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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동맹 강력해도 통미봉일 왔다"

[정세현의 정세토크]<11> MB정부, '초심' 버려야

정세토크를 지난주에 했어야 하는데 11월 28일부터 12월 6일까지 미주 지역 동포들을 상대로 한 강연회와 간담회에 다녀오느라 한 번 쉬었습니다.

미국에 간 이유는, 오바마 신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내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이 조화를 이룰 것이냐, 아니면 엇박자를 내면서 여러 가지 불편한 관계로 들어갈 것이냐에 대해 궁금증이 많지만, 해외 동포 사회에서도 그에 대한 궁금증이 상당히 높다는 얘기를 듣고, 가서 내 얘기도 좀 하지만 교민사회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나 그분들의 생각을 수집하기 위해서 갔어요.

다들 아시겠지만, 교민사회의 여론도 딱 두 쪽이 나 있어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은 국내 보수보다 더 강해요. 극보수죠. 거의 1960년대 말 70년대 초 수준의 대북관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있고, 최근 정보를 많이 입수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남북관계에 대해서 강경한 대책을 주문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죠.

반면에 진보랄까, 비(非)보수적인 분들은...거기도 두 갈래죠. 북한의 얘기가 무조건 옳고 한국이 무조건 잘못됐다는 분들도 있고, 중도적인 입장에서 북한도 문제가 있고 한국 정부도 이렇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대체로 내가 만난 분들은, 오바마 신정부가 출범하면 북미간에 훈풍이 불 게 분명한데 남북간에는 계속 삭풍이 불까봐서 걱정이라는 말씀을 많이 했어요.

내가 국내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 쓴 소리도 하고 비판도 하지만 밖에까지 나가서 그럴 수는 없더라고요. 그게 그런 거죠. 그래서 잘 되지 않겠느냐...미국의 대북정책이 훈풍 쪽으로 나간다면 동북아 국제정치 질서 속에서 한국 외교의 스펙트럼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뒤늦게라도 훈풍 쪽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얘기를 하면서, 그러면서도 삭풍이 불 가능성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러나 여론의 힘으로 훈풍 쪽으로 밀어 넣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얘기했어요.

한미관계와 관련해서는 미국 동포사회의 여론이란 게 한미관계, 한미관계를 축으로 한 북미관계, 나아가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준다고 봅니다. 그래서 재미동포 사회에서 일종의 여론 조성, 우리의 대북정책이 훈풍 쪽으로 가서 오바마 정부와 보조를 같이 하도록 해 달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은 '악의의 무시' 정책

그런데 돌아와 보니까 떠날 때보다 훨씬 더 삭풍 쪽으로 바뀌었어요. 북쪽에서 11월 12일 대남 전통문을 보내서 12월 1일부로 군사분계선 출입 문제를 엄격히 제한, 차단하겠다고 한 직후에, 그날 오후 통일부 대변인의 논평 형식으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고 이행을 위해 현실적 기초 위에서 협의하자. 그러기 위해 남북대화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잖아요.

그리고 곧바로 국방부에서는 그동안 북쪽이 요구했던 통신 자재·장비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죠. 북한이 지금까지 답을 안 하고 있지만. 하여튼 통신 자재·장비를 제공하고 민간 지원단체를 위한 매칭펀드도 하겠다. 또 민간 지원단체들의 금강산 방문을 허용하겠다고 했어요.

그런 신호들이 타이밍 면에서는 북쪽의 대남 강경 자세에 끌려가는 것처럼 됐죠. 모양새가 그렇게 됐어요. 기자들이 북한에 끌려가는 것 아니냐고 질문하니까 통일부 대변인이 "그런 건 아니고...원래 그렇게 하려고 했었다"는 답변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저기 좀 알아 보니끼 내막적으로는 사실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와 페루 APEC 정상회의로 떠나기 전에 그런 정부 방침을 결정해놓고 떠났다고 하더라고요.

자재·장비도 주고 6.15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도 해 놨는데, 그런 마당에 북한의 전통문이 날아오니까 정부로서도 짜증이 좀 나겠죠. 짜증이 나지만...그래도 나는 통일부 대변인 명의의 논평과 자재·장비 제공이 나쁘지 않은 징조라고 봤어요.

