에서 투-코리아를 받아들이고라도 일단 살아남자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안 되니까 북한은 드디어 핵카드를 꺼내게 됩니다. 이판사판 논리죠. 하지만 클린턴 정부는 북한이 핵카드를 통해 달성하려는 목표가 결국 체제 인정과 경제 지원이란 걸 알게 되면서, 북한의 요구를 맞춰 줬고, 그래서 동북아를 잠잠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공화당 의회 때문에 그게 막히니까 북한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차원의 정세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도박성 조치를 했는데, 그게 바로 미사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정부는 냉전 해체의 맥락에서 접근해야 문제가 풀린다고 미국을 설득했고, 그걸 클린턴 정부가 받아 들였습니다. 1기 행정부 때 국방장관을 했고 미국 보수진영도 인정하는 윌리엄 페리를 대북정책 조정관으로 임명했습니다.
페리는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하고 협의를 한 후에 99년 5월 북한에까지 들어갔습니다. 결국 지금의 6자회담 참가국들하고 협의를 한 셈입니다. 그 결과를 정리한 것이 '페리 프로세스'였습니다. 핵심은, 북한의 핵 활동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게 하려면 미국, 일본이 북한과 수교하고 남북관계도 적극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통해서 북한도 개방개혁을 적극 해야 한다는 권고였습니다.
2000년 구도 복귀 및 몸값올리기…北 의도 뚜렷
▲ 2000년 당시 윌리엄 페리 미 대북정책조정관(맨 오른쪽)이 미국을 방문한 조명록 차수를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
페리 자신이 공언했듯이 임동원 당시 외교안보수석이 그 구상을 주도했는데, 페리 프로세스가 만들어지고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시키기 위한 '기공식' 차원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됩니다.
그 후 2000년 10월 북한의 조명록이 워싱턴을 방문하고, 거기서 조미공동성명(북미 공동코뮈니케)이 나오고, 연이어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클린턴 대통령의 2000년 말 방북계획도 나왔었지 않습니까. 그 때 올브라이트의 방북을 전후해서 미사일에 대해서도 미북 간에 상당한 협의가 있었던 걸로 알려졌죠.
북한은 연간 10억 불을 지원하면 미사일 수출과 발사를 안 하겠다고 했는데, 우선 3년 동안 10억 불 상당의 식량을 지원하는 것으로 얘기됐던 것 같고...그렇게 남북관계와 미북관계가 좋아지니까 동북아 냉전구조의 중요한 축인 일북관계도 상당히 진척됐죠. 일본은 식민지 배상 문제를 풀어야 되는데 100억 불 정도를 지원할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가 됐어요.
그런데 2001년 부시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모든 것이 없었던 일로 됐습니다.
그렇게 8년이 지나고 미국에 민주당 정부가 다시 들어서면서 핵문제를 유연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풀려고 하니까 북한은 미사일을 가지고 확실히 몸값을 높여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굳히기 전략입니다. 부시 시절의 기억을 없애 버리고, 99년 페리 프로세스와 2000년 조미공동성명의 상황으로 확실히 돌아가자는 의미로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 오바마 정부를 상대로 핵과 미사일 한데 묶어서 협상을 해야 하는 사정이 내부적으로도 있습니다.
뭐냐 하면...북한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이자 김정일 탄생 70주년인 2012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설정해 놨습니다. 그렇지만 식량난, 에너지난, 자재난 등 경제 현실을 감안했을 때 특별한 조치 없이 자력으로 강성대국으로 가는 경제 기반을 구축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밖으로부터 공급이 돼야 되는데 그러한 애로를 한 방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라고 본겁니다. 북한 사람들은 '단번도약', '직방해결' 이란 말을 하는데, 미국이 체제인정과 경제지원을 보장해 줄 수 있다고 보는 거지요. 그게 틀린 것도 아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즈워스가 오는 게 핵심 포인트
오바마 정부의 대북 특사가 된 스티븐 보즈워스가 이번 주하고 다음 주 한국, 중국, 일본을 순방하고, 러시아 사람들도 만나고, 북한에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어쨌든 최소한 6자회담 참가국 중 5개국이 만난다면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수출 중단을 유도하기 위한 보상 규모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얘기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해결 방식은 페리 프로세스와 조미공동성명 등등에 다 나와 있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동북아 냉전구조의 해체라는 기본 구도로 간다, 그래서 체제인정하고 경제지원도 해준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어야겠지요.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게는 현재 시점에서 각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을 들어보고 조율한 뒤에, 밑그림이 나오면 마지막으로 북한과 협상하고 본격적인 해결 수순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사일은 그 자체로도 위협이 되지만 핵카드의 위력을 보강해 주는 보조 카드로서의 성격이 강하다고 봐요. 그런데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북한은 핵탄두를 소형화하고 경량화하는 기술을 가지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동북아 냉전구조 해체라는 기존의 거래방식으로는 북한을 관리할 수 없을 겁니다. 남북관계에서도 지금처럼 구두선으로라도 화해협력을 얘길하기 어렵게 될 겁니다. 그래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이번 동북아 순방길에 북핵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강조했던 겁니다. 비록 후계문제로 인한 체제불안에다가 그 이유를 대서 논란이 좀 있었지만...
