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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온 길 마음에 품고

[최창남의 '백두대간을 따라 걷다'] <26> 늘재~이화령/7.15~18

산행 스무하루 째. 목요일.

이우릿재에 올랐다. 산과 산이 만나고 고을과 고을이 만나고 길과 길이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 고개이건만 새벽의 고갯마루는 고요하기만 했다. 굽이치는 물줄기처럼 흐르던 산줄기 잠시 숨을 고르고 고을과 고을을 지나던 이들도 쉬어가던 고갯마루는 고요했다.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남겨져 있는 고갯마루는 옛 영화가 그저 꿈인 듯 적막했다.

산행 준비를 시작했다. 모두들 지친 탓인지 여느 날과 달리 산행 준비가 길었다. 산행 준비를 앞서 마치고 잠시 고갯길로 들어섰다. 깊어가는 여름 새벽 숲의 고요함이 몸으로 젖어드는 듯했다. 이른 시간 탓인지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도 없었다. 모든 것이 정지해 있는 듯했다. 깊은 정적 사이로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우릿재란 이화령(梨花嶺)의 옛 이름이다.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을 잇는 고개이다. 이화현(伊火峴)으로 불리던 옛날에는 통행이 적은 자그마한 고갯길이었다. 그러나 1925년 일제에 의해 신작로가 열리면서 중부와 영남을 잇는 큰 길이 되었다. 사람의 역사처럼 길의 역사도 바뀌었다. 중부와 영남을 잇는 길도 변화되었다.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하늘재가 고개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조령이 감당하던 것을 근대에 들어서는 이화령으로 이름이 바뀐 이우릿재가 감당하게 된 것이다. '조선세종실록'이나 '동국여지승람' 등의 기록에 의하면 분명하게 '이화현'(伊火峴) 표기되어 있던 이름이 '이화령'으로 불리게 된 것은 조선총독부에 의해서이다. 조선총독부는 1914~1918년에 걸쳐 조사하여 '근세 한국 오만분의일 지형도'를 제작하였다. 이 지형도에서부터 '이화현'(伊火峴)은 '이화령(梨花嶺)'으로 표기되었다. 우리말로 풀면 '배꽃고개'라는 아름답고 정겨운 이름이다. 그러나 원래 이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 것을 지금까지 그대로 답습하여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 고개가 이우릿재라는 옛 이름을 찾았다. 문경시가 2007년 '이화령'이라는 지명을 폐기하고 '이우릿재'라는 우리 고유의 이름을 되살린 것이다. 일제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름을 버리고 오랜 세월 우리 조상들이 걸어 넘으면 마음에 담아 부르던 이름을 찾은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 ▲©이호상

산행은 지난 밤 쓰러질 듯 내려온 희양산성터에서 시작하지 못하고 이화령에서 시작되었다. 희양산성터로 오르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탈진해 있는 나의 체력을 배려한 선택이었다. 고마운 일이나 마음 편치 않았다.

숲으로 들어갔다. 여름을 따라 깊어지고 있는 숲은 짙었고 물기 가득해 지나는 것만으로도 온 몸이 젖어들었다. 안개 가득하여 서리 내린 듯하였다. 지난 밤 숲이 토해 낸 수분들이다. 하늘에서 내려와 깊은 땅 속을 흐르고 흐르다가 나무뿌리를 만나고 줄기를 따라 오르다 나뭇잎에 이르러 다시 하늘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 지나던 고갯마루에만 깊은 사연 묻혀있는 것은 아니다.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 다시 하늘로 돌아가고 있는 작은 물방울 하나에도 하늘을 지나고 땅 속을 흐르며 묻어둔 가슴 깊은 이야기들이 있다. 깊은 사연을 지닌 것이 어디 물방울뿐이랴. 어린 풀포기 하나, 나뭇잎 하나, 나무 한그루에서 숲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이르기까지 깊은 사연 마음에 묻어 두지 않은 이 없다. 그런 마음들 때문이었을까. 지난 이틀 지나 온 산길과 달리 길은 부드러웠고 숲은 온화했다. 모든 것을 품어 안듯 속삭이듯 안온했다.

