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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와 큰스님도 즐기던 겨울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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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와 큰스님도 즐기던 겨울의 맛

[강제윤의 '통영은 맛있다'] <11>

진묵대사가 붙인 굴의 또 다른 이름, 석화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 삼고 산을 베개 삼아
달을 촛불 삼고 구름을 병풍 삼고 바다를 잔을 삼아
크게 취하여 일어나 춤을 추니
긴소매 곤륜산에 걸릴까 걱정이네.


문득 호기롭게 낮술이라도 한잔 마신 날이면 생각나는 시다. 시를 쓴 분은 조선 명종 때의 스님 진묵대사(震默大師, 1562-1633)로 알려져 있다. 진묵대사는 한국 불교사상 가장 신비로운 스님으로 꼽힌다. 수많은 이적과 불가사의한 신통력을 보였다고 전해지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화신으로까지 일컬어지기도 했다. 진묵대사는 걸림 없고 거침없는 삶을 살다 갔다. 진묵대사는 계율에 얽매이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했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가 흔히 술을 달리 부를 때 쓰는 곡차나 굴을 일컫는 석화(石花)라는 말이 모두 진묵 스님으로부터 유래했다. 스님은 술을 유달리 좋아했지만, 술이라고 하면 절대 마시지 않았고 곡차라 해야만 마셨다고 한다.

더러 스님이 술을 마신다고 타박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스님은 쌀과 누룩으로 만들었으니 곡차지 왜 술이냐고 우기곤 했다. "세속인들은 취하기 위해 마시니 술이겠지만 나는 그것을 마시면 피로도 풀리고 기분도 상쾌해지니 곡차다!" 위의 시 또한 스님이 어느 때인가 곡차를 동이째 마시고 읊었다는 게송이다. 스님이 김제 망해사에 계실 때는 바닷가 근처라 곡식이 떨어지면 해산물들을 채취해서 허기를 채우곤 했던 모양이다. 하루는 배가 고파 바위에 붙은 굴을 따서 드시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왜 스님이 육식을 하느냐며 시비를 걸었다. 그러자 스님은 "이것은 굴이 아니라 석화"라고 우겼다. 굴이 바위에 붙은 모습은 영락없이 돌에 핀 꽃과 같다. 그러니 석화라고 우길 만하지 않았겠는가.

진묵 스님이 허기를 채우기 위해 굴을 먹었다면 '카사노바'(Giovanni Giacomo 'Casanova', 1725~1798)는 강장제로 굴을 즐겼다. 카사노바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생굴 50개를 먹었다 한다. 굴을 다 먹은 다음 욕조 안에서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음은 물론이다. 그만큼 굴은 예로부터 스태미너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굴이라도 먹어서는 안 되는 때가 있다.

▲양식장에서 건져온 굴은 탈각장에서 탈피 작업을 거친 뒤 출하된다. ⓒ이상희

보리가 피면 굴을 먹지 마라

옛날 한국에서는 '보리가 피면 굴을 먹지 마라' 했다. 일본에서도 '벚꽃이 지면 굴을 먹지 마라' 했다. 서양에서는 'r'자가 들어 있는 달에만 굴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r'자가 없는 달인 5월~8월(May, June, July, August)은 굴을 먹지 않는 것이 상식이었다. 5~8월은 굴의 산란기이거나 산란 직후다. 이때는 굴에 독성이 있고 바다에도 살모넬라와 대장균들이 득시글거리기 때문에 먹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산란기인 5~6월에는 절대 생굴을 먹어서는 안 된다. 산란 직후의 굴은 맛도 떨어진다. 산란으로 영양소를 모두 소진해 버린 까닭이다.

