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한국에서는 '말(語)'이 비틀거린다. 한국에 들어와 고생하는 이름들이 참 많다. '새롭다'라는 뜻의 'new'라는 단어는 '라이트'에 붙으면서 탱자가 되었다. 매우 'old'한 사람들과 'old'한 생각들에 붙어 있는 'new'가 애처롭다. '녹색'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녹색 삽질'이라, 차라리 '뜨거운 얼음'이라고나 할까? 어색한 만남이다.
▲ 이명박 대통령과 김하중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
'상생'과 '공영'
대북정책이라는 무대에 불려온 '말'들을 보자. 제일 고생하는 말은 '상생'이다. 원래 뜻은 '더불어 살아감'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말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통일 하는 게 최후의 궁극목표다."(2008년 11월 19일 워싱턴 기자간담회)
그리고 통일부는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통일 국가의 미래상에 따라 남북이 하나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통일'이라고 설명했다.(<통일문제의 이해> 2008) 흡수통일론을 공식화한 것이다. 도대체 이런 말들이 '상생'과 어울리는가? 차라리 '상극'정책이라면 모를까?
대화가 없던 시절에는 말을 막 했다. 상대를 고려하지 않아도 상관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대화가 활성화되면서 상대의 체제를 부정하는 그런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왜? 공존과 흡수는 어울릴 수 없다. 통일의 미래상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기 보다는 화해, 공존, 그리고 공영의 '사실상의 통일' 개념을 강조했다.
왜 그랬을까? 대화를 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대화를 하지 않을 거면 계속 그렇게 말해도 된다. 흡수를 하겠다는 상대와 누가 대화하겠나? 외교에서 '생각은 하지만 말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물론 '말하지 않는 의미'를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공영'이라는 단어도 고생이 많다. 이 말은 '함께 잘 살자'는 뜻이다. 그런데 무엇이 공영이란 말인가?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을 때, 개성공단에서는 북측 노동자들이 더 필요하고, 이제는 개성 바깥에서 데려와야 하고, 개별 중소기업들은 기숙사를 지어줄 형편이 안 되고, 그래서 정부가 숙소 건설에 지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말했다. "수만 명이 입주하는 기숙사를 지을 경우 어떤 일이 생길지 잘 판단해야 한다. 근로자들의 집단화로 노사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2008년 9월 10일 중소기업인 간담회)
이명박 정부가 출범 후 어떻게 남북관계가 악화되었는지 그 과정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침묵'에서 '비난'으로 전환한 사건이 있었다.
3월 19일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에게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의 확대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 직후 북한은 개성에 있는 남북 경제협력 협의사무소의 당국자들에게 나가달라고 했다.
더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3월 26일 통일부의 대통령 업무보고. 통일부는 그 자리에서 3대 목표와 12대 과제를 밝혔는데, 그 내용은 명확하게 '10.4 남북 정상선언'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10.4 선언에는 솔직히 항목이 참 많다.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는 것도 적지 않다. 8개항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개별 사업으로 따지면 40여개가 넘는다. 물론 그중에는 남북한이 호혜적으로 협력해야 할 사업도 적지 않다.
그런데 어찌하여 10.4 선언의 합의 사항들은 전부 제외했는가? 이산가족 문제 해결이라는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 말이다. 이제는 아무도 떠들지 않는 '나들섬 구상' 은 들어가도 철도연결, 조선협력, 서해협력, 개성공단 확대, 이 모든 것들을 왜 빼버렸나?
'비핵·개방·3000'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수선을 해서 쓸 수 있는 물건이 있지만, 아예 새로 사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옥수수 5만 톤의 오해와 진실
'오해'라는 말도 그러하다. 통일부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강경정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무시하거나 부정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건 '오해'라고 한다. '오해'가 이럴 때 쓰는 단어인 줄은 몰랐다.
오해와 관련해서 한 가지 바로 잡을 게 있다. 정부는 인도적 지원을 위해 옥수수 5만 톤을 준다고 했는데, 북한이 거부했다고 말한다. 옥수수 5만 톤 문제는 2008년 초 남북관계 악화의 중요한 계기 중 하나였다. '옥수수 5만 톤'의 진실은 무엇인가?