조봉(鳥峰, 673m)에 올랐다. 마치 조각된 듯 보이는 각종 기암괴석의 바위만물상들이 마치 새의 입부리처럼 뾰족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하여 조봉산이라는 이름을 얻은 산이다. 좁은 길을 걸어간다. 길 곁에 쭉쭉 뻗은 일본 잎깔나무 가지런하고 갈참나무 시원하다. 모든 것이 잘 어우러진 듯 조화롭고 평온하다. 마음 한 편에서 두려움 일게 하던 암릉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다. 숲의 일부가 되어 나무 한그루처럼 풀잎처럼 길을 걸었다. 조봉에서 30분 정도 걸었을까. 황학산(黃鶴山, 912.8m)으로 들어섰다. 참나무 가득한 산자락에는 풀 또한 가득하여 온통 푸르기만 했다. 좀 더 숲으로 걸어 들어가니 길을 가로질러 작은 물길 흐르고 있었다. 어젯밤 내린 비로 숨어있던 물길이 드러난 것이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는 말이 무색한 순간이었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물길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물길에 의해 대간 길이 끊어져 있었다.

"원래 대간 길은 저 위 쪽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사람들이 편하고 가까운 길을 쫓아 산허리로 다니다보니 마루금은 사라지고 다른 길이 생겼어요. 그러다보니 이렇게 물길을 건너는 일이 생겼네요."

'가깝고 편한 길을 찾으려면 어찌 대간 길을 걷겠는가.'

'참으로 부질없는 일이다. 그저 백두대간을 걸었다는 제 자랑에 마음 빼앗겨 산길을 찾는 이들이나 할 만한 짓이다. 어찌 길 아닌 길을 가며 길을 걸었다고 하겠는가. 어찌 하늘 길은 저 편에 있는데 제 멋대로 길을 만들어 하늘 길을 걸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이호상

참으로 어리석고 어리석은 일이다. 그저 제 욕심에 산길 다닐 뿐 마음 길 밟아보지 못한 이들이다. 제 탐심에 마음 닫히고 귀 막혀 산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이다.

한 대장은 대간 길을 찾겠다고 풀숲을 서성였다. 지나는 이들 없는 대간 길은 수풀 우거져 길 아니게 되었고 산을 지난 이들의 발걸음을 따라 산허리에 길이 새로 열린 것이다. 지나는 이들이 많은 탓인지 길은 가지런하고 함초롬히 닦여 있었다. 길이란 그런 것이다. 지나는 이들 없으면 있던 길도 수풀 우거져 없어지는 것이다. 지나는 이들 있으면 수풀 우거진 길 아닌 곳에도 길이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백두대간은 다르다. 백두대간은 사람이 지나며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니라 하늘이 만들어 놓은 하늘길이기 때문이다. 물줄기 그 길을 따라 나뉘고 산과 숲이 일어나는 생명길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낸 길이 아니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 경계에 있는 황학산은 백두대간의 중추를 이루고 있지만 바로 곁에 있는 큰 산 백화산(白華山, 1063.5m)에 가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산이다. 지나는 이들 많지 않은 탓이었을까. 산은 풍성한 숲을 키우고 있었다. 산마루에 펼쳐진 큰 억새밭과 참나무 숲길과 영혼을 자유롭게 할 만큼 아름답고 호젓한 산길은 마음을 내려놓을 만큼 지나는 이들을 따스하게 품어준다. 깊은 평온을 주는 산이다.

그 평온함에 지친 몸 위로 받으며 길을 걷다보니 백화산이었다. 남으로 뻗어 내려오던 백두대간이 이화령에서 잠시 몸 낮춘 후 속리산을 향해 치달리기 전에 솟구친 산이다. 백화산 정상은 산과 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말과 달리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저 작은 표지석 초라하게 있을 뿐이었다. 마주치는 사람 거의 없는 산행에서 제 이름 얌전하게 달고 있는 표지석이라도 만나니 반가웠다. 운이 좋은 날이었던지 사람도 만났다. 부부인 듯 연인인 듯 다정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나누니 허물없이 빵을 건넸다. 고마운 마음에 나누어 먹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그들은 산을 내려가고 우리는 평전치(平田峙)로 향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대원군의 박해를 피해 지친 몸을 숨겼다는 곳이다. 그 옛날에는 첩첩산중 천혜의 은신처였다. 평전치를 지나며 쉬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산행을 이어갔다. 고사리밭등이라고 부르는 사다리재를 지나고 곰틀재를 지나니 이만봉(二萬峰, 989m)이 지척이었다.

몸은 땀으로 절었다. 온 몸에서 쉰내가 풀풀 났다. 배낭이고 옷이고 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코를 대고 냄새를 맡자 썩은 내가 코를 찔렀다.

"이야~ 냄새 한 번 정말 대단 하구나 ~!"

