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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가의 조상신, 성왕 이마끼오오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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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가의 조상신, 성왕 이마끼오오가미

[김운회의 '새로 쓰는 한일고대사']<57> 천황가의 조상신, 성왕 ①

제 20 장. 천황가의 조상신, 성왕 이마끼오오가미

들어가는 글

지금까지 우리는 일본 천황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해왔습니다. 일단 그 동안의 논의들을 간략하게 한번 모아봅시다.

천황가의 내력을 분석하는데는 중요한 고리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진구황후, 오우진 천황, 유라쿠 천황(곤지왕), 킨메이 천황(성왕 ?), 비다츠 천황, 텐지 천황, 칸무 천황 등이 있죠. 그 가운데서 또 한번 주목해야할 경우는 비다츠 천황(敏達 天皇 : 572~585)입니다. 즉 비다츠 천황이 백제왕족이 확실하다면 그의 가계는 모두 백제인이 되는 것이죠.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요.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에 "오하라마히토[大原眞人(대원진인)], 그들은 백제왕의 후손으로 시호가 비다츠(敏達)인 분으로부터 나왔다. 이것은 『속일본기(續日本記 : 797)』의 내용과도 일치한다."이라는 기록이 있어1) 비다츠 천황이 반도부여(백제)의 왕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러면 그의 아버지, 형제들(요메이 천황, 스이코 천황)은 자동적으로 백제계 왕손들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신찬성씨록』에 비다츠 천황의 성(姓)이 '진인(眞人)'인데, 이 성은 텐무 천황 13년(686)에 제정된 팔색(八色)의 성 가운데 제1위의 성씨로 황족에게만 주어진 성(姓)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결국 '백제왕족 = 일본황족'이 되겠군요. 그리고 야마토 시대 당시 가장 강력한 저항세력인 동북의 아이누(에조 또는 에미시)의 저항을 진압한 장군들이 대부분 백제왕족이었다는 점도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특히 『일본서기』에 따르면, 비다츠 천황의 손자인 조메이(舒明) 천황이 백제 대정궁(大井宮) 백제 대사(大寺)를 건립하는 등 유난히 백제관련 토목사업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조메이 천황은 백제궁에서 서거한 후 백제대빈(百濟大殯 : 백제의 3년상 장례의식)으로 안장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나타난 내용들을 하나의 도표로 만들어 봅시다.

▲ [그림 ①] 천황가의 계보와 반도부여(백제) [번호는 천황의 순번]

근초고왕을 기점으로 열도부여가 개척된 것을 『일본서기』의 역추적을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진구황후나 오우진 천황은 여러 왕들의 업적을 한 사람의 업적으로 만들어 낸 인물이었던 점도 파악하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오우진 천황이 진구황후의 아들이었고, 진구황후라는 가상의 인물은 '히미코 + 사이메이 + 근초고왕' 등이 혼합된 인물이었는데 이 가운데 시기적으로 일치하는 인물은 근초고왕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동적으로 오우진 천황은 근구수왕을 주축으로 하는 근초고왕의 직계 후손이라는 사실도 파악이 됩니다.

다만 오우진 천황 이후 반도부여와 열도부여의 관계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왜 5왕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였고, 그 결과 유라쿠 천황과 곤지왕이 동일인임을 여러 각도에서 밝혀내었습니다. 그리고 유라쿠 천황과 곤지왕이 동일인이라는 점은 부여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고리였음을 몇 번씩 강조하였습니다. 나아가 킨메이 천황과 반도부여(백제)의 성왕이 동일인일 가능성을 여러 가지 연구결과나 사례를 들어 분석했습니다.

