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則(칙)/員(원)/算(산)/貞(정)/眞(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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則(칙)/員(원)/算(산)/貞(정)/眞(진)

[이재황의 한자 이야기]<99>

지난 회에 나온 鼎(정)은 획수가 많아서 다른 글자의 구성 요소로 들어갈 때는 貝(패)로 간략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鼎을 설명하면서 말미에 붙였듯이 그것이 具(구) 등과 같은 글자였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貝 역시 별개의 글자가 아니라 그 간략형일 뿐이다.

어떻든 그런 간략형으로 들어가 있는 글자의 하나로 則(칙)이 꼽힌다. <그림 1>에서 보듯이 완연한 鼎자의 모습이 왼쪽에 들어가 있다. 공을 세운 사람에게 寶鼎(보정)을 하사하면서 지켜야 할 원칙들을 솥(鼎)에 칼(刀)로 새겨 놓는 것을 나타냈다거나, 솥이나 칼 같은 청동 제품을 만들 때는 합금 비율을 정확하게 지켜야 함을 나타냈다는 식으로 설명된다. 회의자라는 얘기다. 그러나 鼎은 발음기호로 보인다. 받침이 ㅇ에서 ㄱ으로 바뀐 것뿐이다.

則 얘기가 나왔으니 賊(적)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賊은 오른쪽 戈(과)가 의미 요소고 나머지 부분이 則의 변형이어서 그것이 발음기호다. 刂=刀(도) 부분이 十 비슷하게 달리 정리돼 있어서 則으로 알아보기 어려운 것이지만, <그림 2>를 보면 이 부분(여기서는 맨 왼쪽으로 가 있다)은 則의 모습인 <그림 1>에서와 마찬가지로 刀임이 분명하다.

이것 역시 재물(貝) 과 무기(戈·刀)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의미를 조합하거나 刀 부분을 人으로 보고 그런 식으로 의미를 짜맞추는 설명들이 있는데, 則이 발음기호라고 보면 허망한 노력들이다. 十이 甲(갑)의 옛 모습임에 착안해 그것이 ㄱ 받침을 나타내기 위해 들어갔다는 기상천외한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한자를 음소문자로 격상시키는 놀라운 '학설'이다.

員(원) 역시 <그림 3>에서 보는 대로 아래가 완연한 鼎이다. 그런데 위쪽 동그라미에 대한 설명이 재미있다. 솥의 둥그런 아가리를 그려 '둥글다'의 뜻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아예 둥그런 모습이 '원'이라는 발음을 가진 독립된 글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글자 만들기의 방식을 너무 다채롭게 보고 있다. 설명이 궁하기 때문이지만, 상형과 형성의 두 가지를 뼈대로 보는 필자의 방식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원 부분은 '성읍'을 나타내는 囗(성/정)이고 鼎은 발음인 형성자다. 발음은 勛(훈)·塤(훈) 같은 員 계통 글자들의 발음을 매개로 보면 초성이 약화된 결과임을 알 수 있고, 囗을 의미 요소로 해서 성읍의 '둘레'를 나타낸 글자였던 듯하다. 圓(원)은 員이 다른 뜻으로 쓰이면서 囗을 한 번 더 집어넣어 새로운 글자를 만든 것이다.

算(산) 역시 아랫부분을 具의 변형으로 보는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鼎이다. 鼎이 발음인데 員보다 음이 덜 변한 셈이다. 대나무로 만든 산가지가 옛날의 계산 도구였음을 생각하면 의미 요소 竹(죽)은 당연하다.

貞(정)은 지금 모습으로 卜(복)과 貝를 합친 것이니 '卜+鼎'의 구성으로 볼 수 있다. 점치는 사람을 貞人이라 했으니 그럴듯한 구성이다. 그러나 卜자 자체가 미심쩍은 글자다. 또한 貞의 옛 모습이라는 <그림 4>가 鼎의 옛 모습인 <그림 5>와 너무 닮았다. 鼎의 옛 글자꼴 가운데 윗부분이 卜 형태인 이런 모습들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貞=鼎일 가능성이 높다.


眞(진)은 貞과 모양이 비슷하다. <그림 6> 같은 모습이 眞의 옛 글자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림 6>은 분명한 貞=鼎이다. 그렇다면 眞=貞일 수 있다. 의미상으로도 '참되다'(眞)와 '곧다'(貞)가 통한다.

그러나 眞은 또 直(직)과 연관 가능성이 있다. 윗부분은 거의 같다고 볼 수 있고, 아랫부분은 直이 본래 道(도)이고 그 辶(착)은 본래 '彳(척)+止(지)'였음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형태다. '참되다'(眞)의 의미는 이번에는 '곧다'(直)와 연결된다. 貞=眞=直의 등식 가운데 어느 부분의 등호가 부등호로 바뀌어야 하는지 감을 잡기 어렵다. 어쩌면 두 등호가 모두 사실일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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