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과 가장 가까워 보이는 글자는 均(균)의 발음기호 勻(균)이다. <그림 1>의 오른쪽 획을 구부린 정도며, 今의 파생자들을 보면 이렇게 구부러진 모습으로도 종종 나온다. '균'과 '금'이라는 발음도 그리 멀지 않다. 두 글자는 같은 글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지난 회에 얘기했던 亼(집)도 그 이체자다.
이번엔 <그림 2>를 보자. 勻자가 아닐까 싶기도 하겠지만 肉(육)의 소전체다. 勻 계통에서는 초성이 약화된 昀(윤) 같은 변형 발음들이 나오는데, 이는 肉의 발음과 받침만 다르다. 今의 이체자 亼이 닫히는 받침이었음을 생각하면 肉의 발음 역시 勻=今에서 그리 멀지 않다.
그런데 肉은 합성자를 만들면서 왼쪽으로 갈 때는 月(월)과 똑같은 형태로 바뀐다. 그래서 이를 '육달월'이라 한다. <그림 2>를 보면 肉이 月로 바뀌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 없음을 알 수 있다. 肉과 月은 모양에 거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달을 그렸다는 月의 발음은 우리말로 ㄹ 받침이지만 이는 본래 ㅌ 정도에 해당하는 발음이어서 肉이나 亼처럼 닫히는 받침이다. 지금 중국말로는 '웨'이니 받침이 사라지는 중간 단계의 발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月의 발음은 肉을 거쳐 勻과 今으로 연결된다.
<그림 3, 4>가 月의 옛 모습이다. <그림 3>은 좀더 달의 모습을 신경쓴 것이고, <그림 4>는 무미건조하게 문자만 그려낸 것이다. <그림 4>를 왼쪽으로 90도 돌려 놓으면 <그림 1>의 今이 된다. 또 月의 글자꼴은 중간에 점을 그려넣지 않은 형태도 많은데, 이렇게 점(획)이 하나 빠진 모습이 今의 이체자 亼과 상응한다.
그 모습은 바로 夕(석)이다. 夕은 이미 月과 같은 글자에서 독립한 것으로 공인된 글자다. 여기서도 초저녁 달이 약간 작아 月에서 획을 하나 뺀 글자로 '저녁'을 의미했다는 설명을 하기도 하지만, 의미 없는 의미 부여다. 그저 같은 글자에서 의미와 모양을 갈라 분화하는 일반적인 현상의 하나일 뿐이다.
約(약)·的(적)·釣(조)·酌(작)의 발음기호로 낯익은 勺(작)은 술 같은 것을 뜰 때 쓰는 국자라는 의미가 있어서 그 도구를 상형했다고 한다. 勹가 국자고 一은 떠올린 술이나 국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있다. 그런데 지금 모습만 봐도 이 글자는 夕과 너무 닮았다. 발음도 멀지 않다. 여태껏 별개의 글자로 봐왔다는 게 이상할 정도다. 勺=夕이다.
勺은 다시 作(작)·昨(작)·詐(사)의 발음기호 乍(사)로 연결된다. <그림 6> 같은 모습을 보고 옷깃 모양이라며 옷을 '만들다'가 본뜻이라고도 하고, 亡(망)과 一(일)을 합친 글자라는 <설문해자>의 얘기를 되뇌기도 한다. 그러나 <그림 5>와 같은 모습인 勺을 보면 <그림 6>과 전혀 구분할 수 없다. 勺의 발음은 作 등과 일치한다. 乍=勺이다.
정리해보자. 출발은 달을 그린 月이겠다. 이 여러 글자들의 기원설(주로 상형자로 설명되는) 가운데 가장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지금도 합성자에 들어가 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肉이라는 이체자가 생겼다. 勻과 今도 마찬가지다. 한편 月에서 획이 하나 빠진 형태는 夕이다. 이렇게 획이 하나 빠진 모습은 亼과 勺도 마찬가지다. 乍는 지금 모습이 엉뚱하게 변했지만 옛 모습은 勺과 똑같다. <그림 5, 6> 같이 얼핏 보면 달을 그린 <그림 3>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형태가, 그런 내용을 이해하고 보면 연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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