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런 식의 글자 만들기가 과연 있었을까? 눈에 띄는 주변 사물 몇 개를 겨우 그려 글자를 만들던 사람들이, 현대의 추상화라도 그리듯이 눈만 커다랗게 그린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보다'라는 뜻을 붙였을까? 상형의 범위가 너무 넓은 것도 문제지만, 문자생활 초기의 사람들이 대뜸 '보다'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위해 문자를, 그것도 상형이라는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런데 見에는 <그림 3>과 같은 모습도 있다. 윗부분이 지난 회에 다룬 首(수)로 볼 수 있으니 아래와 함께 생각하면 역시 지난 회에 나온 頁(혈)과 같은 글자였다고 볼 수 있다. 일단 首의 머리 부분이 더욱 간략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부수자로 쓰이고 있는 頁은 見에 '현' 발음도 있다고 생각할 때 받침 ㄴ/ㄹ의 차이뿐이다. 받침 ㄴ/ㄹ은 자주 호환되는 발음이다. 咽(인/열)의 두 가지 발음은 사실 한 발음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따라서 頁은 見의 '뵙다' '대면하다'의 뜻에서 파생된 '얼굴' '머리'의 뜻으로 독립한 글자로 보인다.
顯(현)의 오른쪽이 頁이냐 見이냐 하는 논쟁이 있지만, 見=頁이라면 무의미한 일이 돼버리는 것이다(<그림 4>). 顯은 전체를 이상한 장면의 상형으로 보기도 하고 왼쪽을 발음으로 보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얘기들이 뒤섞이고 있는 글자인데, 見=頁이 발음기호임이 분명해 보인다. 왼쪽은 전에 잠깐 나왔지만 濕(습)의 발음기호여서 발음이 멀다.
그러면 見=頁은 '首+人' 형태의 글자가 되는데, 人은 어떤 요소로 들어간 것일까? 首가 발음이니 人이 일단 의미 요소의 가능성이 있지만, '머리'나 '보다' 같은 뜻과 연결이 어려워 지난 회에도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일단 그냥 넘어왔다.
그런데 見의 옛 모습이라 해서 난데없는 <그림 5> 같은 모습이 들어 있는 것을 보면 한 가지 아이디어가 생길 수 있다. 이 모습은 지난 회에 首가 '毛+目'으로 설명됐음을 상기하면 首와 구분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見=頁의 아래 人=八은 위쪽 毛가 아래로 들어가면서 변형된 모습이 아닐까 생각되는 것이다. 옛 글자에서 구성 요소의 위치가 뒤바뀌는 건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 경우 頁은 위와 아래에 같은 요소가 중복해 들어간 셈인데, 그것은 몇 번 언급한 바 있는 글자의 전승 과정에서 생긴 '오차'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설명은 그런 '오차'가 있는 설명이기 때문에 頁이 首=見에 어떤 요소를 더한 글자였다든지 하는 다른 가능성을 분명히 남겨둬야 한다.
한편 필자는 다른 곳에서 見의 윗부분을 臣(신)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다. 見과 臣의 발음에 연관성이 있어 그 가능성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 연재 앞부분에서 臣과 같은 글자로 보았던 身(신)과의 관계 등이 다시 정리돼야 하나, 조금 전에 말한 '오차'의 부분 때문에 정리가 쉽지 않다. 다음 기회의 과제로 미뤄둔다.
面(면)은 '얼굴'의 뜻이니 얼굴을 그렸다는 얘기가 바로 나온다. <그림 6> 같은 모습을 보면 얼굴이 거의 네모꼴이고 가운데 눈이 하나 그려져 있는 기괴한 상형이다. 이것 역시 상형으로 보기는 곤란한 모습인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글자에서 변했을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面의 옛 모습으로는 <그림 6> 외에 지금 글자꼴과 느낌이 확 다른 <그림 7, 8> 같은 것들이 있다. 얼핏 보면 별개의 글자로 보여 잘못 들어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그림 6>에서 <그림 7>을 거쳐 <그림 8>로 맥이 닿아 있다.
이 <그림 8>은 頁의 구성과 거의 닮았다. <그림 7>은 위에 선이 더 그어져 있지만 윗부분이 밋밋하니 見자에 비견할 수 있다. 이 그림들이 제자리를 찾아온 것이라면 面은 見=頁과 같은 글자인 것이다. '얼굴'이라는 뜻은 見의 '보다'와 頁의 '머리'라는 양쪽 의미를 이어주는 징검다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발음 역시 見의 제2 발음 '현'을 생각하면 매우 가깝다. 초성 ㅎ/ㅁ은 지난 회에도 每(매)-海(해)로 설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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