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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의 '비밀 터널', 그 진상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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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의 '비밀 터널', 그 진상을 밝힌다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2009년 중동 현지 취재기 2

<프레시안> 기획위원인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성공회대 겸임교수)가 중동화약고 취재길에 올랐다. 김재명 위원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사이의 무력충돌 뒤 한국 언론인으로는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들어갔다. 아래 글은 그의 생생한 현지 취재기 제2신이다.<편집자>

1967년 이른바 '6일 전쟁'에서 아랍연합군(이집트, 시리아 주축)을 이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두 지역(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을 식민지로 다스려왔다. 지난 40년 넘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독립 요구를 힘으로 눌렀고, 그래서 국제사회로부터 '깡패국가'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특히 2001년부터 시작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티파다'(intifada, 봉기를 이스라엘은 탱크와 최신예 전폭기의 엄청난 화력으로 눌러 5000명이 넘는 희생자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1400명 넘는 사망자를 냈다.

하마스(Hamas)를 중심으로 한 팔레스타인 저항세력과 이스라엘군의 무장은 너무나 차이가 난다. 이스라엘군은 미국산 무기 또는 미국의 군사 기술을 빌려 만든 강력한 무기를 잦춘 반면, 하마스는 고작 AK-47에 어깨걸이식 총류탄(RPG) 정도다. 그러니 전쟁을 벌인다면 군사력에서 너무나 차이가 나는 전쟁이 되는 셈이다. 군사전문가들이 말하는 이른바 '비대칭 전쟁'이다.

2000개에 이르는 비밀 터널

죽음을 마다한 자살폭탄 테러(이른바 순교작전)에서 보듯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 의지는 세지만, 군사력에서 너무나 딸린다. 그런 열세를 극복하려는 처절한 노력 가운데 하나가 가자지구 남쪽 라파의 비밀 터널을 통한 무기 수입이다. 이집트로 통하는 문제의 터널은 무려 2000로 추산된다.

가자지구 남쪽 도시인 라파. 이집트 국경에 맞닿은 라파는 이번 전쟁이 아니더라도 걸핏하면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아 희생자를 내왔다. 이스라엘은 그럴 때마다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가 라파-이집트 사이에 파놓은 터널을 통해 무기를 밀수하기에, 터널을 파괴할 목적으로 공습을 한다"고 주장해왔다.
▲ 이스라엘의 마구잡이 공습 탓에 무너진 집 앞에서 눈물짓는 팔레스타인 여인 ⓒ라파=김재명

터널 폭파의 부수적 피해?

문제는 터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민간인 주거지역까지 폭탄세례를 뒤집어쓰고 그 바람에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들이 죽고 다치고, 그들이 힘써 세운 집을 부순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20일 동안의 일방적인 군사작전에서도 라파는 이스라엘군의 주요 공습 목표가 됐다. 라파 시내를 돌아보니, 한눈에도 엄청난 공습을 겪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너진 집 앞에서 한숨과 눈물을 흘리는 여인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송구스러움을 느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라파의 비밀 터널이 가정집 안에도 있다는 주장을 펴며 민간인 주택 공습을 합리화했다. 그렇다면 이들 민간인들은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잘못 민간인들을 죽이고 흔히 쓰는 말처럼 '군사작전의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란 말인가?

100% 이집트 수입품들

가자지구를 취재하는 동안 통역으로 애써준 칼리드는 출산을 앞둔 아내와 6명의 자식을 둔 40대 중반의 사내다. 그는 다름 아닌 라파 출신이기에 비밀 터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칼리드는 이스라엘이 문제를 삼아온 비밀 터널 지역으로 가기에 앞서 시장 한 곳으로 데려갔다.
▲ 라파 시장에 놓인 물품들. 이집트 땅으로 이어지는 비밀 터널은 이스라엘이 주장하듯 무기수입 통로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자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생필품 수입통로다. ⓒ라파=김재명

그곳에는 온갖 종류의 물품들이 팔리고 있었지만, 특히 가정용 에너지와 관련된 물품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걸핏하면 전기가 나가버리고 깜깜한 세상이 되는 팔레스타인의 어려운 상황을 말해주는 물품들이다.

