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밤 현지인들에게 한국 고유문화를 알리고 한류 전파를 목적으로 마련된 한국 전통음식과 문화의 밤 행사가 아르헨티나 주류 사회 인사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가 한국대사관저 정원에서 마련된 이날 행사는 1200여명의 인파가 몰려 대만원을 이뤘다. 현장의 한 교민대표는 "한인이민역사 50여 년 가운데 우리 행사에 이렇게 많은 현지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놀라워했다.
한국대사관과 한인부인회, 교민단체들은 현장에서 떡메치기를 통한 인절미 등 즉석 떡 빚기, 김치 담그기, 불고기 굽기 등 전통한식 요리 과정 시연과 임금님 수라상 차리기를 연출하는 등 초청된 현지 인사들에게 한식의 진수를 보여주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뜨겁게 벌였다.
이렇게 차려진 불고기와 김밥, 잡채, 형형색색의 한국전통 떡 등을 시식한 현지인들은 모든 음식이 최고수준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일부에선 무의식중에 김치를 한입 가득히 넣고 우물거리다가 매운맛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음료수를 정신없이 들이키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한식의 아름다운 모양새와 감칠맛에 연신 엄지손가락을 추겨 세웠다.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통신사 <텔암>의 페르난도 라미레스 편집장은 "중국과 일본을 여행하면서 동양의 각가지음식을 맛보는 경험을 했는데 아르헨티나에서 한식을 경험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면서 "한국음식은 채소와 잡곡 등을 주재료로 삼고 있어 그 모양새가 아주 아름답고 다양한 양념 맛이 아주 독특하다"고 평가했다.
아르헨티나 부인회원들이 차린 임금님 수라상을 유심히 살펴본 대통령궁 공보실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아름다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라면서 "아이들과 부인에게 이런 음식을 보여주고 시식을 시켰어야 했는데 같이 동행하지 못한 것이 유감"이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즉석에서 요리된 한국의 전통음식들을 현장에서 맛본 현지 학계와 문화계 인사들도 "쇠고기를 주식으로 삼고 있는 아르헨티노들에게 한식은 건강식으로도 제격"이라며 "주위에 한식을 권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또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변에 추천할만한 한식당을 모두 소개해 달라"면서 한국 음식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인들의 한식에 대한 높은 관심은 현지에서 정통 한식으로 승부를 걸어 성공한 한 교포의 입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중심가에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정통 한식당 <비원>을 운영하고 있는 노재순 사장은 "최근 들어 현지인들 사이에서 한국음식을 먹어보았다는 게 자랑거리로 등장했다"면서 "한식은 이제 상류층들 사이에서 저칼로리 다이어트음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노 사장은 "한식은 중국식이나 일본음식처럼 퓨전으로 갈게 아니라 전통적인 방법을 그대로 고수해야 한다"면서 한식의 현지화에 성공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부터 정통 한식만을 고집한 우리는 한동안 중국식과 일식에 밀려 고전했다. 그런데 중국식과 일식은 현지음식과 비슷하게 절충을 하다 보니 한 두 번 이를 먹어본 식도락가들이 금방 싫증을 내게 됐다. 퓨전음식은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상당기간 동안 한식의 강한 맛에 거부반응을 보이던 현지고객들이 2~3년 전부터 한식이 저칼로리 발효음식이고 건강다이어트 음식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현지 미식가들이 식사 때 필수품인 와인이 한식과 아주 잘 어울린다고 평가한 것도 한식의 현지화에 일조하기도 했다. 어떤 인사들은 적포도주와 백포도주를 불문하고 한식과 와인은 '찰떡궁합'이라고 했을 정도다.
처음 우리는 고객들이 거부반응을 보이는 매운 김치와 고추장을 메뉴에서 제외시킬까 고민도 했었다. 그런데 이들이 매운맛에 금방 익숙해지는 걸 확인했다. 대다수 고객들은 김치의 맛은 맵지만 마약 같아서 한번 맛을 들이면 먹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특이한 매력이 있다고 할 정도였다. 이제 우리는 한국 전통음식이 중국식이나 일본식과의 맛 대결에서 꿀릴게 전혀 없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아르헨티나 한국대사관은 이날 한국음식 체험행사 외에도 널뛰기와 투호놀이, 재기 차기와 가야금산조, 춘향가를 비롯한 국악, 부채춤, 사물놀이 등을 곁들이고 전통 주류들을 선보여 현지인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함께 즐기고 체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아르헨티나 한국대사관의 황의승 대사는 "이런 대규모의 한마당축제가 본국이나 외부 도움 없이 자체교민들만의 힘으로 치러질 수 있다는 건 세계적으로 아르헨티나가 유일할 것"이라고 대견해 하며 "2만 여명의 교민사회이지만 모든 게 현지조달이 가능한 것은 그만큼 아르헨티나 한인 교민사회의 문화와 예술 수준이 높기 때문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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