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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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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소니

[한윤수의 '오랑캐꽃']<43>

"목사님! 지금 베트남 맞아요."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계단을 뛰어 올라오며 외쳤다.
"왜 맞아?"
나도 마주 뛰어나가며 물었다.
"한국 차가 베트남 오토바이 박았는데 베트남이 넘어졌다가 도망쳤어요. 그래서 한국 차가 따라가서 왜 도망가냐고 뺨 때려요."
"그래? 가보자."
3층 계단을 뛰어 내려가서 제로마트 쪽으로 달려갔으나 이미 상황 끝. 한국 차도, 베트남 오토바이도 사라진 뒤였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거의 다 무면허 운전이기 때문에 잘못이 없어도 일단 도망치고 본다. 잡히면 벌금을 내야 하니까.

버스 정류장까지 남편을 배웅하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 베트남 여성 웬티둥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도 심란했다. 남편이 베트남에 있는 다른 여자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문제의 남편이 지금 막 베트남으로 떠난 것이다. 베트남 가면 이것들이 서로 만날 텐데 이 일을 어쩌나?

공단 모퉁이를 돌다 그녀는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뒤에서 차가 들이받고 뺑소니를 친 것이다. 차번호는 물론 차종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다리가 골절된 채로 병원에 실려 갔다.

다음날 아침, 그녀는 간밤의 치료비를 계산했다. 그러나 MRI 찍을 비용이 없어 진통제를 맞은 몸으로 목발을 집고 센터로 찾아왔다. 그녀는 울며 호소했다.
"도와주세요. 치료비가 없어요."
사고 나던 날 남편에게 돈을 다 보낸데다가 아파서 당분간 일을 못할 테니 돈 나올 구멍이 없다는 것이었다.

"알았어요. 하지만 일단 뺑소니 신고는 해야겠는데."
"안돼요. 회사에도, 경찰에도 알리지 말아주세요."
그녀는 일자리를 잃을까봐 회사에 알리는 것을 두려워했고, 또 무면허 운전으로 벌금을 낼까봐 경찰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나는 회사에는 알려야 한다고 설득했다.
"하루 이틀에 나을 병이 아닌데, 회사 사람들 걱정시키면 안 되잖아요."
그녀는 알아들었다. 그러나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극도로 꺼렸다.
하지만 만일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면 무슨 돈으로 치료비를 내나? 아무래도 신고는 해야 할 것 같았다. 뺑소니 사고는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오는 게 있으니까.

나는 평소부터 알고 지내는 화성경찰서 L경사와 상의했다. 교통사고의 베테랑답게 L경사는 길을 가르쳐주었다.
"신고하는 게 훨씬 낫죠. 벌금은 한 50만원 나오지만, 뺑소니 지원금은 그보다 많이 나오거든요. 4주 진단이면 약 150 정도?"

방향은 신고하는 것으로 잡혔다. 하지만 만일 뺑소니 지원금이 안 나올 경우에 대비해서 화성보건소 J선생과도 상의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입원비나 수술비는 힘들지만, 외래 진료비 수준에서 지원해보죠."

나는 일단 안심했다. 왜냐하면 J선생은 언제나 최소한으로만 얘기하니까. 우선 그녀는 MRI 비용을 보건소 돈으로 대납해 주었다.

그 후 웬티둥은 J선생의 권유로 그 병원을 나와서 수원의료원에 입원했다. 화성보건소와 업무협약을 맺고 있는 수원의료원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잘 돌봐주는 병원으로도 유명했으니까.

회사에서도 한 달이건 두 달이건 치료에만 전념하라고 해주었다. <지평전기공업> 참으로 고마운 회사다.

하지만 뺑소니 사고 수사는 지지부진해서 열흘이 가고 한 달이 가도 그대로였다. 증인이 없었으니까. 한 달이 지나도 뺑소니 지원금이 나오지 않아서 결국 화성보건소에서 치료비 151만원을 다 물었다. 결국 보건소 J선생에게 또 한 번 신세를 진 것이다.

지원금이 나중에라도 나왔을까? 또 벌금은? 웬티둥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녀는 지금 베트남에 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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