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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수신료 인상' 좇다 '공영방송법' 올무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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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수신료 인상' 좇다 '공영방송법' 올무에 걸린다"

'수신료 딜레마'…"5000원까지 올려야" vs "국영방송 되려고"

"한나라당이 '7대 언론 악법'과 가칭 '공영방송법'을 통과시키면 KBS는 한마디로 일본의 NHK가 된다. NHK는 비시사적, 비정치적 사안만 다루는, '의제 설정 능력'을 게세당한 조직이다. 이는 '공영방송법'이 추진하는 것과 같이 방송 예산을 정부가 주무르기 때문이다. 정치적 중립을 추구하려다보니 차라리 시사 주제를 안 다루는 게 나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미디어 관련법 개정안과 공영방송법이 통과됐을 경우의 KBS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양문석 사무총장은 공영방송법 도입과 함께 거론되는 'KBS2TV 민영화' 가능성을 놓고도 "방송 사영화의 목표는 KBS가 아니라 MBC에 맞춰져 있는 건 맞지만 '지상파 구조 조정'이라는 명분 속에 KBS2TV를 도려냄으로써 MBC도 함께 들어내는 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양 총장의 전망대로 KBS2TV가 민영화된다면 그 영향력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KBS2TV가 공영방송의 체계에서 이탈하면 문화방송(MBC), 교육방송(EBS)에까지 충격을 주는 지상파 방송 구조 조정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KBS2TV 민영화는 MBC 민영화와 함께 방송의 공적 기능 자체가 무너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수신료 덫에 걸리다?

현재 KBS 노동조합은 '보이콧'으로 해석될 정도로 언론계 총파업을 놓고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강동구 KBS 노조위원장 당선자는 언론계 총파업 동참 여부를 묻는 질문에 "총파업은 위원장이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조합원의 의견과 총의를 묻는 절차를 밟아서 하는 것 아니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전국언론노조를 탈퇴한 KBS 노동조합은 겉으로는 신임 집행부가 1월 1일 취임하면 본격적인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의 애매모호한 태도가 바뀌리라고 보는 이는 적다.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7대 언론 악법'의 칼날이 KBS를 비껴갈 것이라는 전망을 KBS 구성원 상당수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KBS의 계산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스스로 '최대 과제'라고 일컫는 '수신료 인상' 문제. 이미 한나라당은 "수신료를 현실화해야 한다"거나 "1단계로 4000원 정도로 올려 재원의 60% 정도를 충당하도록 하고 장기적으로는 5000원까지 올리겠다는 목표"(정병국 의원) 등의 발언을 연달아 던지며 '수신료 인상'의 바람잡이를 하고 있다.

이에 부응해 KBS 노사도 최근 수신료 인상을 위한 '멍석'을 깔았다. KBS 노사는 지난 19일 △올해 임금 동결 △향후 5년간 인력 15% 감축 △퇴직금 누진제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경영 혁신안에 합의했다. KBS는 이번 합의를 두고 "국민이 요구하는 KBS의 자구 노력을 어느 정도 충족시킨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KBS 수신료 현실화의 기반을 조성하는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노사 합의는 지난 노동조합 선거에서 모든 후보가 반대했던 '구조 조정'에 해당하는 것임에도 사내에는 반발이 거의 없다. '15% 인력 감축'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기존의 정규직 직원을 해고하기 보다는 비정규직 해고와 신입 사원 채용 축소 등으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퇴직금 누진제 폐지나 임금 동결 역시 사원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지 않는 조치들에 가깝다. 노사는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이 주장해온 수신료 인상의 전제조건은 충족시키되 내부 반발은 없게끔 하는 방안을 택한 것.

▲ '경영 혁신안'에 합의하고 악수를 나누고 있는 이병순 KBS 사장(오른쪽)과 박승규 KBS 노조위원장. ⓒKBS열린마당

경영 효율화 한다고 수신료 올려줄까?