옥수수 5만 톤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전에 북한이 요청한 것이다. 양강도 혹은 자강도 등 취약 지역에 옥수수를 지원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정상회담 이후로 미루었다가 회담이 끝난 후 중국에서 옥수수를 구입하려고 했으나, 중국정부의 식량 대외수출 금지 조치와 가격급락으로 시기를 놓쳤다. 당시 김하중 주중대사가 옥수수를 보내기 위해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러나 결국 때를 놓치고,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해가 바뀌었다.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은 2008년 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찾아가 작년에 약속했던 것이고, 금액도 얼마 되지 않고, 행정 절차도 모두 마친 현안이기 때문에 처리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에 대해 당시 인수위의 책임 있는 관계자는 '주겠다. 대신 지금은 아니고 새 정부가 출범하면'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장관은 인수위의 뜻을 북측에 알려도 되냐고 물었더니, 그래도 좋다고 해서 북측에 알렸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가? 몇 달 전까지 옥수수를 구하기 위해 뛰어다녔던 김하중 대사는 이명박 정부의 초대 통일부 장관이 되어 입장을 바꾸었다. '북한의 요청이 있어야 지원한다.' 4월까지 그런 입장이었다.
이어 김하중 장관은 작년 5월 중순 판문점 연락관 채널을 통해 옥수수 지원을 공식으로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필자가 알기로 그 제안은 전화통지문이나 공문과 같은 정식 제의가 아니었다. 판문점 북측 연락관에게 '줄 테니 받을래?' 그냥 그렇게 물어본 것이다.
이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전화통지문을 보내려 했으나, 그 때는 이미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북한이 접수조차 거부할 정도까지 간 이후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주려고 했는데, 북한이 거부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은 김하중 장관이 나서서 한나라당이나 보수적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를 풀어 주기를 바란다.
▲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입안한 현인택 통일부 장관 후보자(오른쪽)와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 ⓒ연합뉴스 |
대북정책에 대한 '오해'와 '진정성'
이명박 정부 사람들은 대북정책을 오해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결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는 그렇게 생각한다. 북한이 비난하면 우리도 비난하고, 북한이 강경으로 가면 우리도 강경으로 가고, 북한이 먼저 대화하겠다고 하지 않으면 우리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런 것들은 '정책'이 아니다. 대북정책이 그런 식으로 '해도 되고 안 해도 상관없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은 왜 적십자 회담을 먼저 제의하고, 1972년에는 왜 7.4 남북공동성명을 채택했을까? 북한이 갑자기 변해서? 아니다.
1984년 전두환 정부가 1983년의 아웅산 사태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보낸 수해물자를 받고 1985년 경제회담을 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실현시켰을까? 자존심이 없어서? 북한이 그렇게 하자고 해서? 아니다.
노태우 정부의 고위급 회담과 남북기본합의서는 어떻게 채택되었을까? 북한이 하자고 해서? 아니다. 지난 10년은 따로 거론하지 않겠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남북대화는 언제나 우리가 먼저 제안했고, 우리가 더 적극적이었다. 왜일까?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갑자기 변해서도 아니다. 우리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반도의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혹은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자유치의 대외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남쪽이 이른바 '이니셔티브'를 행사했다. 북한 하는 걸 보고 따라하겠다는 생각, 그것은 정책이 아니다.
물론 한 가닥 희망은 있다. 올 한 해 아마도 가장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으니, 그건 바로 '한미공조'다. 이제는 믿음이 되 버린 한미공조에 충실했으면 한다.
물론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 대화에 나선다면 독자성을 가져야 한다는 '반공자주' 세력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자주'라니, 불경하다. 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흔들던 심정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따라 가기 바란다.
'풍자냐, 자살이냐' 김수영도 김지하도 그렇게 물었다. 그런 질문을 다시 하는 시대가 왔다. '영혼의 자살'을 선택한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풍자가 발흥하고 있다. 그런데 공무원까지 풍자의 대열에 나설 필요가 있을까? '상생'과 '공영'이라는 단어가 한국에서 길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