통영은 굴의 고장이다. 전국 굴 생산량의 70% 정도가 통영 바다에서 나온다. 통영 굴은 대부분이 양식이다. 하지만 양식이라 해서 덜 맛있거나 영양가가 덜하지 않다. 자연산에 대한 맹신이 넘치는 시대다. 자연산이 돈이 되고 자연산이 맛있고 건강에도 좋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수산물 또한 무조건 양식은 질이 떨어지고 자연산은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굴 같은 조개류는 양식이냐 자연산이냐가 중요하지 않다. 양식 굴이라 해서 사료를 따로 먹여서 키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식이든 자연산이든 굴은 바닷물 속의 플랑크톤이나 조류 유기물을 여과해 먹고 자란다. 그러므로 관건은 굴을 양식하는 바다가 얼마나 깨끗한가에 달려 있다. 오염된 바다에서 자란다면 자연산이라고 해서 좋을 까닭이 없다. 양식이지만 통영 굴이 좋은 것은 통영 바다가 청정해역이기 때문이다. 해초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해초는 해독 작용이 뛰어나다. 수질 정화에도 해초는 일등 공신이다. 해초는 사람 몸의 독을 제거하는 데도 유용하다. 그런 만큼 해초는 그 몸속에 많은 독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미역이나 다시마 등의 해초도 자연산이냐 양식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깨끗한 물에서 자란 것이냐가 문제다. 자연산일지라도 오염된 물에서 자랐다면 그것은 독초다!

통영이 굴의 고장이 된 것은 1960년대 통영시 광도면에서 뗏목수하식 양식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지금은 줄에 종패(種貝)를 달아 양식하는 연승수하식으로 굴을 기른다. 대부분 가리비 껍질에 종패를 붙여서 바닷물에 담가 기른다. 산란 철에 채묘를 해서 가리비 껍질 같은 조가비에 붙여서 키우는데 바다에 들어간 뒤 두 번째 겨울에 본격 출하한다.

▲ 시원하기가 일품인 통영식 굴 콩나물 해장국. ⓒ이상희

굴은 반드시 소금물에 씻어야


산란 철이 지나 여름이 가고 찬바람이 불면 굴은 다시 맛이 들기 시작한다. 가을, 겨울 동안 통영은 온통 굴 세상이다. 생굴을 하나 입에 넣으면 달고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고인다. 통영에 직접 와서 먹는 굴은 도시에서 먹던 그 맛과 천양지차다. 전혀 다른 음식이다. 어떤 해산물이든 바다에서 막 건져 올렸을 때가 가장 맛이 뛰어나다. 겨울의 굴은 바다의 우유, 바다의 인삼이라는 수식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통영의 겨울 굴 한 접시를 먹는 것은 바다를 통째로 마시는 일이다.

나그네가 통영에 살면서 맛본 최고의 굴 요리를 꼽으라 하면 단연 통영식 굴젓이다. 젓갈이라기보다는 굴 물회에 가까운데 일반 물회와 다른 것은 굴을 삭힌다는 점이다. 소금에 약간 절인 굴에 물과 수저로 긁어낸 무와 양념을 넣고 삭힌 통영식 굴젓은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게 할 정도로 시원한 맛이다. 굴로 만든 통영 최고의 요리가 아닐까 싶다. 더러 다찌집들에서도 내기도 하지만 재래시장 반찬가게에서는 겨우내 굴젓을 만들어 파니 쉽게 사 먹을 수 있다. 이 또한 겨울 통영에 오면 빠뜨리지 말고 누려야 할 호사다.

▲ 막혔던 가슴을 뻥 뚫리게 해주는 통영 굴젓. ⓒ이상희

굴을 먹을 때는 반드시 소금물에 씻어야 한다. 민물에 씻으면 맛과 영양분이 빠져나간다. 소금 물속에 오래 보관하는 것도 좋지 않다. 수용성인 타우린이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굴은 강장 효과가 뛰어나다. 철분 함량이 많아 빈혈에도 좋다. 각종 심장 질환과 간장에도 좋다 한다. 칼슘 함량은 쇠고기의 8배, 비타민은 17배나 많다고 한다.

