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장면상형'이다. 尾의 발음이 毛와 가까워 毛가 발음이 아닐까 하는 유혹도 있지만, 尸의 역할이 문제다. 毛는 충분히 의미 요소의 자격이 있으니 그것을 의미로 돌리면 尸는 발음이 될 수 있다. 초성 ㅅ>ㅎ>ㅁ의 변화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尸를 의미와 연결시키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다.
尸는 乃(내)와 마찬가지로 人(인)의 변형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을 발음기호로 보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이렇게 발음 변화의 폭을 넓게 생각하면 몇몇 글자의 발음은 이 尸와 연결되는 듯하다.
尿(뇨)는 본래 '尾+水(수)'의 형태였는데 毛 부분이 생략돼 '尸+水'만 남았다. 그런데 <그림 1> 같은 소전체를 놓고 상형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남자의 오줌 나오는 기관과 털까지 자세히 그리고 오줌 줄기도 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尸=乃를 생각하면 尿는 윗부분 尸=尾가 발음기호, 水가 의미 요소인 형성자다. 尿에서 毛 부분이 생략된 것은 그것을 생략으로 볼 수도 있지만 발음기호를 尾에서 尸=乃로 교체한 것일 수도 있다. 본래는 같은 발음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漏(루)는 구조상 왼쪽 氵=水가 의미, 오른쪽이 발음기호라고 볼 수 있다. 그 오른쪽은 漏의 본래자라고 한다. '비'의 뜻인 雨(우)가 들어 있으니 일견 '비가 새다'의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雨의 冂 부분을 一로 펴보면 바로 <그림 1>과 같은 모습이 된다. 漏의 오른쪽은 尿의 본래 모습이 약간 변한 것이다. 그것이 발음기호다.
尼(니)는 지금 '비구니'를 뜻하는 말로 쓰이지만 그것은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이후의 일일 테니 그 전에는 다른 뜻의 글자였겠다. '친하다'가 본뜻이라는 얘기는 그런 맥락에서 나온다.
이 글자는 사람이 사람을 업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지금 '尸+匕(비)'로 돼 있는 두 부분이 모두 人과 비슷하고 匕 자체가 人의 다른 포즈를 그린 것이라고 설명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그려놓고 '친하다'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했다는 얘기는 믿기 어렵다.
일단 尸 부분은 발음기호로 볼 수 있다. 乃의 발음과 아주 가깝다. 匕도 발음기호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尸의 다른 역할이 쉽게 설명되지 않으니 그것이 발음일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匕 부분이 문젠데, 이는 仁(인)의 二 부분과 같은 요소가 아닐까 생각된다. 仁의 옛 글자꼴 가운데 尸 밑에 二를 더한 모습이 있는데, 이것이 尼와 흡사한 모습인 것이다.
의미상으로도 仁의 '어질다'와 尼의 '친하다'는 상통한다. 다만 二나 匕가 의미 요소로 작용해 이런 뜻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분명치 않다. 匕는 허구의 글자고 二는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의미 요소가 되기 어렵다.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한 관계' 같은 얘기도 좀 부자연스럽다. 다른 글자의 변형 가능성까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후보조차 떠올리기 어려운 게 문제다.
履(리)는 尸·彳(척)·夊(쇠)와 나머지 부분은 상형으로 보는 <설문해자>의 설명을 필두로 상형적 설명들이 많다. 화장을 한 무당이 신전에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신는 의식을 표현했다는 설명이 그 하나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설명은 오히려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그렇게 복잡한 모습을 그리거나 복잡하게 의미를 짜맞추는 것은 문자생활 초기 사람들의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것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지금 모습 그대로 '尸+復(복)'의 형성자로 보는 것이다. 尸는 발음기호로 보는 게 낯설어서 그렇지, 漏 같은 글자의 발음만 보아도 충분히 발음기호 자격이 있다. 復은 '돌아오다'의 뜻이고 왼쪽 彳이 의미 요소니 '신발'의 이전 의미를 '가다'와 관련된 것으로 본다면 의미 요소가 될 수 있다.
또 하나는 复 부분을 頁(혈)의 변형으로 보고 그것을 발음기호로 생각하는 것이다. 나머지 '尸+彳'의 부분은 의미 요소인 彳의 복잡한 모습이다. <그림 2, 3> 같은 옛 모습이 힌트가 된다. 頁 발음은 履와 멀어 보이지민 頁과 연관이 있는 眉(미) 같은 글자를 보면 초성 ㅁ>ㄹ의 변화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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