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추운 겨울날이었어요. 시내 길모퉁이에서 허름한 옷차림을 한 사람이 군고구마를 팔고 있었어요. 바람막이 포장을 쳐놓고, 포장 앞과 양 옆에 '군고구마'라고 써붙여 놓고 말이지. 서툰 글씨였어요. 꼭 초등학교 일이학년이 크레파스로, 혹은 나무 작대기를 꺾어 쓴 글씨 같아 보였는데, 안에서 타오르는 불빛을 받아 먼 곳에서도 뚜렷하게 잘 보였어요. 그 글씨를 보며 걸으며 생각했지.
'아, 얼마나 훌륭한가! 이 글씨는 이곳을 지나다니는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반갑고 따뜻할 것인가! 부끄럽다. 내 글씨 또한 저 '군고구마'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어림도 없는 일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며 걸었어요."
김지하 시인의 정신적 스승이기도 한 장일순 선생은 글씨로도 이름이 난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바람막이 포장에 붙은 '군고구마'란 글씨가 얼마나 훌륭한가 하고 말씀 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비록 초등학교 일이학년 아이가 쓴 글씨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지만 그 글씨에는 삶의 절박함이 배어 있다는 것이지요. 그 절박함이 정성을 다해 글씨를 쓰게 한 것이 '군고구마'라고 한다면 그것은 서예가의 글씨보다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글씨를 보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반갑고 따뜻하게 느낀다면 어떻게 훌륭하지 않을 수 있느냐 하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지요. 잘 쓴 우리의 글씨는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희망을 준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라는 말씀인 것이지요.
우리가 쓴 글, 우리가 부른 노래, 우리가 그린 그림이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었는지,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었는지 돌이켜보자는 것이지요. 절실함이 없는 글, 절박하게 부르지 않은 노래, 치열하게 삶을 던져 그린 그림이 아니라면 길거리에 붙어 있는 '군고구마'란 글씨만 못하다는 겁니다.
"경기침체 때문에 군고구마 장사도 불황"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불황으로 이윤이 박해진데다 판매량도 지난해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추운 겨울날 하루 종일 거리에 서서 벌벌 떨면서 원가 1만1,000원인 고구마 10㎏(40~50개)을 다 팔아야 3만~4만원 가량 번다는데 그것마저도 벌기 힘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삶은 갈수록 절박해지는데 세상은 그것을 절박하게 바라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절실함과 진정성을 잃어가고 있는 건 예술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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