굴은 정자 생산에 관계되는 아연 함량이 어패류 중 최고다. 아연은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촉진한다. 굴이 효과적인 강장 식품으로 인정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카사노바뿐만 아니라 나폴레옹도 전장에서 끊임없이 굴을 먹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대로 버리지만, 예전에는 굴 껍데기도 쓸모가 많았다. 석회를 만들어 건축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자산어보>에는 갈아서 바둑알을 만들기도 했다고 전한다.

2월 대구는 약대구, 복대구

▲통영 미륵도 휴석재에서 약대구가 해풍에 말라가고 있다. ⓒ이상희

복국이나 볼락구이처럼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사철 즐기는 음식도 있지만, 통영 사람들에겐 계절마다 통과의례처럼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다. 봄은 도다리쑥국이고 여름은 갯장어 회나 장어구이. 그렇다면 겨울은? 단연 물메기국과 대구탕이다. 서울 사람들이 보신탕이나 삼계탕을 먹어야 여름을 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통영 사람들은 마치 물메기국이나 생대구탕을 챙겨 먹지 못하면 겨울을 날 수 없기라도 할 것처럼 안달이다.

지금은 값이 상대적으로 싼 물메기를 많이 찾지만, 예전에는 대구가 통영의 겨울철 대표 식재료였다. 지금도 겨울이면 식당마다 계절 음식으로 대구탕을 내걸고 있다. 한류성 어족인 대구는 역시 겨울 대구다. 12월부터 2월까지가 제철이다. 대구는 냉수어족이라 여름에는 찬 바다를 찾아가 지내야 한다. 그래서 한국의 바다에서는 겨울에 주로 잡힌다. 지방이 적고 담백해서 생선의 비린 맛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잘 먹을 수 있다. 겨울 대구 중에서도 특히 2월 대구가 맛있다. 그래서 2월 대구는 복대구라 부르기도 한다.

통영의 생대구탕은 우리가 도시의 식당에서 먹는 냉동 대구탕과는 차원이 다르다. 냉동 대구탕은 대부분 뻘건 고춧가루나 진한 양념, 조미료 맛이지만 맑게 끓이는 통영 생대구탕은 시원하고 담백하다. 대구의 이리(흔히 '곤'이라고 하는)는 비할 데 없이 고소하고 부드럽다. 이리는 무기질과 아르지닌이 많아 원기 회복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 통영의 겨울은 대구 말리는 풍경으로 일대 장관을 이룬다. ⓒ이상희

제 새끼까지 잡아먹는 탐욕스런 대구


대구는 동서양 어디서나 즐겨 먹는 물고기다. 입이 커서 대구(大口)란 이름이 붙었다. 대구는 그 큰 입만큼이나 탐욕스럽게 먹어대는 물고기다. 전형적인 탐식성 어류다. 고등어, 청어, 가자미 따위는 물론 심지어 상어 새끼까지도 잡아먹는다. 때때로 제 알이나 제 새끼를 잡아먹을 정도로 무자비한 식성의 소유자다. 어떤 때는 돌 자갈까지 아귀처럼 집어삼킨다고도 한다. 그야말로 먹는 데 목숨을 거는 어족이다.

예전에는 한국 바다에도 대구가 지천이었다. 하지만 대구의 탐식도 인간의 탐욕에는 비할 것이 못 된다. 인간은 그 흔하던 대구마저 멸족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포구에서 겨우내 대구 한두 마리 구경하기 어려운 적도 있었다. 그러니 대구 값이 금값이었다. 한 마리에 백만 원이 넘어도 팔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무작정 잡아들였다. 마치 마지막 남은 한 마리까지 다 잡아먹어야 속이 시원할 것처럼. 그러던 대구가 최근 들어 다시 잡히기 시작한다. 10여 년 전부터 거제시에서 꾸준히 대구 치어를 방류해온 결과물이다. 그 덕에 사람들은 다시 대구를 싼값에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래서 통영과 함께 거제시 장목면의 외포항은 대구의 가장 중요한 집산지다.

