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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벌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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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벌판에서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118>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고 싶다
발자국 소리만이 외로운 길을 걸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고 싶다
몸보다 더 지치는 마음을 누이고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깊어지고 싶다
둘러보아도 오직 벌판
등을 기대어 더욱 등이 시린 나무 몇그루뿐
이 벌판 같은 도시의 한복판을 지나
창 밖으로 따스한 불빛 새어 가슴에 묻어나는
먼 곳의 그리운 사람 향해 가고 싶다
마음보다 몸이 더 외로운 이런 날
참을 수 없는 기침처럼 터져오르는 이름 부르며
사랑하는 사람 있어 달려가고 싶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 집으로 가던 기억이 있지요. 날은 어두워오는데 마음은 급해져 미끄러지기도 하며 눈 쌓인 길을 걸어갈 때가 있었지요. 군데군데 짐승 발자국 같은 흔적 말고는 사람이 지나간 자취가 없는 길을 걸어가는 동안 입에서는 더운 김이 뿜어져 나오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기도 했지요.

얼마 남지 않았어, 조금만 더 가면 돼, 하고 자신에게 되풀이해서 말하며 자신을 위로하며 눈길을 걸어갔지요.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바라보는 동네의 집들 그 가운데 따스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창이 눈에 들어오고 비로소 입가에 웃음이 지어지는 시간이 있었지요. 거기가 우리 집이었지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우리 집. 말소리조차 따뜻하게 창문을 타고 흘러나오는 집. 집은 얼마나 큰 위로였던가요.

"엄마!"라고 소리쳐 부를 때 우리의 가슴은 얼마나 고동쳤던가요. 가방이며 웃옷을 받아주며 무어라고 막 쏟아져 나오는 말들, 그 말들은 잘 안 들리고 올 곳에 왔다는 생각, 안심이 되고 편안해지고 무언가 가득 차 오르는 그것이 집이 주는 가장 큰 행복이었지요. 지친 발 지친 몸을 아랫목에 깔린 이불 밑에 넣으며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따뜻했던가요.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지극히 사소하고 평범한 이야기들만으로도 겨울밤은 얼마나 즐거웠던가요.

"둘러보아도 오직 벌판 / 등을 기대어 더욱 등이 시린 나무 몇 그루뿐 / 이 벌판 같은 도시의 한복판"에 던져진 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마음보다 몸이 더 외로운 이런 날" "참을 수 없는 기침처럼 터져 오르는 이름 부르며 /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가고 싶습니다. 그저 함께 있기만 해도 편안하고 좋은 사람, 사소하고 평범한 이야기만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도 기쁘고 뿌듯한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러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가고 싶습니다. 고갯마루에 서서 따스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그 집을 바라보며 가슴이 쿵쾅거리고 싶습니다. 그 이름을 소리쳐 부르고 싶습니다. 반가워서 손을 잡고 팔짝팔짝 뛰고 싶습니다. 어서 들어오라고 손을 잡아 끄는 동안 입에서 웃음이 지워지지 않는 그런 사람을 만나러 가고 싶습니다. "몸보다 더 지치는 마음을 누이고 /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깊어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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