이런 KBS의 '액션'에 한나라당이 순순히 수신료 인상으로 화답할지는 여전히 미지수. 양문석 사무총장은 "한나라당, 방송통신위원회 등에서 수신료 문제를 올 상반기에 풀어줄 수 있었음에도 이제까지 철저하게 틀어막았던 것은 이 문제를 '공영방송'의 재원 문제가 아닌 정치적 거래의 당근으로 봤다는 증거"라며 "'구조 조정' 요구는 양념이고 무늬다. 이제껏 'KBS2TV 사영화'와 소위 '공영방송법'의 수용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겨냥해 끌고 왔는데 어떻게 '경영 효율화'로 수신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나"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한나라당이 △ 공영방송의 예∙결산권 승인권을 국회가 갖고 △광고 수입을 전체의 20% 이하로 제한하는 내용의 '공영방송법' 제정을 전제로 하는 상황에서 KBS가 수신료 인상이라는 미끼만 바라보고 있는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다.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은 "수신료 인상이란 결국 제도를 통해 인사와 돈줄을 장악하겠다는 의미"라며 "진정한 수신료의 정신이라면 '민주주의의 정신'일 텐데 이런 것은 발휘될 수 없고 정권이 방송 재정을 장악한다는 것 뿐"이라고 일침을 놨다. 조 부소장은 "그런 의미에서 수신료 인상은 '국영방송'으로 불러들이는 미끼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KBS 노조는 '수신료 인상'과 공영방송법을 별개로 대응할 수 있다는 논리를 고수하고 있다. 강동구 KBS 노조위원장 당선자는 "KBS의 적자가 계속될 경우 구조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해결책은 수신료 현실화 외에는 없는 것 아닌가 하는 판단"이라며 "그러나 한나라당이 독소조항이 있을 '공영방송법'을 제도화하려 하면 이는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했다.

KBS, '反 언론 악법 전선 동참할 수 있을까'

한편, KBS 내부에서는 KBS 노조를 '반 언론 악법 전선'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도 한창이다. 지난 선거에서 절반의 지지로 당선됐다는 한계가 신임 집행부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고, 최재훈 부위원장 당선자 등이 '공영방송사수를위한KBS사원행동'과 '통합 노조 지도부 구성' 논의를 끌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KBS 노조 집행부 가운데 '총파업 동참'에 반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많아 통합노조 건설 작업이 수월하지 않은 상황이다. KBS 노조 당선자 측과 사원행동은 사무처장, 정책실장 등 노조 집행부 일부를 사원행동 측이 맡는 등 '통합 노조' 구성을 논의했으나 "방송법 통과되면 총파업 하자"는 사원행동의 제안에 일부 노조 일부가 반발해 무산됐다. 이들은 다시 '미디어법 특위'를 만들어 KBS 사원행동이 끌어가는 방안을 두고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석 KBS 사원행동 대변인은 "KBS가 '언론 악법'에 대한 위기감도 덜한 편이고 이번 구조 조정에 대한 문제의식도 낮은 편이지만 일단 사원행동 측은 '언론법에 공동대응하자'고 손을 내밀었고 KBS 노조가 일단 응하고 있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있다"며 "KBS 감사팀이 징계 의견을 낸 인사위원회 문제도 노조 역시 공동대응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만약 KBS 노동조합이 파업에 동참한다면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는 전국언론노조에는 큰 힘이 된다. 민필규 KBS 기자협회장은 KBS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면서 "KBS는 노동조합 가입률이 타 방송사 비해 높고 조합원 수도 많기 때문에 한번 파업에 돌입하면 그 위력은 여느 방송사보다 강할 것이다. 아마 이명박 정부도 무시못할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KBS 노조로서는 '수신료 인상해야 하는데 노조가 총파업 등을 운운할 수 있느냐'는 사측의 압박도 무시못할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문석 사무총장도 "'시청자들이 원하는 공영방송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는 논의 전에 사람부터 잘라내는 구조조정의 내용도 문제지만 일단 이런 식으로 합의하는 것 자체가 KBS의 성격을 왜곡, 변질시킬 수 있는 '스타팅 포인트'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미 '땡李뉴스' 비판받는 KBS, 여론 역풍 맞을라

또 KBS가 '언론악법'과 공영방송법 등은 받아들이면서 수신료 인상만을 추진할 경우 여론의 역풍도 적잖을 전망이다.

이미 KBS의 <뉴스9>등의 보도를 두고 시민사회에서는 '땡李뉴스로 돌아가느냐'는 비판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는 "KBS는 벌써부터 '정권친화적 보도', '소설 보도'를 해와 국민들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판"이라며 "KBS는 일부 PD들이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보도국 뉴스 등에 대해선 이미 '시청 거부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KBS가 계속 이러한 경향을 보인다면 시민사회는 단계적으로 'KBS 안 보기' 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신학림 '언론사유화저지및미디어공공성확대를위한사회행동(미디어행동)' 집행위원장은 "경제 악화로 서민 경제가 혹한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수신료를 두 배로 올린다는 것이 쉬울 것 같냐"며 "손쉽게 수신료 인상을 기대하는 KBS 구성원들의 생각은 순진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맹비판했다. 신학림 위원장은 "한나라당의 제안은 잘 뜯어보면 'KBS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하면 그때 가서 판단하겠다'는 것"이라며 "KBS는 한나라당의 놀음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22일 발행된 한국방송(KBS) 사보 <열린마당>의 일부. KBS는 2009년 방송 지표를 "공정·공익 KBS"로 정했다고 밝혔다. 취임 당시 '공정성'을 들어 사전 게이트키핑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이병순 사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KBS열린마당


