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자 신문을 펼치고 제목에 끌려 읽기 시작했다가 곧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부끄러움이랄까 자책감 같은 것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학단협(학술단체협의회) 창립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의 마지막 종합토론회를 스케치한 그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예정보다 30분을 넘겨서도 토론회는 시작되지 못했다. 200석이 넘는 회의장엔 40명 남짓만이 앉아 있었다. 토론의 발표문을 집필한 한 교수는 '급한 일'로 일본 출장을 갔다고 한다. 토론패널 중 몇몇은 아직 회의장을 찾지 못했다. 단상에 마련된 6명의 자리엔 공동발표자 1명만이 앉았다."
학단협 창립 20주년 심포지엄, 토론회 시작도 못하고
이 기사를 내보낸 중앙일보는 자타가 공인하는 보수신문이지만, 그러나 그 기사가 학단협으로 상징되는 진보학계를 깎아내릴 의도로 작성되었다고 보는 것은 과잉해석일 것이다. 종합토론회의 실제상황이 그러했다면, 그런 사실의 보도 자체는 오히려 학단협의 위상을 아직도 중시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정말로 존재가 희미해진 단체의 행사에는 아예 기자의 발길이 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신문을 펼칠 때까지 학단협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린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고, 비록 그동안 자신을 학단협 구성원이라고 의식한 적이 없이 지내왔음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그것을 알게 된 사실이 왠지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6월항쟁 1주년이 되어가던 1988년 6월 초 여러 학술단체가 공동주최한 연합 심포지엄에 나 자신도 토론자의 한 사람으로 참가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그때 행사는 주제별로 여러 교실에서 진행되었는데, 교실마다 열의에 가득찬 청중들로 만원이었다. 6월항쟁으로 고조된 사회적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학단협은 이 심포지엄을 공동주최한 단체들의 협의체로서 그해 11월에 발족되었고, 당연히 나는 이를 적극 지지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다들 아는 바와 같이 그 무렵 민주화와 사회정의라는 목표를 공유하는 여러 운동단체들이 사회 각분야에서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고 있었다. 학단협과 자매관계라 할 수 있는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이 결성된 것은 바로 6월항쟁의 와중에서였고, 1974년에 출범한 자실(자유실천문인협의회)이 민족문학작가회의로 조직을 정비한 것은 6월항쟁 직후였다. 문학·미술·음악·영화 등 여러 장르들을 망라한 민예총(민족예술인총연합)이 결성된 것은 1988년 연말이고, 환경운동연합의 뿌리에 해당하는 공추련(공해추방운동연합)이 간판을 내건 것도 같은 해였다. 경실련(1989)과 참여연대(1994)의 출범은 좀더 넓고 구체적인 현실 속으로 운동의 외연을 확장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저 70년대의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부터 오늘의 민언련(민주언론시민연합)에 이르는 고난의 역사가 이 흐름에 동행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 뼈저리게 느끼는 바와 같이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세월 동안 사회현실은 강산의 변화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를 겪은 듯하다. 그런 일들을 거론하는 것조차 부질없게 되었지만,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승리에 이어 세계화의 구호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미구에 우리 삶을 덮친 IMF외환위기 사태를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변화의 일단을 실감할 수 있다. 아마 더 중요한 문제점은 일부 극우파들로부터 좌파정부라 호칭되는 지난 10년 동안 자본의 전일적 지배를 견제할 수 있는 민중적 기반이 점점 더 훼손된 사실일 것이다. 좌우란 본래 상대적인 개념이므로 좌파정부란 용어가 전적으로 중상모략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의 남북관계 발전은 냉전종식 이후의 국제질서에 적응하여 추진된 이전 정부의 북방정책을 계승한 것으로 좌파적이라기보다 민족(주의)적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복지분야에서, 그리고 형식민주주의의 측면에서 일정한 진전이 이룩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상쇄할 만한 신자유주의의 전면화 또한 진행되지 않았는가. 그 현실적 귀결이 이명박 정부의 탄생인데, 새 정부의 출범 이후 기득권세력이 전방위적 진군을 거듭하는 듯이 보이는 것은 그런 면에서 이른바 좌파정부의 사전준비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학술운동은 이제 자기쇄신의 기회를
그러나 진보적 학술단체가 주최하는 토론회가 예정시간을 30분이나 넘겨서도 성사되지 않은 민망한 모습을 이런 외부적 조건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일면적이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토론회에서도 제기되었던 것처럼 무엇보다 처절한 자기성찰이다. 교수들이 학문활동의 전과정에서 학진(학술진흥재단)으로 대표되는 국가권력에 종속되어 있고, 진보학계도 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뼈아픈 지적이다. 그러나 오늘날 학자의 양심과 자유를 위협하는 것이 오로지 국가권력만인 것은 아니다. 학문의 존립기반, 즉 자유로운 연구와 발표 및 비판적 토론을 압박하는 사회적 메카니즘에는 가정, 동료, 직장, 학회, 언론 등이 모두 포괄된다고 할 수 있다. 물질적 풍요를 갈망하는 가족들의 요구는 때로는 가장 치명적인 족쇄일 수 있다. 그 결과 다수의 교수·학자들은 고독하고 위험한 길로 들어서기보다 평탄한 제도적 관행 속으로 퇴각하는 길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학술운동 자신이 제도권 내부에 공식 지분을 획득함으로써 본연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한국의 학술운동은 작금에 이르러 새로운 자기쇄신의 기회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출발한 세계적 경제위기와 이에 대한 정부의 갖가지 역방향적 대응은 학자들에게 적어도 지난 10년보다는 더 분명한 선택의 계기를 부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좌파정부로 오인될 만한 불투명성이 제거된 오늘, 학문의 진보성이 가져야 할 내용은 역설적으로 더욱 투명해졌다고 할 것이다.
* 이 글은 다산연구소 '다산포럼'에 18일자로 실린 것입니다. (www.edas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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