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 쥬신에서는 왜(倭)를 현재의 일본 열도라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1963년 이후 반도쥬신의 북부(북한)를 중심으로 일본사를 반도쥬신의 역사의 연장선으로 보는 관점들이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면, 가야 지역이4) 『삼국지』「위서(魏書)」동이전의 한전(韓傳)의 계통을 잇는 왜(倭)의 또 다른 이름은 아닐까 라는 의문들이 제기되었던 것이죠. 물론 반도 쥬신의 사서인 『삼국사기』(백제본기)에 나타나는 왜(倭)라는 말은 가야뿐만 아니라 열도(일본)를 가리키는 경우도 나타납니다.
▲ 일반적으로 알려진 왜구의 그림 |
그 동안 이 왜(倭)의 존재를 일본에서는 야마토(大和) 정권 또는 한반도 남부 왜인으로 보았고5), 한국에서는 북규슈의 백제계 왜국6), 친백제 북규슈 세력7), 중국에서는 북규슈의 해적 세력8) 등으로 보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조금씩 잘못된 견해들입니다.
특히 한반도 남부의 왜인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저 한국인이지요. 도대체 열도에 제대로 된 국체나 국가도 없는데 그 국민만이 반도에 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앞서 본대로 왜에 대한 개념은 광개토대왕비의 해석 문제와도 결부되어있습니다. 광개토대왕비의 경우 고구려군은 왜백제연합군(倭百濟聯合軍)을 격파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 왜에 대하여 크게는 대화조정(大和朝廷)으로 보는 설, 북규슈(北九州)의 백제계 국가로 보는 설, 임나지방의 별명으로 보는 설 등이 있습니다.
광개토대왕비에 나타난 왜에 대한 문제는 1960년대부터 반도 쥬신(한국)과 열도 쥬신(일본) 사이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는데, 당시에 열도의 학자들은 비문의 왜를 대화조정(大和朝廷)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결국 이런 사고에서 열도 쥬신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하는 식의 논리로 발전하였고 이것은 열도 쥬신의 반도 쥬신에 대한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는 구실로 인용되기도 합니다.
광개토대왕비에 나오는 왜에 대하여 일본의 연구에 대하여 가장 강력하게 반발한 학자는 북한의 김석형(金錫亨) 교수(김일성 종합대학)로 여기서 말하는 왜는 북규슈(北九州) 지방에 있던 백제계(백제 분국)인 왜국으로 고국인 백제를 위해 동원되어 조선에 출병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즉 1960년대 「삼한·삼국의 일본열도 내 분국설」을 제기한 김석형 교수는 일본 열도 안에서 『일본서기』의 10개 가라국을 기비(吉備) 지방을 중심으로 모두 찾아냈을 뿐 아니라 몇 개 가라계열 소분국을 더 찾아내기도 했지요. 결론부터 말하면 김석형 교수의 견해는 오류입니다. 김석형 교수의 견해는 부여계와 왜를 완전히 같다고 보는데 그것은 잘못이지요. 그리고 이 시기에 고국으로 그 많은 군대를 보낸다는 자체가 동화같은 얘기입니다.
광개토대왕비에 나오는 왜에 대하여 그것이 야마토 조정의 군대이든, 백제분국의 군대 이든 모두 북규슈로 비정한 것은 타당성이 부족합니다.
첫째 지금까지 본대로 5세기 초에 대전(大戰)을 수행해낼만한 정치적인 실체가 제대로 없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도대체 규슈 지역에 어떤 강력한 국가가 있어 대고구려 전쟁을 수행한다는 말입니까?
둘째 설령 야마토 조정의 실체가 존재한다해도 4세기말에 야마토 조정이 한반도로 출병하여 고구려의 대군과 싸울 정도의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째 고구려와 싸운 왜가 일본 내에 있었다면 왜의 대군(大軍)은 전쟁이 필요한 시기에 신속하게 쓰시마(對馬) 해협을 건너야 하는데, 그것은 당시의 조선(造船) 기술로 보아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입니다.9)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미 지적한대로 당시 야마토 조정이 군단급 병력을 동원한 기록은 고사하고 중대급 병력도 제대로 동원한 기록이 믿을 만한 사서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왜는 일본 열도에 있지 않았다는 말이 되는데 이에 대하여 이노우에 히데오(井上秀雄) 교수는 고구려와 싸운 왜군의 중핵 혹은 대부분은 바다를 건너지 않은 왜인(倭人), 곧 임나 지방에 있던 왜인이었을 것이며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보이는 왜인·왜병도 육지와 이어진 곳에 살고 있던 왜인·왜병이며,10) 신라에서는 7세기 중엽까지는 신라와 접해 있던 임나지방을 왜(倭)라고 불렀다고 주장하였습니다.11) 이와 관련하여 키노시타 레이진(木下禮仁) 교수는 『삼국사기』의 왜관계 기사들이 신라본기(新羅本紀)에 집중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12)
이 논의들도 말이 안됩니다. 열도 쥬신의 사학계의 거목조차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양국의 사학자들의 소중화주의적 질환이 심각한 정도입니다. 한번 봅시다. "바다를 건너지 않은 왜인(倭人), 곧 임나 지방에 있던 왜인"이라는 말이 우습군요. 임나지방에 있는 왜인이라는 표현이 말입니다. 이 말은 그저 임나지역민 즉 가야인이라고 하면 간단한 말이 될 터인데 표현이 이상하다는 말이죠. 이시기에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national identity)이나 국민의식이 제대로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임나지역에 있던 왜인이라는 말이 상식적이지 않죠. 그저 가야인들이라고 하면 될 일입니다. 이 점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했습니다.
