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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IMF, 인도에는 A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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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IMF, 인도에는 ADB

[새움의 '인도, 우리에게 말을 걸다']<9> 아시아 개발은행의 차관과 케랄라 모델의 쇠퇴

(* 이 연재의 원고는 세미나네트워크 새움에서 진행하고 있는 아시아 저항운동 세미나의 결과물입니다. 또한 그린비 출판사에서 출간될 "인도의 사회운동들(가제)"의 원고 일부를 수정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전면적으로 확산된 계기는 아무래도 1997년의 와환위기와 이를 빌미로 IMF가 요구한 경제정책의 시행입니다. 인도는 1991년 경제 위기를 맞게 되고 이 과정에서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차관을 주는 조건으로 신자유주의를 관철시킵니다. 이 회에서는 케랄라 주에서 ADB가 신자유주의의 확산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에서 케랄라의 야당과 여당이 보인 행태가 한미FTA를 둘러싸고 한국에서 일어난 일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우연이라기보다 신자유주의가 민중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철되는 과정은 늘 그런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ADB의 조건부차관은 신자유주의가 케랄라에 도입되는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ADB의 정책 차관은 2003년에서 2006년 사이에 인도 여러 주에게 약 미화 80억 달러를 제공했습니다. ADB 차관이 요구한 구조 조정 프로그램은 빈곤 감소와 good governance를 표방했는데 이를 명분으로 ADB와 차관을 받은 주 정부는 사회서비스의 상품화를 통한 사영화 프로그램을 강화시켰습니다. 즉 전기와 물 같은 공공재를 전면적으로 자유화하는 것이 그 핵심입니다. 국가가 관장하던 전기와 물은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공공 서비스로부터 국가가 철수했습니다.

ADB는 오랫동안 운영방식의 불투명성 등의 다양한 이유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비난받아왔습니다. ADB의 프로그램은 우파적 특성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책을 받아들인 것은 우파 정부만이 아닙니다. 여러 연구들은 중도좌파들이 구조조정 차관을 받기 위해 애를 썼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중도 좌파들은 정치적 우파가 했더라면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을 개혁조치들을 저항 없이 도입할 수 있었습니다. 케랄라에서 좌파정권은 지난 집권 기간 동안의 ADB 차관을 받아들인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신자유주의 개혁을 수행하는 도구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앞장서서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고 한미FTA를 추진한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 2012년 5월 4일(현지시간) 마닐라 필리핀국제컨벤션센터(PICC)에서 열린'제45차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모습 ⓒ뉴시스

케랄라정부가 ADB 차관을 받아들인 것은 우선 중앙 정부의 재정 지원이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로 인도의 다른 여러 주들과 마찬가지로 케랄라도 주 정부의 재정 상태가 악화되었습니다. 케랄라의 부채는 1990년대 내내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주내 총생산 대비 부채 비율이 40%를 넘었습니다. 이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더욱 심화되어 구조조정 개혁을 받아들이는 명분이 되었습니다. ADB는 구조조정 차관을 조건으로 주 정부에게 사회보장 지출 삭감과 공공요금 인상을 강요합니다. 인도 중앙정부는 해외차입을 권장했습니다. 결국 주 정부는 고비용의 프로젝트들과 구조조정 차관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 정부는 대출 이자의 증가와 ADB가 요구한 계획에 소요되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차관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전체 세입의 4분의 1 이상이 부채 상환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결국 1996년에 1142억 달러이던 케랄라의 채무는 차관도입 이후인 2007년에는 5713억 8천만 달러가 되었습니다. 정부재정적자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ADB 차관과 구조조정정책이 도입된 이후로 케랄라는 오히려 부채의 덫에 빠졌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IMF, 세계은행의 조건부 차관을 받아 신자유주의로 전환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다른 대부분 나라에서처럼 케랄라의 재정적자 확대는 세입감소가 큰 원인이었습니다. 세입감소는 다양한 특권집단들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기 때문에 더 심각해졌습니다. 이렇게 새어나가는 금액만 계산해도 ADB 차관 액수와 비슷하거나 더 많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대기업 경영자들, 사치스러운 호텔 소유자들, 플랜테이션 자본가들, 귀금속상인들, 주류상들, 산림개발업자 등등은 서로 공모해서 케랄라의 사회 축적 구조를 자본가 계급에 유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의회 내의 좌파와 보수적 우파 모두 이런 특권집단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케랄라주의 정치 엘리트들은 새로운 권력 집단 내에 완전히 안착 되어 있고 ADB와 연합한 시장주도 개혁은 이 구조를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그 결과 공산당을 포함한 주류 정당의 지배 집단은 모두 경제의 시장화를 촉진시키고 있습니다.

