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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웃으면 온동네가 웃고

[한윤수의 '오랑캐꽃']<14>

필자는 주물공장에서 일하다가 허리를 다친 베트남 노동자 썬을 입원시키고 직장을 이동시켜준 적이 있고, 이때의 얘기를 오랑캐꽃 2번 <문자 보내기>란 제목으로 2008년 11월 20일자 <프레시안>에 쓴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 하노이에 있던 필자의 아내가 썬의 집을 방문했다. 베트남의 국부(國父) 호치민의 고향이기도 한 응에안은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의 북폭으로 집이 몇채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쑥대밭이 되었으며 이 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고장 중 하나다. 아내 김민희의 글을 싣는다.

썬의 아내 화이의 친정에 갔다. 화이의 친정엄마는 아주 작은 구멍가게를 하고 있다. 나를 보러 화이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오셨다. 선물을 안 사가서 얼마나 좌불안석인지 모르겠다. 이쁜 아오자이는 선물로 받아 입고, 선물은 안 사간 내 모습. 그래도 그들은 나와 이야기하면서 재미있어 죽겠단다.

▲ ⓒ프레시안

아오자이를 입은 내 모습을 보고
"이쁘다. 이쁘다."
할 때 마다
"천만의 말씀. 이쁜 것은 내가 아니고, 아오자이다."
하면 우스워 배꼽을 잡는다. 할아버지는 아예 솔직하게
"너무 너무 재미있다. 하하하하하."
그래서 내친 김에 썬이 가르쳐준 베트남 동요를
"바 트엉 꼰 비 껀 조옹 매
매 트엉 꼰 비 껀 조옹 바...."
하며 불러주니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거기서 멀지 않은 호치민의 생가에 갔다. 초가집이 인상적이다. 검소하다 못해 아주 가난한 집이다. 예수님 생각이 났다. 그 마구간을 연상시키는 집과 기물들. 위대한 분들은 공통점이 있구나.

썬의 집에 오니 밤 11시다. 빨리 씻고 자야지. 그런데 남자 손님들이 가득 와 있다. 썬의 매형과 친구들이다. 썬의 매형은 한국에서 먹지 않고 입지 않고 5년 동안 일해 7천만원이나 벌어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이 집 식구들 모두 한국에 가는 것이 소원이다. 썬의 형도, 썬의 동생도, 돈 많은 그 누나까지.

자고 싶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했다. 여기 사람들은 한국 것을 무조건 다 좋아한다.
라면도, 옷도, 핸드폰도. 심지어 손수건까지도! 모든 것은 한국제가 좋다. 우리가 그 옛날 미제를 좋아하던 생각이 났다. 썬의 매형은 한국말을 아주 잘 해서 이야기하기가 쉬웠다. 내 눈이 막 껴들어가는 것을 보고 밤 1시에 그들은
"주무세요!"
하며 떠났다

아침이 되었다. 시끌벅적하더니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남, 녀, 노, 소. 모두 나를 구경 온 것 같다. 내가 머리에 구리프를 말고 있으니까 어린이들이 다가와 막대기로 내 몸을 멀리서 꾹 꾹 찌르고는 막 도망간다. 긴 머리만 있는 베트남 시골에서 파마머리가 너무나 이상한가 보다. 구한말 서양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우리 어린이들이 했을 것만 같은 행동들. 아이들이 너무나 귀여워 쓰다듬어주었더니 비로소 가까이 왔다.

내가 분명히 아침 9시에 하노이에 간다고 했건만, 지지고 볶고 지글지글 음식을 해서 내온 시간이 낮 12시였다. 썬의 누나가 게 큰 것 3마리와 새우를 사가지고 와서 얼마나 잘 먹었는지 모른다. 내가 혼자 다 먹었다. 입맛이 맞지 않아 몇 끼를 못먹어서 눈이 돌아갈 판이라 체면 불구하고 밥도 다 차리기 전에
"아까 그 게 어디 갔습니까?" (사전에서 <게>를 급히 찾아가지고)

누나 옆방의 상 보던 돗자리에서 접시를 가져오자마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모두 다 잔치하듯 먹으려고 갖고 온 것 같은데! 그러고 나니 살 것 같았다.

아들 손자며느리 사위 모두 모여 밥을 먹었다. 이미 게로 배 불린 나는 밥을 조금밖에 못 먹었다. 안 먹고 싶었지만, 썬의 어머니가 큰아들한테 내가 음식을 잘 안 먹어서 속상해 죽겠다고 하더라는 말을 듣고, 밥을 천천히 먹었다

그들이 선물을 내놓았다. 베트남 모자 3개, 목사님 줄 커피 큰 것 2봉지, 아오자이 또 하나 (썬의 어머니가 자기 것을 또 주었다. 내겐 너무 작아서 하숙집 도우미 주었지만) 진주목걸이와 귀고리, 그 동네 유명 과자들. 베트남 가수들의 CD 20장.

아, 썬의 이모네 식구도 왔다. 그 할머니에게도 십만동 드렸다. 그리고 헤어질 때 썬의 어머니에게 3십만동(우리 돈 18,000원)을 드렸다.

헤어질 때 얼마나 우는지, 온 식구가 운다. 나도 눈물이 흐른다. 오토바이 타고 이별했는데 썬의 어머니가 손자 롱을 안고 흐느끼며 동구밖까지 따라 온다. 꼭 썬! 썬! 부르는 것만 같다.

"나 어린애 아니다. 하노이에 혼자 갈 수 있다. 버스만 태워주면 된다. 하노이에 내려서 택시나 오토바이 타면 된다. 주소 아는데 왜 못가냐?"

그렇게 수없이 말했어도
"안 된 다 !!"
며 화이가 또 하노이까지 9시간을 따라왔다.

하노이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베트남 사람들은 다 그런가? 했더니 아니란다. 베트남 사람들은 자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베풀지만 다른 이에겐 아니란다.

"이런 일은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남편이 썬을 태우고 다니며 수원의료원에 입원시키고, 퇴원시키고, 노동부에 얘기해서 직장을 어렵사리 바꾸고 해준 그 일들을 이 사람들은 생명의 은인 대하듯 하니, 수고는 남편이 하고 인사는 내가 받았다

너무나 힘들고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꼭 타임머쉰을 타고 50년 전의 한국, 내 나이 9살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리고 꼭 영화를 찍고 온 느낌이었다. 모두 나를 둘러싸고, 나는 되나가나 베트남 말 몇 마디를 지껄이고, 그들은 재미있어 하고.

그래서 내친김에 오는 날 마지막 순간에 아오자이로 갈아입고 사진 찍을 때, 아오자이 치마꼬리 잡고 핑그르르 돌며 까불었더니 소녀들이 얼마나 수줍디 수줍은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는지. 너무나 이뻤다.

꽃보다 이쁜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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