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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맥과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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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맥과 파도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121>

겨울 동해에 다녀왔습니다. 바위에 제 몸을 몰아다가 던지며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았습니다. 아아아, 소리 지르며 보았습니다. 험한 바위를 만날수록 파도는 아름답게 터져 올랐습니다. 물결이 물결의 등을 밀고와 끝없이 쓰러지는 파도를 보며 아름다운 소멸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부서지면서 결코 부서지지 않는 물결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끝없이 파도치고 있어서 아름다운 바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밀려올 때도 있고 밀려갈 때도 있지만 그것 자체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외설악의 산맥을 보았습니다. 능선이 험할수록 산은 아름다웠습니다. 눈보라 치고 눈이 쌓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산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눈보라 치는 날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어 놓고 있었습니다. 앞산이 뒷산 또 그 뒷산과 이어지며 험한 능선끼리 모여 아름다운 그림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능선이 험할수록 산은 아름답다
능선에 눈발 뿌려 얼어붙을수록
산은 더욱 꼿꼿하게 아름답다
눈보라 치는 날들을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놓은
외설악의 저 산맥 보이는가
모질고 험한 삶을 살아온 당신은
그 삶의 능선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꾸어 놓았는가

험한 바위 만날수록 파도는 아름답다
세찬 바람 등 몰아칠수록
파도는 더욱 힘차게 소멸한다
보이는가 파도치는 날들을 안개꽃의
터져오르는 박수로 바꾸어 놓은 겨울 동해바다
암초와 격랑이 많았던 당신의 삶을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 파도로
바꾸어 놓았는가

모질고 험한 삶을 살아온 당신은 당신이 살아온 삶의 능선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꾸어 놓고 있는지요? 험한 삶을 험한 채 놓아두시지 말고 아름답게 바꾸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암초와 격랑이 많았던 당신의 삶도 격랑인 채로 놓아두지 마십시오. 암초를 만나서 파도는 더욱 아름답게 솟구쳐 오르지 않습니까? 아니 그냥 겨울동해바다에 한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파도치는 바다를 한나절쯤 바라보다 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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