어차피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면 남북관계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점에서 나는, 현실적으로 오바마 진영의 대북정책과 동북아 정책의 방향을 예견하고 거기에 조율해 나가겠다는 신호로 그걸 해석했죠.

▲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기내 기자회견에서 통미봉남이란 말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그런데 대통령이 12월 7일 민주평통 회의에서 한 얘기를 보니까, 다시 또 유턴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다시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란 입장으로 돌아간 것 같고, 대통령은 "남북관계가 적당히 시작해서 끝이 나쁜 것보다는 처음이 어렵더라도 제대로 출발을 잘 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도 했죠.

그걸 보면서, 아...이건 지금 정부 내에 우리도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으로 서서히 움직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아직도 그런 것에 대한 인식이 없이 그냥 기다리는 전략, 무시하는 전략, 새판짜기 전략...이런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체로 이명박 대통령은 기다리는 쪽, 무시하는 쪽으로 다시 돌아갔어요. 대통령의 여러 가지 멘트를 잘 보면 소위 '악의의 무시 전략'(Malign Neglect)이에요. 듣기 좋은 말인데 사실 거기 담긴 내용은 무시 전략인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강경론자가 아니다." 그거 괜찮은 말이에요. 그럼 유화론자냐? 그건 아녜요. 전후 맥락으로 볼 때,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다. 강경론자가 아니다. 북한 동포들에게 잘 해주려고 한다' 그런 전체 문맥을 연결해 보면 사실은 그냥 무시하겠다는 얘기예요.

사실 강경론만 해도 사실은 그게 인게이지먼트(관여·개입정책)입니다. 관계를 하면서 밀어붙이는 거예요. 그런데 강경론자가 아니란 얘기는, 난 북한이 자세가 변할 때까지 기다리겠단 얘기밖에 안 되죠. '악의의 무시'전략입니다. "북한한테 잘 해주려고 한다." 그것도 듣기에는 나쁘지 않은 말 같지만 사실은 아직도 '비핵 개방 3000' 구상의 논리를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했다는 거예요. 상생공영의 대북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해놓고 이런 엇갈린 신호를 보내니까 국민들도 정부의 진정성에 대해서 의심을 하는 겁니다. 북은 말할 것도 없고.

통미봉남의 인과관계 제대로 알아야

이렇게 가다간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면 한미간의 심각한 대북정책 노선상 불협화음이 나타나리라고 봅니다. 그렇게 해서 한미가 불편한 관계로 가다보면 결과적으로 통미봉남이 됩니다. 대통령이 통미봉남이란 말을 폐기해야 한다고 그 전에도 한번 하더니 이번에도 민주평통 회의에서 했던데...용어를 폐기한다고 해서 통미봉남 현상이 안 일어나고, 묵인한다고 해서 통미봉남이 되고 그러는 건 아니죠.

통미봉남은 우리가 북한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미국과 북한 사이의 관계 속에서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 북한이 무슨 의도적으로, 전략적으로 그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서 나타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그런데 한미동맹을 강화하면 미국이 절대로 통미봉남 허용하지 않을 테니까 북한을 꿈도 꾸지 마라? 그건 통미봉남의 인과관계를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1993~4년 김영삼 정부 시절의 남북관계가 통미봉남이란 말로 압축되죠. 그건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예요. 그때 보니까 미국은 우리 정부를 기다려주지 않더라고요.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 북한과의 양자대화를 적극 추진한다. 북한이 요구하면 적정한 수준의 보상을 해줄 수도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양자접촉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투덜대니까 미국은 처음엔 우리를 기다리는 듯 하다가 우리가 그런 식으로 계속 어깃장 놓으니까 '그럼 빠져라'는 식으로 가버렸죠. 그게 통미봉남이 된 겁니다.

