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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여)/委(위)/威(위)/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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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여)/委(위)/威(위)/安(안)

[이재황의 한자 이야기]<113>

女(녀)는 많은 글자에 의미 요소로 들어가 주요 부수자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것이 발음기호로 쓰인 예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가 자주 보는 글자들 가운데 그런 예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발음기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너무 좁은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如(여)는 女와 口(구)로 이루어졌다. 회의자로 설명된다. 양쪽 다 발음으로 보기 쉽지 않은 탓이다. 여자(女)는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의 말(口)을 따라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는 가부장제가 확립된 뒤에 한자가 만들어졌다는 얘기고, 설사 그런 시대에 만들어졌다 해도 그런 사실을 담아 글자를 만들었다고 보는 건 지나치다. 만들어진 글자를 놓고 후대에 지어낸 '이데올로기'일 가능성이 높다.

같은 발음인 汝(여)는 강이름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여기서의 女는 그런 식으로 회의자식 설명을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如·汝의 女는 모두 발음기호로 봐야 한다. 그런데 초성이 ㄴ-ㅇ(중국말에서는 ㄹ)으로 다른 게 걸림돌이다.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한자 발음에서도 두음법칙을 인정하는 것이다. 초성의 ㅇ/ㄴ/ㄹ은 왔다갔다했다고 보면 된다. 如의 발음이 이어진 帤(녀)·袽(녀)가 다시 ㄴ 초성으로 돌아간 것만 보아도 이 발음들이 쉽게 호환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如·汝뿐만이 아니다. 委(위)·威(위)에 들어 있는 女도 발음기호로 볼 수 있다. 초성뿐만 아니라 모음까지 달라져 더욱 알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모음은 더 쉽게 변하는 것인데다, 女의 중국말 발음이 '뉘'이니 如·汝보다도 오히려 女에 가까운 측면이 있다.

委는 머리에 볏단(禾)을 인 여자의 모습으로 보거나 여자는 벼처럼 스스로 굽혀 순종해야 한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이런 부권사회식 설명과 반대로 威는 도끼를 든 여성을 가리킨다며 모권사회를 상정한다. 어느 쪽이나 女를 발음기호로 보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안쓰러운 노력들이다. 발음기호로 떼어내면 간단한데 말이다.

奴(노)는 '종'의 뜻이다. 女가 들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자 종이 아니라 남자 종이다. 女를 의미로 보면 이상해진다. 그 부분을 발음기호로 볼 수밖에 없다. 여자를 손(又)으로 잡고 있는 모습이라는 상형자식 설명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여기서 파생된 怒(노)를 '노예의 마음'이라 하고 努(노)는 노예처럼 힘들여 일하는 것이라는 얘기 역시 회의자식 설명의 병폐를 드러내고 있다.

安(안)은 받침까지 튀어나와 더욱 女의 발음과 멀지만 역시 그것이 발음기호다. 여자가 집안(宀)에 있는 모습이라 해서, 掠奪婚(약탈혼) 시대에 여자는 집안에 있어야 안전(安)하다는 얘기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발음기호로 보면 깔끔하다.

받침까지 생긴 것이 찜찜하다면 다른 글자도 있다. 宴(연) 역시 安과 비슷한 발음이고 ㄴ 받침이 튀어나왔다. 宴이 '宀+妟'이든 '安+日'이든, 그 발음 뿌리는 女에 있고 거기서 ㄴ 받침이 있는 글자들이 나온 것이다.

또 있다. 女가 셋 모인 姦(간)은 초성만 安과 조금 다르다. 그리고 ㄱ/ㅎ은 매우 가까운 음이다. 姦의 아랫부분, 그러니까 女를 둘 합친 奻은 '난' 발음이다. 安의 발음이 女에서 왔다는 방증들이다. 심지어 姦조차도 女의 발음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렇게 女를 발음기호로 보지 않으면 宴이 집(宀)과 시간(日)과 여자(女)라는 잔치의 3요소를 나타냈다는 식의 쓸데없는 상상력을 발동하게 된다. 발음기호 女를 인정하지 않으면 이렇게 '여성모독'에 해당하는 한자 만들기 얘기가 판을 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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