모두들 제 냄새 맡으며 웃었다. 임진왜란 때 2만여 가구가 이 산골짜기로 피난을 왔기에 이만봉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봉우리에 오르니 오른 편으로 정상부의 바위지대가 떡시루를 거꾸로 엎어 놓은 것 같다 해서 이름 붙여진 시루봉(876.2m)이 보였다.

앞선 일행들 머물던 자리에 앉았다. 배낭을 내려놓고 쉬었다. 체력은 이미 고갈되어 있었다. 겨우 발걸음을 떼고 있을 뿐이었다. 바람도 야박한 날이었다.

바람이 부는가.

바람이 불어왔다. 잔물결 일듯 불어왔다. 지친 마음을 씻고 땀을 식히기에는 충분했다. 한 낮 오후의 열기는 뜨거웠으나 숲은 고요했다. 새 소리 들려왔다. 그 고요함 속에 잔잔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과 나무들, 여린 풀잎과 거대한 바위들, 파란 하늘과 흐르는 흰 구름들 그리고 새소리가 그림 같았다. 수 백 수 천 수 만 년 그렇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았다.

아름다웠다. 이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조화로웠다. 이 조화로움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그저 마음 깊은 곳에서 감동이 잔물결처럼 일었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 날 숲의 정경이 이토록 아름답고 조화로울 수 있다니...'
▲희양산 성터 ©김남균

걸음을 재촉했다. 배너미 평전을 지나 지난 밤 만났던 무너진 희양산성에 이르렀을 때 노을이 지고 있었다. 무너진 산성에 앉아 지난 밤 내려갔던 길을 바라보았다. 새로웠다. 지나지 않은 길 같았다.

이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산성이 많다. 신라, 백제, 고구려의 접경 지역이어서 삼국시대부터 잦은 충돌과 전투가 있어왔기 때문이고,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소백산맥을 관통하는 유일한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군사적 요충지이며 중요한 교통로였으니 산성을 많이 쌓았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지역에는 마고산성, 노고산성, 근품산성, 작성, 조령산성, 고모산성, 고부산성 그리고 희양산성 등이 있다. 희양산 주봉 뒤편 산기슭과 험한 계곡의 지형 사이에 있는 희양산성은 이미 오래 전 무너져 지금은 길이 145m, 높이 1~3m, 폭 4m 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북쪽은 큰 돌로 축성했고 원북 2리 계곡의 산허리에는 이중으로 외성을 쌓았다. 이 성의 축성에 대해서는 928년 견훤이 군사를 보내 축성했다고도 하고 신라의 경순왕이 축성했다고도 한다. 또한 신라가 망한 뒤 제 조국을 사랑하던 이들이 이 산성을 근거지로 항전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바람결에 전해온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음 스산했다. 한 때 수많은 사람들의 꿈을 담았던 성, 그 꿈을 지키기 위해 피 흘리며 싸웠던 산성은 이제 무너져 바람만 지나고 있을 뿐이었다. 낙엽 바람에 휘날렸다. 바람을 따라 무너진 성벽 저 편 숲 깊은 곳에 머물던 지난 세월들이 걸어 나오는 듯했다. 그 슬픔과 눈물들, 그 바람과 열망들, 그 소망과 열정들, 그 기쁨과 염원들, 그 절망과 주검들이 걸어 나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낙엽과 함께 구르는 듯 했다. 마음 아려왔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산길을 내려왔다. 지난 밤 내려왔던 길이었건만 길은 멀기만 했고 걸음은 느리기만 했다. 은티 산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밤 9시였다. 겨우 손만 씻고 둘러 앉아 식사를 하였다. 사람 좋은 산장 주인의 어머님께서 손수 만드셨다는 두부를 찬 삼아 식사를 하였다. 한 잔 받아 놓았던 소주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씻고 나오자 밤하늘 별 가득하여 너른 마당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어린 복슬 강아지가 잠이 안 오는지 마당을 가로지르며 재롱을 떨고 있었다. 마당 한 편에 지어 놓은 작은 방에 홀로 들어앉으니 마당으로 쏟아지던 별이 방으로 들어왔다. 불을 밝히지도 않았는데 방은 환해졌다. 마음도 환해졌다. 산행일기를 쓰겠다고 배를 깔고 누우니 이미 잠결이었다.

별 가득한 밤이었다.
지나 온 산길 마음에 가득한 밤이었다.
그저 모든 것이 그립기만 한 밤이었다.

최창남/글
이호상/사진
chamsu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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