그러니까 북한보다는 미국의 선택에 의해 우리에게 안겨질 가능성이 높은 게 통미봉남입니다. 지난 10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뺄 때 일본이 거기에 대해서 굉장히 불편해 하고 막으려고 애를 썼잖아요...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미일동맹이란 건 한미동맹보다 훨씬 더 견고한 거 아닙니까. 특히 부시 시대의 미일관계는 그야말로 19세기 말 영일동맹 보다 훨씬 더 강력하죠. 아미티지 보고서에서 미일동맹을 강화해서 중국과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미일동맹이 강화된 시기가 부시 시대인데, 그 막강한 동맹의 기반 위해서도 미국은 일본을 따돌려 버리더라 이겁니다. 통미봉일이죠.

통미봉일은 북한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한 게 아닙니다. 일본이 북일관계를 잘 조정하지 못한 결과 나타난 거란 말이죠. 그 구조를 잘 알아야 합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끝까지 우리한테 정조를 지킬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거예요. 미국은 자기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냥 갑니다.

물론 초기엔 좀 기다릴 거예요. 어차피 오바마 정부가 출범해도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임명될 때까지 대북정책이 구체화되기 어렵습니다. 그게 한 4~5개월 가까이 걸리니까 내년 상반기는 그대로 간다고 봐야죠. 그런데 그 이후에는 속도를 낼 겁니다.

또 하나. 부시 시대에는 일본 중심의 동북아 전략을 추진했거든요. 부시 진영에는 일본 전문가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오바마 진영엔 상대적으로 중국전문가들이 많고, 그 사람들의 기본 전략은 중국을 위협세력으로 간주하기보다, 설령 나중엔 그렇게 될지 몰라도, 상당기간 동안 공존가능한 경쟁자이면서 일본을 대신할 수 있는 아시아의 중요한 파트너로 간주하는 경향이라고요. 그러면 북핵 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미중협력이 상당히 부시 시대보다 긴밀해질 수 있습니다.


'북핵 완전폐기 불가론'은 희망사항

오바마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이 될 줄 알았는데 백악관 법률고문으로 임명된 그레고리 크레이그라는 사람이 있어요. 르윈스키 스캔들 때 클린턴 대통령을 살려 낼 정도로 상당히 유능한 모양이더라고. 그런데 오바마 진영에 있으면서 외교안보정책 참모 역할을 톡톡히 했어요.

그 사람이 미국진보센터(CAP) 같은 싱크탱크에서 낸 보고서를 보면,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100일 이내에 거물급 특사를 북한에 보내서 핵문제를 확실히 해결하기 위해서 북미수교까지 해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돼있습니다.

그게 실현될지 모르지만 100일 이내라고 하면, 거물급 특사가 가서 그런 메시지를 보내 놓고, 북한도 여러 가지로 준비를 하고, 그 후에 동아태차관보 임명하고...그렇게 해서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겠다는 얘기예요.

수교까지 보장하면서 북핵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끌어내려고 하는 마당에 이쪽에서는 '북한이 변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면, 6자회담이 될지 아니면 그보다 폭넓은 회담으로 확대될지 모르지만 거기서 우리 위상과 역할이 과연 눈에 띠겠어요?

지금 6자회담 보다 폭넓은 국제협력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미북 양자를 기본으로 하고 6자가 나중에 추인하는 식이라기보다는, 더 넓은 폭으로 풀어나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어차피 부시 시대 6자회담은 사실 5대 1 압박전략으로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오바마가 북한이나 이란의 핵문제를 국제협력으로 풀려고 하면 EU도 들어올 수 있고, 호주도 전부터 일본 대신 중유 지원 좀 하면서 6자회담에 들어와 볼까 하는 얘기도 했잖아요. 일본은 납치 문제 때문에 1/N원칙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해서 북한으로부터 '상종도 안 하겠다'는 말을 듣고 이번에 베이징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어쨌든 6자회담보다 폭넓은 방향으로 간다면 북한이 미국의 요구에 순응하기 좋은 모양새로 나가리라고 봅니다.