ADB가 케랄라로 진입하는 데는 좌파와 우파 정부 모두 찬성했지만 1999년에 ADB와 협상을 처음 시작한 것은 CPI-M이 주도하는 좌파정부였습니다. 좌파정부가 시작한 ADB 차관 도입은 정권교체와 함께 우파정부에 승계되었습니다. 야당이 된 좌파는 우파정부가 차관을 성급하게 도입했다고 비난하고 나섭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좌파들의 선거전략일 뿐이었습니다. 2006년에 좌파가 다시 집권하자 그들이 비난했던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좌파정부는 ADB 정책 패키지가 요구하는 구조조정을 전면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케랄라 주 정부는 이런 구조조정 정책을 합법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영기업과 같은 자치기관에도 국제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이것이 분권화하는 지구적 금융의 새로운 방식입니다. 다시 말해 세계은행과 ADB가 민주주의의 확산을 명분으로 주장한 분권화의 실체는 고작 빚을 낼 권리를 나누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 정부는 다른 금융기관과의 모든 합의나 협상은 ADB와 의논해야 했습니다. 주 정부는 재정문제에 있어서 결정을 내릴 권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주의 모든 공기업들은 대안적인 경영 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했는데 여기에는 사영화, 투자 중단, 합병, 경영 계약, 그리고 임대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ADB 차관은 다음의 세 가지 개혁 조치를 요구했습니다. 1. 정부 프로그램의 현대화와 재정 개혁. 2. 전력 부문 개혁. 3. 케랄라의 지속 가능한 도시 개발 계획. 그 외에도 ADB가 계획한 민관협력(public-private partnership)단위들이 인도 도시 중심 여러 곳에 건설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ADB가 요구한 도시의 지속적인 발전 프로젝트는 음용수 시스템, 공공교통체계, 도시의 쓰레기 처리 수단의 현대화를 포함한 것입니다. 이 요구의 실체는 기초적인 공공 서비스에 사용 요금을 부과하고 손실이 생기는 공공부문을 사영화한다는 것입니다. ADB와 함께 세계은행은 인도의 물과 관개부문에서 가장 큰 몫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은행은 분권화와 민관협력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는 논리로 물 사업이 정부에서 독립해서 독자적인 기관에 맡겨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이를 통해 수자원에 대한 시장 주도의 정책이 도입되었습니다. 케랄라에서도 ADB는 시 정부와 시영기업들, 그리고 지방자치 기관들에 시장원리에 입각해 음용수에 사용료를 부과하도록 설득했습니다. 최근까지도 케랄라에서 음용수는 대중에게 무료로 공급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물은 가격이 매겨진 상품이 되었고 지방자치 단체 담당으로 넘겨졌습니다. 그리고 ADB의 차관을 받아들인 시영기업들은 공공수도를 없애고 사용료를 부과하려 했습니다. 이에 대항하는 운동이 공공수도의 전면적인 폐지는 성공적으로 막았지만 이 추세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 정부는 그 외에도 ADB가 요구한 정책들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주 정부는 희망퇴직 제도를 모든 고용자들에게 확대했습니다. 그 결과 실업이 급속히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경제특구에 해당되는 수출촉진구역(export processing zone)을 통해 고용창출이 가능하다는 환상만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전기부문 개혁은 발전, 송전, 배전을 위한 독립회사들을 설립하게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한전 사영화도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가져올 저항을 예상했던 ADB는 '좋은 가버넌스'(Good governance)라는 명분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즉 비효율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부대신 권한을 하부 행정단위와 민간에게 넘기는 것이 더 민주적이고 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ADB 주도의 현대화 프로그램이 인간의 얼굴을 하고 수행된다는 인상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노동계급, 특히 중하 소득집단의 문제를 악화시켰을 뿐입니다. ADB가 후원하는 Poverty Impact Assessment(빈곤경감계획), 특히 Kudumbasree와 같은 소액대출 사업은 현실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부터 세계은행이 앞장서 유포시킨 '좋은 가버넌스'라는 개념은 아직까지도 한국 시민사회진영의 학자나 활동가들에게는 금과옥조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이름난 진보경제학자 한 분이 공공부문의 비효율성에 대해 사영화도 대안이 아니고 가버넌스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칼럼을 쓴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도대체 가버넌스 담론이 전 세계에서 신자유주의 확산을 위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모르는 것인지 알고도 그러는 것인지 해서요. 그나마도 신자유주의자들도 이젠 얘기하지 않는 유행이 지난 상품을 선전하는 것이 안쓰럽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이 사례들은 정부의 하급단위로 자금을 조달할 책임과 권한을 이양하는 정부의 분권화라는 과정이 세계은행의 분권화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결과 국내 정책에 대한 외부기관의 압력이 증대되고 정책 자체가 조건부 차관과 최소주의적 복지국가로 가는 분권화라는 세계은행의 의제에 맞추어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분권화는 세계은행의 것과는 다르다는 공산당의 말은 정치적 선전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사실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 인권의 신장이라는 명분으로 또 최근에는 자율성의 확대라는 미명 아래 국가가 국민들에게 당연히 제공해야 하는 기본적인 서비스들을 시장에 넘겨주는 일들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케랄라나 우리나라도 그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분권화가 빈곤경감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비판적 연구들이 이미 1990년대부터 제출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도나 한국의 소위 진보진영은 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분권화와 민관협력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신자유주의적 사영화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주 정부가 운영하는 생산 지향적 계획이 없기 때문에 케랄라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보내오는 막대한 송금은 산업과 농업 분야가 아니라 부동산 투기, 주식 시장에 주로 투자되고 있습니다. 최근의 케랄라 경제는 투기경제의 본산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높은 수준의 부패와 지대 추구 행위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주 정부 스스로도 주내의 저축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없습니다. 낮은 예대금리 비율로 저축이 역외로 유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ADB와 세계은행은 인도 중앙정부와 케랄라 주 정부가 부채를 늘릴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이 대출이 사용되는 곳은 주로 ADB가 케랄라 사회를 현대화한다는 명분으로 강요한 대규모의 인프라 건설 사업인데 이 사업권은 ADB에 기금을 낸 강대국의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결국 ADB와 세계은행의 차관은 이자까지 더해져서 선진국으로 역류됩니다. 이런 현상을 제임스 페트라스는 역원조(reverse aid)라고 불렀습니다. 차관과 연계된 기술지원 사업에 있어서도 수혜자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 극소수의 기금제공 국가들입니다. 호주의 재무부 장관은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ADB가 자금을 제공한 계약은 호주 기업들에 상당한 규모의 상업적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의 개발도상국에서 추가적인 사업을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케랄라 내부에서도 관료, 컨설턴트, 학자 등이 수혜집단으로 등장했습니다.