어쨌든 이노우에 히데오 교수는, 일본의 대부분 사가들이 중국 사서 왜인전에 보이는 왜인 거주구역의 중심이 오늘날의 일본 열도라고 판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倭)', '왜국(倭國)', '왜인(倭人)'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는 각종 사료들을 검토해 본 결과 그 내용이 지금의 일본 열도와는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본 것입니다. 탁견(卓見)이 분명합니다.
이노우에 히데오 교수는 『산해경(山海涇)』, 『논형(論衡)』, 『한서(漢書)』,『후한서(後漢書)』,『삼국지(三國志)』,『삼국사기(三國史記)』 등의 왜 관계 기사를 여러 차례 검토하였습니다.13) 그 결과 그곳에 등장하는 왜인의 거주지역이 현재 중국의 화북(華北)이나 화남(華南), 혹은 한반도 남부에 조금씩 흩어져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이노우에 히데오 교수는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왜(倭)'가 집중적으로 사용되었고, 신화시대(神話時代)에는 천황과 그 가족만이 이 용어를 사용하고, 전설시대(傳說時代)에는 야마토 지방의 귀족과 호족들이, 역사시대에서는 이주민들(부여계를 말함)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동안 왜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과는 다른 것이지요.
간단히 말하면, 이노우에 히데오 교수는 중국·조선 사서의 왜(倭) 관련 기사(記事)들을 검토하여 왜가 가야의 별칭이라는 결론을 도출해내고,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란 가야의 재지호족(在地豪族)으로 구성된 합의체로서, 왜 왕권뿐만 아니라 일본열도의 세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노우에 교수의 견해는 매우 합리적이고 타당한 견해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견해도 앞으로 보겠지만 쥬신의 전체 역사에서 고찰한 왜와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왜라는 개념은 단순히 일본 열도나 중국의 화중, 화남 및 한반도 남부의 사정만으로는 결코 이해하기 힘든 여러 가지의 요소들과 변수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왜(倭)는 범쥬신(Pan-Jüsin) 즉 범 한국인들의 명칭이며, 이 명칭은 단순히 한반도나 일본뿐만 아니라 현재 중국의 산둥(山東), 허베이(河北), 요하(遼河) 등에서 포괄적으로 나타나는 해안 지대를 중심으로 거주한 친부여계 한국인들임을 『대쥬신을 찾아서』(제2권)를 통하여 충분히 고증하였습니다. 앞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좀더 포괄적이고 심층적으로 왜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여러 학자들의 견해들을 검토하고 그 타당성을 검정할 것입니다.
필자 주
(4) 일본에서는 주로 가라(加羅)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5) 井上秀雄『任那日本府と倭』(東出版 : 1973), 119쪽.
(6) 金錫亨『초기조일관계연구』(사회과학원출판사 : 1966), 297쪽.
(7) 千寬宇 "廣開土王凌碑文再論"『全海宗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일조각 : 1979)
(8) 王建群(박동석譯)『廣開土王碑硏究』(역민사 : 1985), 236쪽.
(9) 井上秀雄『任那日本府と倭』(東出版 : 1973), 116~121쪽.
(10) 井上秀雄 앞의 책, 390쪽.
(11) 旗田巍「三國史記新羅本紀にあらわれた倭」『日本文化と朝鮮』2(朝鮮文化社 : 1975)
(12) 木下禮仁「5世紀以前の倭關係記事」- 三國史記を中心として『倭人傳を讀む』森浩一編(中央公論 : 1982)
(13) 이노우에 히데오 교수는 『한서(漢書)』의 경우는 지리지(地理志),『후한서(後漢書)』는 선비전(鮮卑傳),『삼국지(三國志)』는 동이전(東夷傳),『삼국사기(三國史記)』는 신라본기(新羅本紀) 등의 기록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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