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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맺으면서

[이재황의 한자 이야기]<114ㆍ끝>

지금까지 우리는 수백 자의 한자에 대한 유래를 새로운 시각에서 살펴봤다. 글자 수는 수백 자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모두 기본 한자들이고 이 글자들을 기반으로 나머지 한자들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거의 대부분의 한자를 살펴봤다고 할 수 있다.

이 연재를 통해 제기한 필자의 시각은 학계의 그것과 상당히 다르다. 이른바 6서라고 하는 한자 만들기 방식 가운데 일부만이 진실이고 일부는 후대에 학자들이 머릿속에서 지어낸 허구라는 생각이다.

우선 상형은 범위가 학계의 설명보다 대폭 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연재에서 자주 등장한 말이 '장면상형'인데, 여러 가지 사물이 한 화면에 등장하는 상형은 거의 허구라고 볼 수 있다. 한자 초기의 상형은 한 가지 사물, 그것도 생활에서 묘사가 긴요한 일부 사물에 국한됐을 거라는 얘기다. 여러 가지 사물이 등장하거나 소소한 기물들의 상형, 심지어 외국의 풍습과 관련된 상형은 가능성이 별로 없다.

이렇게 볼 때 필자의 추산으로는 상형자 수가 두자릿수를 넘지 않는 듯하다. 물론 원래 상형자로 만들어졌던 것은 그보다 훨씬 많았을 수 있지만, 도태돼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진 글자들을 제외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각각 별개의 것을 상형했다고 설명되던 글자들이 같은 글자에서 분화한 경우가 많았음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회의자는 거의 인정하기 어렵다. 필자는 다른 곳에서 텔레비전의 낱말 알아맞히기 게임을 예로 든 적이 있다. 낱말을 본 사람이 말과 몸짓으로 힌트를 주어 같은 편에게 이를 맞히게 하는 것이다. 두어 개의 의미를 힌트로 제공해 새 글자를 알아맞히게 하는 회의자 방식은 발음과 의미 힌트 하나씩만을 제공해 알아맞히게 하는 방식보다 훨씬 효과가 떨어지는 의사 전달 방법이다. 설사 그런 방법이 개발됐다 하더라도 금세 도태됐을 것이다.

게다가 한자는 초기부터 발음을 이용하는 방식을 개발했다는 흔적이 있다. 가차가 그것이다. 어느 정도의 기본 글자들을 만든 뒤 같은 발음의 대상을 표현하는 데 발음이 같은 글자들을 끌어다 썼다. 말하자면 그것이 표음문자로 쓰인 것이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대상을 한 글자로 표현하게 되는 데서 오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글자들을 만들었다. 그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회의자라는 전혀 새로운 방식이 아니라 가차자에 대체적인 의미 영역만 붙여 구별하는 형성자 방식이었다. 그것이 현실성이 높다.

물론 회의자가 전혀 없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회의자라는 관념이 자리잡은 후대에 만들어진 글자들은 제외하더라도, 같은 글자를 겹쳐 만든 중첩자들은 회의자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확인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발음은 본래 글자에서 나간 경우가 많은 듯하다. 역시 발음 요소가 들어 있는 것이다.

지사 역시 상형과 마찬가지로 대폭 줄여 생각해야 한다. 上(상)·下(하)나 조금 더 넓게 생각하지만 本(본)·末(말) 같은 일부 글자를 제외하면 지사자는 시도되다가 곧바로 중단된 방법일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본다면 한자가 만들어진 방법은 상형과 형성의 두 가지로 대별된다. 물론 형성자가 압도적이고 상형은 극히 일부밖에 안 되지만, 그것이 형성자를 만드는 기반이 됐다는 점에서 그 비중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여기에 하나의 범주를 더 추가하자면 필자는 '변형'이 적당하리라고 본다. 이 연재에서 살펴본 글자들의 대부분은 따른 어떤 글자의 변형일 듯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한 글자가 수십 개의 글자로 분화했다는 얘기도 했다. 형성자라는 대량생산 방식을 도입하기 이전의 기본 한자들은 소수의 형성자와 그것을 각기 다른 맥락에서 의미 중점과 모양을 약간씩 달리해 별개의 글자로 분화시킨 변형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형은 중국이 秦(진)의 통일 이전에는 여러 개의 정치 단위로 나뉘어 별도의 문자생활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촉진된 측면이 있다.

따라서 한자의 6서는 3서로 재정리돼야 마땅하다. 상형, 변형, 형성이다. 근대 중국의 한 학자가 내놓은 3서설과는 내용이 다르다.

물론 필자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존 학계의 글자 유래 설명이 이 연재에서 무수히 나왔던 것처럼 무리한 얘기들이 많음에도 여전히 그런 되풀이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일종의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고, 필자의 주장을 그런 시도의 하나로 봐주었으면 한다.

필자의 체계는 허점이 많다. 글자 모양과 발음, 그리고 의미의 유사성을 쫓아다니며 비슷한 글자들이 같은 글자에서 분화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지 엄밀한 '논증'은 아니었다. 더욱이 발음의 변화 폭을 넓게 잡고 얘기를 진행했으니 오차의 확률을 높인 것이다. 형태면에서도, 연재 과정에서 잠시 지적했지만 A+B=A라는 등식까지 인정했다. B가 제로가 아니라 실체가 있는 경우에도 말이다. 이는 글자의 변천 과정을 생각하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등식이다.

필자의 체계에 이런 오차의 가능성이 있지만, 비논리적이어서 아예 가능성이 없는 주장들이 왜 여전히 돌아다녀야 하는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선학의 주장이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고 비논리적인 설명까지 인정할 수는 없다.

이 연재가 학계 정설에 대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지금 있는 체계를 떠나야 교착 상태가 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끝까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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