몇몇의 민주적 분파와 급진 좌파 집단들이 ADB는 케랄라를 떠나라는 캠페인(ADB-Quit Kerala Campaign)을 시작했지만 주 차원의 대안적 발전을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했고 주 정부, ADB, 중앙정부가 한통속임을 폭로하는 데도 실패했습니다. 이 운동은 더 이상의 부채는 케랄라의 경제적 상황을 위태롭게 하고 케랄라가 자랑해왔던 사회적 발전 모델을 역전시킬 것을 걱정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캠페인의 초기 단계에는 좌파도 ADB 차관에 공개적으로 반대했습니다. 좌익 민주전선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집권하면 차관을 상환하지 않을 거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2006년 5월 그들이 집권했을 때 그들은 ADB정책 패키지를 온전히 실행했습니다. 한미FTA를 두고 집권 여부에 따라 말을 바꿔온 한국의 여당과 야당들의 행태와 너무나 닮았습니다. 이번 대선이 끝나고 이 문제에 대해 또 뭐라고 말을 바꿀지 두고 봅시다.

결과적으로는 케랄라 주 정부가 ADB에 재정적으로 의존하면서 케랄라 모델의 남은 부분조차도 위협받고 있습니다. 케랄라 모델이 민중의 생활조건 향상에 경제성장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면 새로운 케랄라 모델은 경제성장이 된다고 해서 빈민의 생활조건이 반드시 향상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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