전기를 일으키는 커다란 발동기(제너레이터)에서부터 가스버너(우리는 가스버너의 쓰임새를 등산용으로 알고 있지만, 팔레스타인에서는 가정용 취사도구로 쓰인다), 석유 등잔, 그리고 현지 사람들이 '카이로신'이라 일컫는 유사 석유 등등. 우리나라로 치면 1960년대의 청계천 시장 모습이 이러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만난 한 상인은 "일반적으로 시장 하면 그야말로 크고 작은 온갖 생필품들을 사고파는 곳이지만, 그곳 시장은 100% 이집트에서 몰래 들어온 물품들로 채워져 있다"고 말했다.

시장을 돌아보면서 통역 칼리드가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를 깨달았다. 이집트로 통하는 비밀 터널들은 단지 이스라엘이 주장하듯 무기 밀수터널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으로 고통 받아 질식 직전에 놓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그나마 작은 숨통이라는 사실을.
▲ 이스라엘이 폭격으로 파괴한 비밀 터널 현장 ⓒ라파=김재명

"터널은 이집트 경제에도 도움"

커다란 발동기(제너레이터) 하나의 무게는 200kg이 넘었다. 무게가 100kg이 넘는 발동기를 좁은 터널로 어떻게 가져올까 생각하며 칼리드가 이끄는 대로 한 비밀 터널이 있는 곳을 향했다.

이집트 국경선에 거의 맞닿는 것에 이르자, 천막으로 엉성하게 둘러 공사장인양 위장한 한 가건물이 있다. 그 안으로 불쑥 들어섰다. 5명의 남자들이 그 안에 있었지만, 별로 놀라는 기색아 아니다. 통역 칼리드를 알아봤기 때문이다.

터널 입구는 한국의 시골에서 흔히 보이는 우물처럼 동그란 모양. 20m 쯤 수직으로 내려가면, 그 밑에 가로세로 1~2m 크기의 방이 나온다. 일종의 물품 중간 저장소다. 그곳에서부터 이집트 국경 쪽으로 길게는 500m, 짧게는 200~300m의 터널이 이어진다. 그 끝에도 가로세로 1~2m 크기의 물품 중간 저장소와 마주친다. 그리고는 45도 각도로 파여진 터널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이집트 땅이다.

이집트 쪽의 비밀 터널 입구는 위장막으로 둘러쳐져 있지만 맘먹고 찾아내려면 너무나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그곳에서 만난 30대 초반의 한 사내는 "이런 터널을 통해 이뤄지는 밀수는 이집트 경제에도 도움이 되기기 때문에 이집트 경찰의 단속은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 덧붙인다.
▲ 한국의 우물처럼 생긴 비밀 터널의 입구. 이집트 접경지대인 가자 남쪽 라파에는 이같은 터널이 2천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김재명

"터널은 가자 사람들의 생존 위한 것"

얘기를 들어보니, 비밀 터널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목숨을 내놓고 하는 위험스런 일이다. 터널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그곳에 갇혀 죽기도 하고, 예고 없이 이뤄지는 이스라엘의 공습에 죽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라파 취재를 마치고 가자시티의 숙소로 돌아가는 길, 가자지구 서쪽 지중해변을 따라 난 도로를 달렸다. 파도와 바람 소리가 제법 세차다. 눈을 감으니 비밀 터널에서 만났던 20대 후반의 팔레스타인 청년이 한 얘기가 귓가를 맴돈다.

"나와 내 가족이 살아가려면 터널에 기댈 수밖에 없다. 내 행위는 이스라엘에서 말하듯 범죄가 아니라, 그들의 경제 봉쇄에 맞서 나와 팔레스타인 가자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필자 이메일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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