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획수마저 왔다갔다하다 보니 오히려 획수가 늘어나는 경우도 생긴 듯하다. 珍(진)·診(진) 등의 발음기호 㐱(진)이 바로 그런 형태로 보인다. 今의 중국말 발음이 '진'이니 발음의 연관성은 분명하고, 옛 글자꼴에서 점 수준의 획이 하나 늘어나는 것은 다반사였으니 㐱=今으로 보는 데 무리가 없다. 月의 또 다른 변형인 肉(육)에서는 冂 안의 획에 네 개가 되지 않았는가.
㐱의 경우에도 다른 변형들에서처럼 획의 생략이 일어남을 보여주는 사례가 餐(찬)·粲(찬)이다. 이 글자들은 아랫부분이 의미 요소임이 분명해 歺=歹(알)과 又(우)를 합친 듯한 윗부분이 발음기호다. 이런 글자는 지금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餐에는 '새참'의 뜻이 있고 이는 탐욕의 화신이라는 饕餮(도철)의 餮과 의미상 연결된다. 餮은 '食貪(식탐)'의 의미가 있는데, 먹을것이 넉넉지 못한 시절에 새참은 곧 식탐일 수 있었다. 餐과 餮을 비교해보면 㐱 부분이 又로 바뀌어 있고 그 又는 勹나 入 등 今 그룹 글자들에서 두 점이 생략된 형태에 해당한다. 餐·粲의 윗부분은 殄(진)의 변형인 것이다.
餮은 㐱 부분이 간략해진 餐이나, 歹 부분이 아예 생략된 飻(철), 반대로 㐱 부분이 생략된 飱(손) 등 여러 형태로 변형됐던 듯하다. 飱의 경우는 구조상 歹 부분이 발음기호여야 하는데, 이런 생략을 전제하지 않고 歹만을 발음기호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그 이체자인 飧을 보면 왼쪽에 들어 있는 夕이 㐱과 같은 뿌리에서 변한 글자여서 그것 단독으로 발음이호로 들어갔을 수 있다. 飧은 飻과 비교해 구성 요소의 좌우 위치만 바꾼 셈이다.
한편 㐱 역시 다른 이체자들과 마찬가지로 파생자들의 발음 변화 폭이 크다. 珍·診 등 정통 발음이 이어진 경우가 많지만, 膠(교)·謬(류) 등의 발음기호인 翏(료)가 대표적인 변형 발음이다.
㐱의 발음이 翏로까지 흘러갔다는 사실은 또 다른 기본 글자의 뿌리를 찾는 데 실마리가 된다. 바로 利(리)자다.
利는 '벼'인 禾(화)와 '칼'인 刂=刀(도)로 이루어져 별 고민 없이 회의자로 설명하는 글자다. 날카로운 연장(刀)으로 벼(禾)를 베고 있는 것을 나타냈다는 식이다. 그러나 회의자 자체에 회의를 가지기 시작하면 이런 설명에 휩쓸려 넘어가기 어렵다.
<그림 1> 같은 옛 모습을 보자. 왼쪽은 禾고 오른쪽은 勿(물)자 비슷한 형태다. 전통적인 설명에서는 오른쪽을 刀와 그 칼에 붙은 검불 따위로 설명했다. 회의에 상형 요소를 더한 설명이다. 아니면 아예 전체를 상형으로 보고 쟁기와 흙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상형이라는 건지 회의라는 건지, 도무지 뒤죽박죽이다.
그런데 勿자 비슷한 이 부분은 㐱으로 볼 수도 있다. 발음 부분은 앞서 나온 翏가 해명해준다. 利와 큰 차이가 없는 발음인 것이다. 그렇다면 利는 의미 요소 禾와 발음기호 㐱을 합친 형성자다. 상형도 아니고 회의도 아닌 어정쩡한 설명보다 훨씬 깔끔하게 이해할 수 있다.
利의 오른쪽 부분이 刀가 아니라는 방증은 黎(려)자다. 㐱 등은 획의 생략 사례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黎의 지금 글자꼴 오른쪽 윗부분이 그렇게 획이 일부 생략된 모습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그림 2> 같은 모습을 보면 그것이 㐱이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黎는 이 부분을 제외한 黍(서)가 의미 요소가 되는데, 禾와 黍가 곡식을 의미하는 같은 의
미 요소인 셈이어서 黎는 利의 이체자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黎=利의 오른쪽은 刀가 아니라 㐱의 간략형이고 그것이 발음기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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