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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정상회담과 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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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정상회담과 아! 대한민국

[우수근의 '아시아 워치']<46> 중ㆍ일은 왜 통화스왑에 응했을까?

"한국에 무슨 일이 있는가? 왜 유독 한국 돈만 이렇게 폭락하는가?"
요즘 중국에서 택시를 탈 때, 내가 한국인임을 알게 된 택시 기사들이 자주 물어오는 질문이다. 택시는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중국인의 일반 민심을 읽기 위한 매우 유용한 수단의 하나이다. 전세계를 휘몰아 치는 금융위기 보도를 접하며 중국의 택시기사들 중에는 한국인 승객들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자주 하고 있는 것 같다. 주위에 있는 다른 한국인들도 이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니 말이다. 이렇게 볼 때 이는 현재의 한국을 바라보는 중국의 일반 민심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돈이 마치 휴지처럼 되어 버리고 있는 것 같다."
상하이에 거주하는 한 한국인 사업가의 푸념이다. 이미 중국에서 10여 년간 무역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는 터이다. 그 동안의 중국 생활은 한국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주위의 중국인들조차 그가 '선진국'인 한국인임을 부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현재는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조롱과 비아냥으로 가득 찬 것 같아 매우 씁쓸하다고 한다.

현재 재중 한국인 커뮤니티는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다. 8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상하이 화동지역의 한국인 커뮤니티만 해도 이미 2만 명 정도가 '비싼' 중국의 물가(급락한 우리 돈의 가치로 인해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더 비싸게 된)로 인해 귀국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남아 있는 한국인들조차 "어느 어느 회사가 문을 닫았더라", "누구 누구네도 한국으로 간다더라" 는 등, 연일 들려 오는 흉흉한 소문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난 13일 일본에서 개최된 한중일 정상회담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 내 한국인들에게도 한 가닥 희망을 안겨다 주었다. 그 곳에서 체결된 한-중 및 한-일 간의 통화 스와프 증액 협정 체결로 한국은 외환위기의 공포 속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상회담을 '평가'하는 중국과 일본의 속내를 보면, 뒷맛이 어지간히 씁쓸해진다. 이번 3국 정상회담은 사실상 '금융정상회담'의 성격이 강하다. 지난 10월초에 불거진 미국 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공조 방안의 하나로 이명박 대통령이 한중일 3국 간의 금융정상회의를 제안했는데, 이번에 그것이 성사된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성사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중국 외교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3국간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사실상 거부하였다. 일본 또한 한국의 제안에 대해 그리 반기는 기색은 아니었다. 한국에 비해 중일 양국은 금융정상회담을 개최할 만한 특별한 이유도 없었고 절박한 사정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날이 긴박해지는 한국의 '사정' 등을 고려할 때 중일 양국은 한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면 왜 중일 양국은 결국 한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 먼저 중일 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밉건 곱건 한국이 금융위기로 쓰러지게 되면 자신들에게도 실로 적지 않은 영향이 초래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한국은 점점 더 절박하게 되어만 가고 있으니, 결국 싫건 좋건 '어쩔 수 없이' 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여기에다가 기왕 구원의 손길을 뻗을 바에는 중일 양국의 국내정치적으로도 활용하자는 계산 또한 작용했을 것이다. 즉 중국에서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선진국으로 인식되고 있는 한국을 "우리 중국이 도왔다". 일본에서는, 경제성장 조금 했다고 기고만장하는 한국을 도와 한국의 코를 콱 누름과 동시에 "봐라, 우리 일본은 아직 건장하다"며 일본 사회를 안심시키는 호기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와 같은 중일 양국의 속내는 중일 양국의 언론 매체에 그대로 나타났다. 우선 이번 3국 정상회담을 보도하는 중국의 보도에는 중국에 대한 '자부심' 이 두드러진다. <인민일보>를 비롯한 <해방일보>나 <동방조보> 등, 중국의 대부분 언론매체는 지난 14일자에서 "한중일 동반자 관계 확립"이라는 제하에서 일단 이번 회의에 대해 "3국 정상들 사이의 최초의 단독정상회담"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보도 곳곳에서 한중일 3국 사이에서의 중국의 '핵심 역할'과 '위상'에 대해 강조하였다. 이는 "이번에 중국이 한국과 통화 스와프 증액에 대해 합의해 줌으로써 한국은 당면한 금융위기 우려에서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신문 매체들의 논조나, "40% 이상 폭락한 한국의 원화에 대한 중국 측의 도움" 이라며 구원투수로서의 중국의 위상을 강조한 중국의 TV나 라디오의 논평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중국 측의 이와 같은 시각은 일본에서도 거의 다를 바 없다. 요미우리 신문이나 아사히 신문, 산케이 신문 등과 같은 일본의 주요 언론매체들은 "동아시아의 안정장치를 향해"와 같은 제하에서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자세히 보도하는 가운데 한중일 3국 사이의 협력체제를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며 그 의미를 부여했다. 이러한 일본의 언론매체 속에서는 "현재 한중일 3국은 북한 핵 문제와 한국화폐 가치 폭락 등과 같은 동북아의 지역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과 체결된 통화스와프 증액으로 한국 발 위기는 일단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논조가 적지 않다. 산케이 신문의 경우는 아예 "한중일 정상회담, 원화 위기회피에 대한 성과" 라는 제하를 내걸며 "…사실 일중 양국에게 이번의 3개국 금융합의는 이렇다 할 매력이 없다. 하지만 한국은 외화준비고가 세계최고인 일본과 중국을 금융파트너로 취함으로써 계속되는 다사다난에 고초를 겪기만 하던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경제운영에서의 강점을 한국국민에게 과시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중일 양국의 속내는 안중에도 없는 듯, 한국에서는 이번 한중일 정상회담에 대한 "한국의 주도적 역할"과 이로 인한 한국의 '성과'에 대해 자화자찬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 같다. 국가운영을 제대로 못해서 "우리가 쓰러지면 너희들도 쉽지 않을 텐데, 그래도 안 도와줄래?!" 식의 공갈과도 같은 구걸 끝에 얻게 된 것을 두고 성과랍시고 평가하고 우쭐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자화자찬으로 여념이 없는 같은 시각에 한국의 위상은 추락하고 있고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 또한 마구 짓밟혀지고만 있는 이 참담한 현실에 대해 과연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한반도는 좀 제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골치덩어리 북한에 이어 이제는 선진국이라는 한국마저 성가신 존재가 되고 있으니, 이거 원, 어디 좋은 이웃이라 할 수 있겠나…"(또 다른 중국 택시 기사의 일침).

제발, 제발, 국가운영을 좀 더 제대로 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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