더구나 오바마는 이른바 '넌-루가 방식'의 계승발전자예요. 샘 넌 의원 대신 루가-오바마 방식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핵 비확산과 폐기 전략을 상원의원 시절에 연구해 놓은 사람입니다. 그 정도로 조예가 있기 때문에 북핵 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그 방식이 적용되리라고 봅니다. 그건 우크라이나의 핵을 폐기시켰던 방식인데, 경제적 지원을 충분하게 해주고, 심지어 핵 관련 산업에 있던 기술자나 전문가들의 취업까지 보장해줬던 방식이란 말이죠.

부시 때는 북한에 대해 리비아 방식을 써보고 싶어 했습니다.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를 요구하면서 그랬는데 북한이 듣지 않았죠. 리비아 방식이란 건 북한이 먼저 폐기하면 후에 보상한다는 선폐기 후보상이거든. 그걸 북한이 안 받아서 안 됐고, 오바마 시대에는 보상과 폐기를 병행하거나, 내지는 어떻게 보면 보상을 훨씬 더 후하게 하거나 약간 선행시키면서 폐기를 유도하는 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할 때 김정일 위원장을 비롯한 군부도 그걸 거절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 북한이 이런 저런 구실을 대서 수교도 따내고, 경제지원도 받아내지만 결국은 핵무기 몇 개를 가지려고 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죠. 북핵 완전폐기 불가론. 그건 어떻게 보면,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어느 정도에서 멈춰 줘야 동북아 지역에서 무기장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이나 북한의 지도부가 충분한 경제 보상을 받고 수교까지 확실하게 해주면서 체제인정까지 간다면, 핵무기를 끌어안고 2300만이 굶어죽는 결과를 택하겠어요? 진짜 뭐...핵무기가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미사일이 집을 지어주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도 우리 정부 내에서는 아직도 '초심'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나 봐요. 미국이 어차피 핵문제 해결과 북미수교를 병행론적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데, 우리가 연계론적 구상을 고수한다면 한미간에 상당히 복잡한 문제가 생길 수 있죠.

특히 FTA 문제까지 있잖아요. 오바마는 자동차 산업 때문에 어떤 식으로건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공언했는데, 우리는 또 그렇지 않잖아요. 이런 것들하고 얽히면서 한미관계가 지금 낙관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게만 못 가고,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통미봉남이 온다 이겁니다.
▲ 오바마 당선인과 국무장관에 지명된 힐러리 클린턴 ⓒ로이터=뉴시스
북한이 '기다리는 게 전략'이라고 할 수도

정부 정책이 변화하려면 일정한 시간과 명분이 필요합니다. 근데 명분이란 건 별게 아녜요. '미국도 이렇게 가고 있는데 우리가 거기 엇박자 내서 득 될 게 뭐 있느냐. 그러니 우리 정부도 빨리 정책을 조정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일어나면 됩니다.

지난 11월 7~8일 경에 민주평통에서 전국 1908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봤어요.그런데 남북관계가 잘 되고 있고, 정부 정책이 잘 되고 있다고 답하는 비율이 그리 높지 않았어요. 평통 의장이 대통령이니까 약간은 유도성 질문이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을 잘 한다는 비율이 그리 높지 않았다면 그건 정부가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어요.

정부의 눈치를 조금이라도 보는 사람이라면 비공개 설문조사에서도 본심을 잘 얘기 안 해요. 어떻게든 추적해서 불이익을 받지 않겠냐는 그런 게 있어요. 아, 선거 사전 여론조사도 본심 얘기 안 하잖아요. 미국하고는 다르지. 어쨌건 그런 상황에서 현 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 비율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것에 대해 정부도 한번 다시 생각해 보고, 우리 국민들도 이제 남북관계가 북미관계의 개선을 선도해서, 오바마 시대 동북아 국제질서와 국제정치에서 우리 모양새가 그래도 옹색하게 되지 않도록 미리미리 조정돼야 한다는 요구를 강력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미국이 저렇게 서두르는 건 오바마 임기 중에 돌아오는 전시작전통제권과도 관련이 있어요. 미국은 세계전략 속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걸 굉장히 불편해 해요.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를 못 한다는 겁니다. 그런 것들하고 맞물리면서 북핵 문제가 고비 넘는 순간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오바마 시대 시작된다고 할 때 남북관계가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우리는 거기서 완전히 변두리가 됩니다.

