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국방부만은 다른 것 같다. 대통령을 비롯해 총리, 통일부 장관, 심지어는 외교 수장까지 기다림의 전략을 추구하는 데 반해, 국방부는 북한의 도발을 예상한 여러 가지 작전에 대비해 공격적인 군사적 대응을 갖추는데 여념이 없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비해서는 '한국형 MD(미사일방어)' 구축 쪽으로 힘을 보태고, 전투기를 동원한 미사일 요격에는 '천마' 미사일의 전진 배치를 검토하고 있고, 서해상의 충돌에 대비해서는 해당 지역 사령관에게 재량권을 넘기고 있다. 여기에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핵무장'을 비롯한 강경 대응을 적극적으로 주문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기다림'을 최고의 전략인 양 반복하면서, 군과 여당에서는 강경 대응 태세를 갖추어나가고 있다. 도대체 어떤 것이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진짜 얼굴일까?
▲ 통일부 장관과 국정원장이 교체되면서 새롭게 구성된 외교안보 정책 조정회의 멤버들이 17일 첫 회의를 열었다. ⓒ연합뉴스 |
자칭 '대북 대화 제의'의 허구성
현재의 남북관계에 대해 정부는 '조정기' 혹은 '남북관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해가는 진통의 시기' 등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한 번도 북한과 대화를 거부해본 적이 없으며, 대화를 요구하지만 북한의 거부 때문에 이뤄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실 옥수수 5만 톤 지원에 대한 북한의 거부(이에 대한 사실관계는 김연철 "상생아 공영아, MB정권에서 고생이 참 많다" 참조), '비핵·개방·3000'을 대신한 '상생·공영 정책'의 추진, '6.15 선언'과 '10.4 선언'에 대한 명시적인 거부의 부정, 그리고 '대화를 원한다'는 반복적인 주장 등 겉보기엔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북한으로 비춰질 만도 하다. 그리고 지속적인 대화 요구에 불응하는 북한에 현 남북관계 악화의 책임이 있다는 것도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화라는 것은 그것을 위한 분위기와 여건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며, 그럴 때만이 대화 제의의 진정성이 의심받지 않는다. 현 정부가 그간 보여준 것은 요란한 말의 성찬일 뿐 진정성과 현실성, 가능성 등 모든 것이 빠진 쇼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대화를 위한 여건을 무시한 채 무조건 대화만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신임 통일부 장관의 말처럼 '남북대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대화를 요구하고, 성사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공식적이고 구체적인 대화 요구도 하지 않으면서 대화가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방이 대화를 요청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달리 말해 북한이 우리에게 굴복할 때까지 혹은 북한이 결국은 저자세로 나올 때까지 무대응으로 일관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군사 논리가 정치 논리 압도할 것
문제는 이러한 '기다림의 전략'이 현재의 위기 국면에서 위기관리는커녕, 군사력을 동원한 강경 대응으로 나타나기 쉽다는 점이다. 이는 현재 국방부가 보여주고 있는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남북대화도 없고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분명한 기조도 세우지 않은 상황에서 서해상 충돌 등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책은 군사력을 동원하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 두 차례에 걸친 서해교전은 불행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남북이 교류·협력을 활발하게 진전시키고 있었고,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는 통제력을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충돌은 짧은 시간에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남북의 불신이 고조되어 있고, 삐라 문제 등 악재가 겹쳐있는 상황이며, 더 위험스럽게는 군사적 충돌을 정치적으로 혹은 대화를 통해 풀어갈 수 있는 통제력이 심각히 약화되어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우리 정부가 '기다림의 전략'만을 읊조리고 있다면, 군사 논리가 정치 논리를 압도하면서 더 큰 충돌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최근 국방부나 집권 여당의 강경 대응이 말해주는 것처럼 북한의 선제적 도발 움직임에 대해 강경한 군사적 대응책을 하는 게 본심이라면 더욱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국방부가 발행하는 2008년 <국방백서>에 북한을 '주적'은 아니지만,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으로 표현하기로 한 것을 보면 이러한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과거에 비해 훨씬 더 강경해진 표현 속에서 '기다림의 전략' 뒤에서는 군사력을 동원한 강경 대응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의심을 하게 한다.
바뀌지 않으면 해법은 없다
기다리는 것이든 강경 대응이든 지금의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적절한 대책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오히려 '기다림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릴 위험이 훨씬 더 높다.
북한을 둘러싼 주변 여건의 변화를 봐도 우리가 늪에 빠질 조짐은 있다. 이미 북한과 미국은 서로의 입장을 주고받고 있으며, 미국 전문가들의 방북이 이어지고 있다. 무산되긴 했지만 북한의 이종혁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의 방미도 계획된 적이 있었다.
특히 일각에서는 미 의회 대표단의 방북 가능성을 점치고 있고, 스티븐 보스워스 대북 특사의 조기 방북도 예측되고 있다. 또한 이미 확인되었듯 북한과 중국의 잦은 고위급 상호 방문이 이어지면서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남북간 군사적 충돌이 일어난다면 우리의 '경제살리기'에도 치명적인 장애가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아도, '기다림의 전략'이나 '강경 대응'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향후 북한과의 협상에서 더욱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 객관적인 조건을 외면한 채 주관적인 강경책만 구사하다 결국에는 북한에 외면당하고 부담만 고스란히 뒤집어썼던 역사적 사실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이라도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기초해 남북대화를 복원하고 교류·협력을 통해 남북의 '상생과 공영'을 그야말로 적극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한반도 위기관리는 이것 외에 다른 해법이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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