결국 개로왕 - 곤지왕 - 동성왕·무령왕·게이타이 천황 - 성왕(킨메이 천황)을 중심으로 반도부여와 열도부여가 경영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참고로 『신찬성씨록』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 넘어갑시다. 『신찬성씨록』은 815년 일본의 기나이(畿內) 지역에 본적을 둔 1,182개의 성씨들에 대하여 그 계보와 유래를 기술한 것입니다. 이 책은 필사본입니다. 그래서 매우 귀한 사료에 속합니다. 성씨록은 크게 ① 천황(天皇)과 그 황자(皇子)의 자손인 황별(皇別) 335씨, ② 천신지기(天神地祇)의 자손인 신별(神別) 404씨, ③ 한국·중국의 자손인 제번(諸蕃) 117씨 등의 세 가지 계보로 나눠져서 편찬되어있습니다.2)

이 가운데 가장 서열이 높은 성씨는 황별(皇別)이고3) 그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성씨가 바로 마히토[진인(眞人)]인데 그 전체는 48개입니다. 이들의 본적은 다시 좌경황별(左京皇別) 30개, 우경황별(右京皇別) 11개, 산성국황별(山城國皇別) 1개, 대화국황별(大和國皇別) 1개, 섭진국황별(攝津國皇別) 1개 등이고 나머지 서너개 정도의 그 본적을 알 수 없는 성씨도 있습니다.

마히토(진인)는 주로 천황과 그의 자손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기록으로는 『일본서기』인데, 『일본서기』의 텐무 천황조를 보면, 텐무천황을 진인천황(眞人天皇)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진인(眞人)의 계보를 가장 큰 범주인 좌경황별(左京皇別)과 우경황별(右京皇別)을 중심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먼저 좌경황별(左京皇別)의 주요 내용입니다.

▲ [표 ①] 『신찬성씨록』에 나타난 황족들의 계보

(㊐은 『신찬성씨록』이 아니라 『일본서기』의 기록임).
최재석 『백제의 대화왜와 일본화 과정』(일지사 : 1990) 123쪽에서 재구성


해석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오하라마히토(大原眞人)입니다. 오하라마히토(大原眞人)는 비다츠천황의 손자인 백제왕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 조상인 비다츠 천황도 당연히 백제왕족이 되겠죠? 따라서 시마네마히토(島根眞人), 요시노마히토(吉野眞人), 토요쿠니마히토(豊國眞人), 이께가미마히토(池上眞人) 등도 모두 "비다츠의 손자인 백제왕의 후손"이 되는 것이지요.

이런 사정에 대해서 일본의 학자들은 별로 달가워하는 눈치가 아닙니다. 아마도 『신찬성씨록』에 나타난 백제라는 말이 아직도 살아남아서 한국과의 연계를 끝없이 가지게 되는 것이 마치 '업보(業報)'처럼 느껴지기도 하겠지요.

다음은 우경황별(右京皇別)의 주요 내용입니다.

▲ [표 ②] 『신찬성씨록』에 나타난 황족들의 계보
(㊐은 『신찬성씨록』이 아니라 『일본서기』의 기록임).
출전 : 최재석 (1990) 123쪽에서 재구성

『신찬성씨록』과 관련하여 야마토 왕조에 대해 오랫동안 분석해온 최재석 교수에 따르면, 48개의 마히토(진인) 성씨 가운데 21개의 성씨가 백제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27개의 성씨도 비교분석하여 추적하면 모두 백제계(부여계)라는 것입니다.4)

그러니까 『신찬성씨록』과 관련하여 나타난 황족들은 모두 부여인(백제계)이라는 말이죠.

필자 주

(1) "大原眞人 出自諡敏達孫百濟王 續日本記合"(『新撰姓氏錄』)
(2) 첫째, 황별(皇別)은 左京皇別, 左京皇別上, 左京皇別下, 右京皇別上, 右京皇別下, 山城國皇別, 大和國皇別, 攝津國皇別, 河內國皇別, 和泉國皇別 등으로 나눠져 있다. 둘째, 신별(神別)은 左京神別上, 左京神別中, 左京神別下, 右京神別上, 右京神別下, 山城國神別, 大和國神別, 攝津國神別, 河內國神別, 和泉國神別 등으로 나눠져 있다. 셋째, 제번(諸蕃)은 左京諸蕃上, 左京諸蕃下, 右京諸蕃上, 右京諸蕃下, 山城國諸蕃, 大和國諸蕃, 攝津國諸蕃, 河內國諸蕃, 和泉國諸蕃, 未定雜姓 등으로 나눠진다.
(3) 황별씨족(皇別氏族)이란 황족(皇族)이 신하의 신분으로 낮아져서 출생한 씨족을 말한다.
(4) 최재석 『백제의 대화왜와 일본화 과정』(일지사 : 1990) 119~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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