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煩(번)/頻(빈)/須(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煩(번)/頻(빈)/須(수)

[이재황의 한자 이야기]<94>

見(견)이 頁(혈)과 같은 글자였으리라는 얘기를 하면서 顯(현)에 대해서는 살펴봤다. 오른쪽 頁이 발음기호고 그 부분은 見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顯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頁은 합성자에서 거의 의미 요소로만 보려고 할 뿐이어서 해석이 이상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이 발음으로 쓰인 글자도 많다.

煩(번)은 '괴로워하다'의 뜻이다. 머리(頁)에 열(火)이 나는 상태를 나타낸 회의자로 설명된다. 맞는 얘기인 듯하다. 다만 顯-煩의 발음을 놓고 볼 때 頁은 분명한 발음 요소다. 따라서 회의자라 해도 頁은 발음기호를 겸한 회의 겸 형성자다.

또한 頁을 발음기호로 확정한다면 오히려 火가 의미 요소로 쓰였는지는 불분명해진다. 발음이 아니라면 의미에라도 관여해야 하니 회의자가 되지만, 발음이라는 확실한 기능이 있다면 의미는 '선택'이 된다. '두통'이라는 후대의 의미와 해석이 너무 강렬하고 설명 자체도 그리 큰 문제가 없으니 일단 '회의 겸 형성'으로 보고 넘어가자.

煩은 頁이 의미 겸용일 가능성이 있으니 기존 해석이 그리 문제될 것은 없는 경우고, 頻(빈) 같은 글자가 頁의 의미에 매달려 해석을 그르치는 사례다.

頻은 '자주'의 뜻이지만 '찡그리다'가 본래 의미라고 한다. 嚬=顰(빈)의 본래자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본래 의미를 다르게 추정하는 데서 글자 구조를 어떻게 보는지가 드러난다. 頁을 억지로 의미 요소로 보는 것이다. '얼굴을 찡그리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얼굴'과 '머리'의 개념 차이가 있지만 그건 넘어가 주더라도, 步(보) 부분은 역할이 없다. 괜히 무위도식자를 집어넣어 글자만 복잡해진 걸까?

그런데 頻의 발음은 煩과 흡사하다. 역시 頁의 발음기호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보자면 의미는 필연적으로 步에 있어야 한다. 步가 '걷다'이니 그 의미에서 유추하면 頻은 '빨리 걷다'일 수 있다. '자주'와 거의 같은 의미다.

따라서 步를 무위도식자로 보거나 嚬=顰이 본래자라는 얘기는 모두 허구다. 頁을 의미 요소로 봤기 때문에 이런 무리한 가정들을 한 것이다. 頁이 발음기호, 步가 의미 요소인, 딱 떨어지는 형성자다. 이 경우엔 頁의 의미 겸용 가능성도 없다.

須(수)는 '수염'의 뜻이라고 한다. 지금 자전에도 그런 의미가 남아 있으니 그럴 수 있다. 지금 그 뜻으로 쓰이는 鬚(수)는 나중에 만든 글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상형자로 설명된다. <그림 1> 같은 모습이다. 그럴듯하다.

그런데 이 연재에서 부정된 많은 상형자들을 생각하면 수염 같은 것까지 상형했다는 얘기는 역시 무리다. <그림 1>처럼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그림들도 있지만 <그림 2> 같은 변형도 있다고 생각하면 이런 그림으로 '수염'이라는 의미를 전달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須는 頁과 같은 글자일 가능성이 있는 首(수)와 같은 발음이다. 그것이 발음기호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터럭'인 毛(모)는 그 의미 때문인지 彡(삼) 형태처럼 세로획이 빠진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彡이라는 글자 자체가 毛의 의미와 三(삼)의 발음·모양을 합쳐 놓은 어정쩡한 글자다. 須에서의 彡 역시 毛의 변형이라고 보면 須는 발음기호 首=頁과 의미 요소 彡=毛를 합친 어엿한 형성자다. '그림'이 아닌 것이다.

한편 <그림 2> 같은 모습을 보면 또 다른 생각도 든다. 首자 자체가 윗부분은 毛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 글자다. 그렇다면 그 윗부분이 옆으로 위치이동한 것이 <그림 2>다. 須는 首 자체의 변형인 것이다.

의미상으로 보아도 首의 윗부분이 毛일 가능성을 얘기하면서 '머리통'이 아니라 '머리털'이었으리라는 얘기를 했는데, '수염' 역시 머리 부분에 난 터럭을 가리키는 것이어서 연결이 된다.

여기서 다시 首와 같은 글자로 봤던 眉(미)를 끄집어내보자. 眉의 윗부분 역시 毛의 변형으로 보아 首와 같은 글자라고 했다. 首와 眉의 발음이 연관성이 있다는 얘기는 이미 했다. 그렇다면 首와 같은 발음인 須, 眉와 비슷한 발음인 毛가 모두 연관되는 발음이다. 의미는 네 글자가 모두 '터럭'과 관계된다.

정리해보자. 眉=首=須가 모두 위치는 조금씩 다르지만 얼굴에 난 터럭을 가리키고 그것은 모두 같은 글자였다. 또한 '터럭'의 총칭인 毛의 발음은 眉와 연결되고 그것은 다시 首=須의 발음과 연결된다. 네 글자가 모두 같은 발음이었으리라는 것이다. 같은 발음으로 머리털과 눈썹과 수염과 일반적인 터럭을 구분해 나타낼 수는 없다. 결국 眉=首=須 역시 처음에는 일반적인 '터럭'을 나타낸 글자였다가 나중에 글자꼴이 분화하면서 특정한 터럭 하나씩을 의미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