"수신료 인상? 구조개편 비용으로 다 날릴 수 있다"

KBS 내부에는 '수신료 인상 지상주의'에 경계하며 '패러다임 전환'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많다. KBS 수신료프로젝트팀의 김호석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공영방송이 비정상적인 체제라는 인식 자체가 잘못"이라고 꼬집으며 "오히려 다른 나라가 우리의 공영방송 체제를 배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KBS에서도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는 KBS나 MBC가 공영방송이면서도 광고 수입에 의존한다는 점을 문제삼고 있다. 이러한 불균형이 일어난 까닭은 무엇일까?

김호석 : 우리나라에는 '공영방송'을 선호하고 공영방송이 상업방송보다 우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으면서도 정작 KBS, MBC, EBS를 공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수신료는 부담하지 않으려는 이중적인 성격이 있다. '공영방송은 해야하지만 수신료라는 돈은 지불할 마음은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진짜 수신료로 재원을 충당하려면 2500원 수준이 아니라 몇만 원은 되어야 이러한 비용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적 감정상 수신료 인상에는 '극대화 제한점'이 있고 결국 방송사들은 '공적 수입'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지상파 방송의 경우에는 공적 책무로 다큐멘터리나 뉴스 프로그램을 50%까지 넣게 하는데 이런 프로그램에서는 수익이 잘 나오지 않는다. 때문에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으로 돈을 벌어 이러한 공적 프로그램을 보조하는 시스템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KBS의 경우를 보면 2TV가 1TV를 지원하는 식이 된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나 조·중·동은 이러한 시스템을 '비정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김호석 : 방송의 '공영성'을 평가할 때는 시청자들이 최고의 공적 서비스를 받고 있느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한나라당 등은 KBS를 재원 공영성의 문제로 접근해 수신료와 광고 수입 비율을 6:4로 한다거나 8;2로 만들어 공영성을 높이겠다고 주장하지만 만약 이런 시스템이 되더라도 사적 프로그램이 공적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깨지게 되면 시청자들의 받는 공적 서비스는 별 차이가 없거나 더욱 질이 낮아질 수 있다.

MBC의 경우를 보면 이런 시스템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사실상 MBC는 수신료는 한푼도 주지 않으면서 '공영방송'이라고 규정하고 저널리즘과 지역방송 유지의 책무를 부여했다. 그리고 MBC는 방송 3사 가운데 가장 지역방송 활성 비율이 가장 높은 방송사다. MBC는 수신료를 받지 않으면서 여론 다양성이라는 공적 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한국은 최소의 수신료로 공영방송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광고 수입의 교차 지원을 통해 공적 방송의 공익성을 최대치로 구현하고 있다. KBS2TV와 MBC를 두고 '무늬만 공영방송'이라고 비판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 한국 방송체제의 가장 큰 강점이 있다. 수신료는 약하지만 '공영방송'이라는 책무를 부여해 수익 채널도 관리해서 전체적인 품위와 품질을 강화시켜 한류 열풍까지 만들어 냈다. 학계와 정책 담당자들이 제대로 평가해야 하는 부분이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 등에서는 수신료 인상과 함께 KBS2TV 민영화가 함께 이야기 되는데 문제점은 없을까?

김호석 : 그런 방송구조 개편이 동반될 경우 수신료 인상의 효과는 없다시피 할 수 있다. KBS1TV와 EBS를 '공영방송'으로 묶으면 교차 지원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간 광고 수입으로 충당하던 것을 수신료로 메꿔야 한다. 이를 위해선 지금 이야기하는 5000원 선에서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또 수신료 인상 폭은 대부분 구조 개편 비용으로 없어져 버릴 수 있다. 한마디로 바보짓 하는거다.

만약 KBS2TV 민영화, KBS1TV 공영방송법 적용 등이 실현되면 KBS가 경직화 될 것이다. 나는 방송체계 자체를 망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수신료 올린 만큼 프로그램 품질이 올라가리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구조개편으로 프로그램 질 향상에 쏟아야할 재원과 시간이 낭비되면 콘텐츠 사업이 위기가 될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에는 미친 짓에 가깝다. KBS도 잘 생각해야 한다. 시청자들이 '수신료는 올랐는데 왜 방송은 그대로인가'라고 돌을 던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걸 두려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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