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 새해를 사흘 앞두고 국토를 종횡무진, 동분서주 하신 한승수 국무총리의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아울러 한 총리를 수행한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이만의 환경부 장관, 김장실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에게도 동일한 찬사를 보낸다.
이 분들은 어제(12월29일) 오전 매서운 강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이른바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경북 안동 운흥동 영호대교 둔치에서 진행된 생태하천 조성사업 기공식에 참석하고 예천군청에 잠시 들른 뒤, 오후에는 전남 나주 영산대교 둔치에서 열린 같은 성격의 행사에 참석했다. 한 총리 일행은 귀로에 충남의 금강 연기 선도사업 지구를 둘러보기도 했다. 가히 살인적인 출장 일정을 소화한 셈이다.
공직자들이 이처럼 부지런히 현장을 누빈다면 나라가 잘 될 것이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의문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왜 엄동의 세밑에 매서운 강바람도 불사하고 기공식을 강행한 것인가.
고용창출? 언감생심
이 시점에서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시민단체나 야당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사실상 대운하 추진' 음모론엔 일단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싶다. 그 동안 다양한 몸짓으로 대운하 추진의 절차적ㆍ환경적ㆍ경제적 하자에 관해 설파한 바 있고, 이명박 정부가 대운하를 강행할 무분별하고 국민을 무시하는 파렴치한 정권이 아니라는 일말의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속엔 '제발 그렇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도 담겨 있다.
따라서 나의 의문은 국무총리가 나서서 서둘러 4대강 정비 사업을 착공한 데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상당히 희망적인 유추를 하기 시작했다. "경제가 너무 나쁘니까 고용을 창출해 경기를 빨리 일으키려고 정부가 서둘러서 공사를 시작한 거구나" 하고.
얼마나 서둘렀으면 안동지구 프로젝트의 경우, 지난 19일 조달청이 입찰 받아 총연장 4.07㎞구간에 409억원을 써낸 남영건설이 도급업체로 선정돼 착공까지 열흘밖에 안걸렸다.
전광석화, 번갯불에 콩 볶아 먹기가 따로 없다
총리실은 "사업이 본격 추진되면 19만개 일자리 창출, 23조원 규모의 생산유발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14조원이 투입된다는 4대강 정비사업. 그렇게라도 해서 고용이 창출되고 경기가 회복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과연 그렇듯 고용효과가 나기는 나는 걸까? 일군의 경제학자들은 4대강 정비나 대운하 프로젝트가 개발연대처럼 대규모 고용을 유발하거나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는 논지의 경고를 반복적으로 한 바 있다.
묘하게도 한 달 간의 침묵 끝에 입을 연 온라인 경제논객 '미네르바'는 어제 포털 사이트 다음 게시판에 '대정부 긴급 공문 발송-1보'에서 정부의 토목건설 공사 집착에 대해 "(지방 건설 현장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 사무실에 가보면 소장, 중장비 기사, 일부 핵심 기능공, 사무실 직원이 전부"라며 "과연 이 나라의 젊은이들은 이걸 위해서 이제 중장비 전문 학원을 다녀야 한단 말인가" 반문, 경제학자들의 주장에 동조하기도 했다.
정부가 앞장서 法 어겨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게 있다. 바로 정부 수뇌부가 저지른 '범법' 행위다. 야당과 시민단체의 논평에서도 일부 제기됐지만, 중앙정부 고위 공직자와 당해 지방자치단체 수장들이 대거 들이 참석, '거행한' 어제 행사는 명백한 위법이다.
4대강 정비 같은 대규모 토건사업은 환경정책기본법 상의 사전환경성 검토를 반드시 거쳐서 공사에 착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 쫓기듯 허둥지둥 저지른 것이다. 위법 시 관계자가 실형과 벌금형을 받아야 할 정도로 엄격한 사전환경성 검토에 대해 "실제 삽을 뜨는 공사는 사전환경성 협의가 끝나는 내년 2∼3월쯤 시작할 예정이니 문제될 것 없다"는 국토해양부 입장을 그렇다 치고, 환경부 장관은 과연 무슨 생각으로 범법 행위의 현장에 버젓이 참석한 것일까?
공교롭게도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오전 청와대에서 법무부ㆍ법제처ㆍ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국민의 법질서 인식을 바꾸려면 사회 전반적인 인식의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며 "선결 과제는 힘있는 사람, 가진 사람, 공직자가 먼저 법을 지키고 공정하다는 인식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 공직자부터 법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공직자의 법 준수를 강조하는 바로 그 순간 국토 남녘에선 '4대강 정비'라는 이름으로 범법이 행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전환경성 검토 결과 승인이 될지 안 될지도 불분명한 대형 토건 프로젝트에 대한 기공식이라는 행위로.
'리얼 그린 뉴딜'이 웃는다
환경정책기본법을 무시하고 추진되는 절차 상의 결격 사유도 문제지만, 정말로 어불성설인 것 한 가지. 바로 이번 공사가 '그린 뉴딜'이라는 정부의 주장이다.
차기 미 행정부의 정책 근간이 될 '오바마-바이든 프로그램'을 보자. 이 프로그램의 각론 중 하나인 경기부양책은 그 명칭이 아예 '그린 잡스(green jobs) 프로그램'이다. 골자는 대체에너지 개발 등 저탄소 녹색성장 부문에 매년 150억달러를 투입, 향후 10년 동안 500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쯤 돼야 그린 뉴딜이다. 아니 말 그대로 그린 뉴딜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정책이 갑자기 굴러 떨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대선 유세가 한창이던 지난 9월 오바마의 정책논리 개발 두뇌집단인 미국진보센터(CAP)가 작성한 '녹색 회복'이라는 보고서에 대강이 담겨 있다. 녹색 회복은 댐, 도로, 다리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는 고전적 경기부양이 지구 온난화로 인한 위기 상황에는 절대로 채택해선 안 될 정책이라는 기조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 대안으로 농업을 비롯, 제조업ㆍ정보기술(IT)ㆍ생명공학ㆍ금융 등 비토건(非土建) 분야를 중심으로 녹색 경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논지다.
물론 이 계획이 1929년 대공황 당시의 뉴딜처럼 성공할 지는 미지수다. 당장 극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취약점도 있다. 그럼에도 이 정책에 공감이 가는 것은 적어도 경제 정책의 방향성은 옳다는 점이다.
탄소 배출 9위 국가로 '발리 로드맵'이 적용되는 2013년부터는 싫어도 탄소저감 시책을 펴지 않을 수 없는 게 우리 입장이다. '그린 뉴딜'까지는 못 가더라도 저탄소 녹색성장을 무색케 하는 시도는 더 이상 하지말기 바란다.
그래서 외치고 싶다.
"Stupid, It's not a Green New Deal!"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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