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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복·조선일보·이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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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복·조선일보·이항수

[반론] '진실 규명'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입장을 밝혀야겠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가 없다.
<조선일보>의 태도가 도를 넘어섰다. 인신모독성 공격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항수 홍콩특파원이 '이승복·김주언·김종배'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특정했다. "특히 법망을 피해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조간브리핑', '뉴스터치' 등으로 이름을 날린 김종배 씨에게 더 권하고 싶다"고 했다. 이승복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위로를 드리라고 권하면서 반문했다. "입에서 귀밑까지 'ㄱ' 자로 찢긴 이승복 군의 그 처참한 사진을, 당신은 이미 "1998년 논란이 한창일 때 (이승복 기사를 낙종했던) 어느 신문사 자료실에서 찾아봤다"고 법정에서 진술하지 않았는가"라고 다그쳤다.

이항수 씨가 나에게 어떤 이미지를 덧씌우려 했는지 알 만하다. "2004년 9월 14일 오후 5시쯤 형사 항소심 속행 재판을 끝내고 나오면서 김종배 씨가 '바보처럼 그런 것까지 대답하면 어떻게 해'라고 (김주언에게)화를 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는 내용까지 적은 걸 보면 아마도 나를 얼굴 두꺼운, 파렴치한 인간으로 내몰고 싶었던 모양이다. 있는 사실조차 덮으며 보신하려 했던 인물로 몰아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굳이 뭐라 하지 않겠다. 이항수 씨가 나를 어떻게 봤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토를 달지 않겠다. 그건 인상이니까, 객관이 아니라 주관이니까, 보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춤을 추는 것이니까 일일이 대꾸할 가치가 없다.

"법망을 피해" 방송일을 했다는 대목에 대해서도 그냥 넘어가련다. 통상적으로 범죄자에게 붙이는 표현을 동원한 데서 적의가 느껴지고, 법원에 의해 무죄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마뜩치 않아 하는 태도가 느껴지지만 괘념치 않으련다.

하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없는 사실까지 지어내는 행태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그건 조작이다.

내가 김주언 씨에게 화를 냈다는 대목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신변잡기일뿐더러 중요한 대목도, 진실된 내용도 아니다. 이항수 씨의 주장에 다시금 확인했다. 기억을 반추했고 김주언 씨에게도 사실관계를 물었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 따라서 이항수 씨는 없는 사실을 제기한 당사자로서 입증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사진'이다. 나는 법정에서 사진과 관련해 그렇게 진술한 바가 없다.

이항수 씨는 '(이승복 기사를 낙종했던) 어느 신문사 자료실'이라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이렇게 빙빙 돌릴 이유가 없다. 그 '어느 신문사'는 <경향신문>과 <동아일보>다. 이 두 신문사 자료실에서 '이승복 현장' 사진을 찾아본 적이 있다(이항수 씨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의 보도 여부를 놓고 '낙종'과 '특종'을 가른 것 같은데 이건 차치하고 다른 신문사들도 현장 취재를 해 관련보도를 내보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발언만 빼면 '조선일보'보다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거기서 찾은 사진은 '이승복 사진'이 아니다. '이승복 사건' 현장 사진이다. 마을주민과 군경이 현장에서 서성이는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찾고자 했던 이유가 있었다. '이승복 재판' 그리고 '조선일보 보도 진위'의 핵심은 '조선일보' 기자가 당시 현장에 직접 가서 취재를 했느냐 여부였다. 하지만 취재 결과 그 어떤 사람(타사 기자는 물론 마을주민까지)도 <조선일보> 기자를 현장에서 본 적도, '조선일보'에게 사실을 말했다고 밝힌 바가 없었기에 <조선일보> 기자의 현장 출현 여부를 사진으로 확인하고자 했다. 그래서 찾았고 확인했다. '경향신문'과 '동아일보'의 현장 사진 어디에도 '조선일보' 기자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차제에 밝혀야겠다. 두 신문사 자료실에서 찾은 사진이 다시 확인해줬다. 그 사진에 찍힌 방 안 모습이 분명히 가르쳐줬다. 유혈이 낭자한 방 안 모습이 무장공비가 이승복 일가족을 살해한 장소가 이곳임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었다. 바로 이 점에 기초해 당시 대부분의 신문이 살해장소를 방 안으로 보도했는데도 유독 '조선일보'는 살해장소를 집 앞 마당으로 보도했다. 현장에 가 본 기자라면 결코 범할 수 없는 오보를 낸 것이다.

나중에 그랬다. 진실 공방이 벌어졌을 때 당시 <조선일보> 취재기자는 참외만한 크기의 돌에 피가 묻어있길래 집 앞 마당을 살해장소로 봤다고 주장했다. 코미디 같은 주장을 한 것이다.

되돌려 묻고 싶다. 이항수 씨는 자기 회사의 자료실에서 입이 찢긴 이승복 군의 사진을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조선일보>가 특종했다고 주장하기에, 당시 <조선일보> 취재기자가 현장에서 이승복 군의 시신을 본 적이 있다고 주장하기에 묻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재판과정에서 제출한 15장의 사진엔 이승복 군의 모습이 담겨있지 않다. 더구나 이승복 일가족의 시신이 짚에 덮여 마당에 가지런히 눕혀 있었다는 당시 취재기자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 사진에는 그런 장면이 없다. 텅 빈 마당 주변으로 마을주민과 군경이 서성이는 장면뿐이다.

참고삼아 밝힌다. 당시 <조선일보> 취재기자는 진실공방, 그리고 재판과정에서 주장했다. 특종을 했다면서 왜 이승복 군 사진이 없느냐는 질문에 망자의 처참한 모습을 담는 게 누를 끼치는 것 같아 찍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과연 이런 대답이 '팩트'에 죽고 사는 기자 입에서 나올 얘기인지는 논외로 하겠다. 백번 양보해 '조선일보' 취재기자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 마당엔 시신이 없었다. 시신이 마당에서 수습되고 있을 때 '조선일보' 기자는 현장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갈무리를 해야겠다. 얘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 취재과정에서 접촉한 관련인물만 수십 명이다. 정황 또한 여러 갈래로 나뉜다. 그 방대한 분량을 짧은 필설로 모두 담아낼 수는 없다. 오늘 이 자리는 이항수 씨의 칼럼에 대한 반박 정도로 의미를 한정하고 다음을 기약하려고 한다.

정리할 것이다. 취재과정과 재판과정에서 제출된 모든 자료와 증언을 취합할 것이다. 한 점 의혹도 없이 명명백백하게 밝히지 못한 나의 부족한 능력을 자책하면서 그 누군가가 이어갈지 모를 진실규명을 위해 단서를 남겨놓으려고 한다.

가급적 빨리 언론학도와 역사학도, 그리고 국민들에게 '보고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추가 규명의 여지가 발견되기를 기대하면서 '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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