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장관은 현역 군인이 아니다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16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북한이 서해상에서 함정 공격과 함대함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 (…) 군은 평시부터 우위 전력을 확보해 도발시 모든 발생 가능한 상황을 상정해 현장의 합동전력으로 최단 기간 내 승리할 것이다. 1, 2차 연평해전의 교전시간은 각각 14분, 18분이었다. 이처럼 교전시간이 짧기 때문에 최단 시간 내에 승리할 수 있도록 필요한 권한을 현장 지휘관에게 많이 위임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들으면 그의 답변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방장관의 입장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현역 군인이 아닌 정무직 공직자이자 내각의 일원인 국방장관이 전쟁에 대한 정치적·철학적 사고가 결여된 발언을 한 것이다. 합참의장이나 해군 참모총장이라면 모를까 국방장관으로서는 부적절했다.
전쟁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이상희 장관은 지금 전쟁을 원하는지 평화를 원하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현역 군인이라면 어떠한 전투에서도 절대 져서는 안 되고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 따라서 승리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방부 장관이라면 소규모 우발 사태나 교전이 대규모 전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전쟁의 수준과 한계에 대해 철학적 판단을 한 뒤에 말을 해야 한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 8권(전쟁 기획) 2부(절대전쟁과 현실전쟁)에서 전쟁은 국가의 두뇌에 해당하는 소수의 정치지도자나 군인들에 의해 발생하는데, 그들은 "전쟁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what he intends to achieve by that war)와 "전쟁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how he intends to conduct it)라는 목적을 가지고 전쟁을 기획한다고 했다. 전자는 정치적 목적(political purpose)라고 하고 후자는 작전적 목표(operational objective)라고 구분하고 있다.
국방장관이라면 국회에서 전자, 즉 정치적 목적에 관한 부분을 말해야 바람직한 것이지 작전적 목표와 판단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국방장관이라면 전쟁 진행 과정에 대해 냉철해야 한다.
클라우제비츠는 대부분의 전쟁이 사실은 양 진영의 격앙된 감정의 발로(most wars are like a flaring-up of mutual rage)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1792년 프러시아가 7만의 병력으로 프랑스를 침공했다가 오래된 유럽의 세력균형을 깨뜨릴 만큼 확전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거나, 1806년 10만의 병력으로 침공한 것이 마치 한 방의 첫 충격이 커다란 지뢰의 뇌관을 건드려 지뢰가 터져 하늘로 퍼져나가는 것과 같이 확대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과연 전쟁이 발생할 수 있었겠냐고 질문을 던지면서, 전쟁이라는 것은 아주 사소한 다툼에서부터 커져 갈 수 있음을 경고했다.
따라서 국방장관은 최근과 같은 예민한 시기에는 사소하고 부주의한 교전이 커다란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발언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국방장관은 자신이 현역 군인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연평해전' 용어부터 버려라
정부는 서해교전 혹은 연평교전을 연평해전이라 부르고 많은 사람들도 그를 따르고 있지만, 우선 '해전'이라는 말을 빨리 없애야 한다.
첫째, 오직 군사적 측면에서 본다면 전쟁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발적 충돌이나 교전이라고 지칭하는 게 더 정확하다.
둘째, 궁극적으로 전쟁을 원하는 게 아니고 평화를 원한다면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해군이나 교전의 피해자 가족들은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해전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고 해도, 특히 국방장관은 공식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클라우제비츠의 언급처럼 전쟁의 가능성이 팽배한 상황에서는 사소한 충돌도 확전되어서 커다란 전쟁으로 가기 쉽다. 따라서 현재 한반도에서 평화가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면 국방장관은 해전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사용해선 안 된다.
'현장 지휘관에게 권한을 위임했다'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이 부분은 필자가 말하기에 매우 조심스럽다. 그러나 꼭 지적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몰매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말을 하고 넘어가야겠다.
교전규칙을 보면 최종 교전에 대한 권한은 이미 현장 지휘관에게 위임되어 있는 상태다. 그것은 특히 자위를 위해 보장된 것이다. 그런 기본적인 내용을 지금과 같이 예민한 시기에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굳이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 당연한 얘기를 새로운 조치인 양 말하면서 상대방만 자극한 꼴이 됐다.
오히려 국방장관은 이렇게 말하는 게 어땠을까 싶다. '평시에는 교전규칙을 통해 현장지휘관에 위임된 권한을 현재로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 당분간 전쟁으로 확전을 막기 위해 지휘 통제 체제를 통해 적극적으로 통제하겠으며, 우발적 교전이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겠다.'
전체적인 전쟁을 지휘하는 수뇌부는 때로는 약간의 희생이 있고 화가 나더라도 더 큰 희생을 막아야 한다고 판단하면 현장의 지휘관들을 자제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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