이렇게 가다간 오히려 북쪽에서 기다리는 게 전략이라고 할지 몰라요. 미북관계를 볼 때, 나중에 남쪽이 정말 아주 입지가 어려워지면 자기네한테 매달릴 거라고 생각할지 몰라요. 그렇게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아요? 아니, 정말 이대로 가다간 평화체제 4자회담 앞두고 그렇게 됩니다.

해석도 제대로 해야 돼요. 내가 미국 가기 전에 보니까 '오바마-바이든 플랜'에 나온 얘기 중에 '터프 앤 다이렉트'를 강경이라고 번역한 데가 있더구만? 허 참, 웃기는 소리죠. Obama-Biden will pursue tough, direct diplomacy without preconditions with all nations, friend and foe. 거기 'foe'(敵國)만 있다면 강경이라고 해석해도 되겠지만, 아니 해석하고 싶겠지만, 적대국이 됐건 우방국이 됐건 모든 나라들과 전제조건 없이 아주 한 번 결정하면 끝장을 보는, 그런 뜻이거든 터프가. 목적 달성을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는...양자외교도 하고.

그렇게 하겠다는 건데 그걸 갖다가 우리 보수언론 중에 하나가 '그 봐라. 오바마도 북쪽에 대해 강경하게 나간다지 않냐. 우리 정부가 잘 하고 있다'는 식으로 여론을 오도하면 됩니까...아이고오...그러니까 정부는 그런 해석만 보지 말고 빨리 궤도 수정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 김영삼 정부 시절 통미봉남 상황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신다면?

1993년 3월 북한이 NPT를 탈퇴하니까, 5월부터인가 미국이 북한에 제3국에서 비공개 접촉을 하자고 제안해요. 그래서 몇 번 만났죠. 그걸 감지하고 우리 쪽에서 북한을 그렇게 다루면 안 된다는 식으로 불평하죠. 그래도 6월 11일에 베를린에서 북미가 합의를 합니다. 양자접촉을 계속 한다고. 본격적으로 제네바 핵 협상을 하기로 해요.

그러자 김영삼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유명한 발언이 나오죠.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 2월 25일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고 말했던 분이 불과 4개월도 안 돼서 핵을 가진 자와 악수할 수 없다는 '멋진' 멘트를 날리는데...바로 그것 때문에 북쪽에서 '좋다. 그러면 기본합의서에 근거해 추진되는 모든 당국간 대화를 전부 중단한다'고 하면서 남북대화가 끊어집니다. 그리고 대남 비난이 시작되죠.

그때 미국이 어떻게 했느냐? 남북관계에서 미국이 손 쓸 게 있나? 그렇다고 해서 미북 사이 약속된 제네바 협상을 지연시키나? 아닙니다. 그냥 바로 들어가더라고. 남쪽이 계속 투덜대는데도.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그러면서 우리 외교부 사람들이, 제네바 쪽에 있는 사람들이 고생했죠. 담벼락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끝나고 나면 몇 마디씩 주어 듣고, 나중에 국무부 라인 통해서 공식 보고가 들어오고 그러는데, 나중에 지나 놓고 보니까, 그때 우리한테 알려줬던 얘기들이 전부가 아니었어요...소용없어. 저 아니면 남이야.

한미관계가 그 전까지 얼마나 좋았어요. 근데 그것 때문에 불편해 졌죠. 그러니까 한미관계가 좋으면 통미봉남이 없다는 얘기도 희망적인 생각입니다. 좋았던 한미관계가 그것 때문에 나빠져요. 미국의 국가이익은 핵 비확산입니다. 그걸 위해서는 뭐든지 빨리 가서 막아야 하는데, 우리가 자꾸 발목을 잡으니까 뿌리치고 가버리더라 이겁니다. 그러니까 한미관계가 나빠지고 통미봉남이 오죠. 한미관계는 상수가 아닙니다. 상당히 가변적인 거예요.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現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경남대 북한대학원 석좌교수)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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