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인 불법체류자 수코타이는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갇힌 지 하루 만에 비행기표를 사서 출국해 버렸다. 도와주는 나한테 알리지도 않고. 나는 그를 면회하려고 보호소를 방문했다가 그가 이미 태국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그는 체불임금 받을 게 580만 원이나 되어서 노동부 감독관이 조사차 일주일 후 방문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는 그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갑자기 출국해버리는 바람에 돈 받을 길이 막막해졌다.
태국인들 중 일부는 참으로 무책임하게 행동한다. 마치 자신의 일이 아닌 것처럼! 도대체 마음 상태가 무심한 건지 비겁한 건지 모르겠다. 노동부에 나와 꼭 조사를 받아야 돈을 받을 수 있는데도
"나 오늘 회사 바빠서 못 가요."
하며 오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돈 받을 당사자가 안 나오는데 나 혼자 무슨 수로 돈을 받아주나? 내가 이런 사람들을 왜 도와주고 있는지 회의가 들 때가 많다. 이건 나만 애가 달아서 동동거리며 뛰어다니는 꼴 아닌가. 어떤 때는 내가 태국에 가서 일하는 노동자이고, 그들은 나를 마지못해 도와주지만 책임감은 전혀 없는 불성실한 현지인 봉사자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나 바빠서 먼저 갈 게. 나 없더라도 열심히 해!"
하며 제 멋대로 떠나버리는 봉사자.
태국인 합법체류자 싸네는 퇴직금과 체불임금을 합해서 약 290만 원 정도 받을 게 있다. 그는 15일 정도만 기다리면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날 우리 직원과 함께 노동부에 출석해서 근로감독관 앞에서 간단한 진술만 하면! 그러나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흘을 못 참고 비행기표를 사서 당장 떠나겠다고 전화를 해왔다.
나는 안타까워서 말했다.
"그럼 돈 못 받아. 괜찮아?"
"예, 괜찮아요."
"좋아. 그럼 우린 네 문제에서 손 떼겠어. 그래도 돼?"
"예."
안타깝다. 290이면 한국에서도 큰돈인데 태국에서는 얼마나 큰돈인가! 도대체 이 사람들은 왜 이러는 걸까? 도무지 참을성이 없다. 순간적인 감정에 휩싸여 결정하고 즉흥적으로 행동한다. 내가 보기엔 그들의 심리상태는 현실로부의 도피인데 귀찮고 힘든 문제에 직면하지 못하고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다.
나는 밀린 월급이나 퇴직금을 안 받고 막무가내로 가버리겠다는 태국인들을 수도 없이 보아왔다.
물론 태국인들이 받을 돈을 순순히 포기한다면 좋다. 그러나 나중에 태국에 가서 <한국 사람이 돈 떼어먹었다>고 딴소리를 할까봐 걱정이다. 무책임한 사람일수록 딴소리를 잘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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