그러니까 이명박 정부는...보수 결집의 유혹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기다리는 전략으로 북한의 미사일을 방치하거나 미국의 기본 방향에 비협조적으로 가다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기술이 정말로 군사적인 의미를 가지게 될 때, 그 때 가서 우왕좌왕 후회하지 않도록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즈워스가 한 바퀴 돌면서도 한국의 입장을 사실 가장 중시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남북의 합의 정신을 존중한다'고 하던 이명박 대통령이 3.1절 경축사에서 '합의 사항을 존중한다'고 한 걸음 더 나간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청와대 참모진에서 '사항'이나 '정신'이나 그게 그거라는 식으로 말 했지만...그런데 왜 얘길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대통령이 단어를 바꿔 말하면 메시지가 달라지고 북한도 뭔가 새로운 게 있는가 분석을 하고 판단을 할 텐데, 대통령의 공식발언을 청와대 사람들이 뒤집으면 어떡합니까. 거 참 누군지 모르지만,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 청와대에.
나는 이번에 대통령의 표현이 바뀐 건 진전이고, 정세 변화에 부응하기 위한 명분쌓기나 출로를 열기 위한 자구책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했으니까 앞으로는 대통령이 6.15선언과 10.4선언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사실 '6.15와 10.4선언을 비롯한…' 이렇게만 말하면 돼요. 거기에다가 '우리 경제 상황이 재작년 같지 않기 때문에라도 이행 우선순위나 규모 문제는 협의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러니 만나서 대화하자'고 한 발짝만 더 나가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동북아 냉전구조 해체 차원에서 추진될 미사일과 핵 문제 해결에 이명박 정부가 어깃장을 놓는다는 얘기도 없을 거고, 또 잘 하면 우리가 상황을 주도할 수 있는 찬스가 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 생각 같아선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미국 내 대북 강경론에 힘을 실어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북한의 계산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협상용으로는 일단 쏴 버려야 몸값이 올라가고 국내정치적으로도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점이 가까워지니까 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까 내 애기는...쏠 가능성이 높고 대북 강경론이 일어날 게 확실한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가 이끄는 미국 정부가 지금 저렇게 움직이는 걸로 봐서, 과거 금창리 의혹이나 미사일 발사가 있어도 페리 프로세스를 만들었던 것처럼 판이 돌아갈 거라는 겁니다.
그런 판세를 못 읽고 국내에서 발끈하고 정부도 거기에 휩쓸려서 3.1절 때 얘기했던 걸 또 뒤집는 얘기를 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판세는 이미 그렇게 돌아가고 있어요.
일본도 바뀐다
지난주에 일본에 갔다 왔는데...일본은 9월까지 총선을 치러야 됩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현재와 같은 대북 및 대외노선을 걷는 사람들이 주류가 되기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얘기들이 많더군요.
따라서 지금 야당인 민주당이 연립으로라도 집권하면 일본의 대북정책은 확실히 바뀔 겁니다. 오바마 노선과 상당히 흡사하게 갈 거라고 대개들 얘기하더라고요.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
그래서 이번에 일본 정권이 바뀌면 동북아 냉전구조 해체 방식의 북핵 및 미사일 문제 해결 정책이 새로운 동력을 얻을 텐데, 그런 와중에 우리 정부가 계속 기다리는 식으로 가는 건 적절치 않습니다. 이제 시각을 바꾸고 방향을 틀지 않으면 안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現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석좌교수)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로 찾아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