한국 바다의 대구는 동해 대구와 서해 대구 두 종류가 있다. 서해 대구는 동해 대구의 절반 크기밖에 안 되기 때문에 왜대구라고 한다. 찬물을 좋아하는 대구가 서해에도 살 수 있는 것은 서해 바깥쪽 바닥에 일 년 내내 수온이 10도 이하인 냉수대가 있기 때문이다. 통영 대구는 동해대구다. 영일만과 함께 통영에서 가까운 진해만은 동해 대구의 산란장으로 유명했었다.

산모에게 좋은 약대구

▲ 대구탕에 딸려 나온 밑반찬에도 겨울 바다가 한가득이다. ⓒ이상희

대구에는 비타민 A, B와 간 기능 강화에 좋은 타우린도 풍부하다. 대구탕을 최고의 속풀이 술국으로 쳐주는 이유다. 통영에서는 진해 약대구처럼 알이 든 채로 말려서 먹는 약대구가 유명했다. <증보산림경제>에도 대구는 "알과 백란 젓갈이 맛있다. 겨울철에 반쯤 말린 것은 아주 맛이 좋다"고 했다. 통영에서는 말린 대구를 탕약처럼 곰국을 끓여 보신용으로 먹었다. 임자도에서 민어를 말려 곰국을 끓여 보신용으로 먹은 것처럼 통영은 대구가 그 역할을 했다. 또 마른 약대구를 알맞게 찢어서 술안주나 반찬으로도 먹으면 최고의 별미였다. 약대구는 한때 통영에서 부의 상징이기도 했었다. 추녀 끝에 약대구를 많이 걸어놓은 집일수록 부유한 집이었다.

약대구는 몸체가 크고 검고 윤이 나는 대구를 이용해 만들었다. 대구 입으로 아가미와 내장을 꺼낸 뒤 그 속에 소금과 간장을 넣고 볏짚으로 속을 채웠다. 그런 뒤 머리 부분의 벌어진 곳을 동이고 봉하여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 매달아 말렸다. 약대구는 여름철까지 두고 먹었다. 안주나 밥반찬으로도 좋았지만 마른 민어곰국을 산모에게 먹였듯이 약대구도 특히 산모에게 보양식이었다. 약대구 곰국은 젓을 많이 나오게 하기 때문이다.

▲ 서호시장에 나온 생대구. 대구는 이리가 든 수컷의 몸값이 더 비싸다. ⓒ강제윤

겨울 대구 철이면 서호시장이나 중앙시장에는 큼직한 생대구들이 나온다. 서호시장에서는 즉석에서 회를 떠주기도 한다. 이때가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것이 대구회다. 그 포악한 성질과는 달리 대구회의 맛은 담백하고 부드럽다. 겨울 통영의 귀물이다. 회 뜨고 뼈와 내장을 싸주는데 맑은 탕을 끓이면 일품이다. 시장 곳곳에서는 옛날처럼 약대구는 아니지만 마른 대구와 염장을 한 대구 알젓을 팔기도 한다. 대구알젓은 사철 두고 먹어도 좋다. 서호시장과 중앙시장 인근의 횟집 식당들에서는 겨울 대구철에만 계절 음식으로 대구탕을 끓여낸다. 생대구가 잡히지 않으면 대구탕 메뉴는 사라지고 다시 1년을 기다려야 생대구탕을 맛볼 수 있게 된다. 참으로 귀하디귀한 음식이다.

활어용이 아닌 생대구는 가격이 좀 더 싸다. 생대구를 사다 직접 국을 끓여도 좋다. 물이 끓으면 자른 무를 넣고 한소끔 끓인 후 자른 생대구와 이리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맑게 끓여야 더 시원하다. 싱싱하니 전혀 비리지 않다. 그릇에 담아내기 전에 다진 마늘과 파, 풋고추와 붉은 고추를 잘라 넣으면 시원한 통영식 생대구탕이 완성된다. 술독에 찌든 몸의 독기를 다 빼주고도 남을 맛이다.


인문학습원 <통영학교>가 오는 2월 23일부터 24일까지 통영 답사를 떠납니다.

자세한 답사 정보는 바로 가기를 클릭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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