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1일(현지시간) 교황청이 1929년 무솔리니로부터 비밀리에 자금을 넘겨받아 런던 뉴본드 스트리트에 있는 최고급 보석상점 불가리와 세인트제임스 스퀘어의 AC 투자은행 건물 등을 사들였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 지역이 런던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지역으로 꼽힌다며 교황청은 이 지역을 역외 회사를 이용해 매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당시 교황청이 무솔리니에게 받은 비자금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5억 파운드(한화 약 8442억 원)이 넘는다. 교황청은 이 돈으로 지난 2006년에는 세인트제임스 스퀘어 일대를 1500만 파운드(한화 약 250억 원)에 매입했다. 또 코벤트리 시(市)와 프랑스 파리, 스위스 일부에도 부동산 재산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지난 1월 16일 매주 한 번씩 열리는 일반 알현(general audience)에서 연설하고 있는 교황 베네딕토 16세 ⓒAP=연합뉴스 |
그로룩스 측은 교황청에 대한 언급 없이 주주 2명의 명의를 밝혔는데 두 사람 모두 저명한 가톨릭 은행가인 존 발레이 바클레이즈 최고경영자(CEO)와 로빈 허버트였다. 신문은 두 사람 모두에게 누구를 위해 일하는 것이냐고 물어봤으나 이들은 대답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예전 기록을 뒤져본 결과 이 회사의 실체가 드러났다. 영국 기업정보 사이트인 'Companies House'가 제공하는 파일을 살펴보면 브리티시 그로룩스는 1999년 재조직되면서 브리티시 그로룩스와 체리스모어라는 2개의 회사를 합병해 탄생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 회사의 주식을 추적해 보니 궁극적으로는 프로피마라는 스위스 기업으로 이어졌다.
신문은 영국 국립기록보관소 자료를 조사한 결과 프로피마는 바티칸 소유의 지주회사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또 런던과 파리 등의 부동산 실소유주는 교황청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케임브리지대 역사학자 존 폴라드는 자신의 저서에서 무솔리니의 비자금은 교황청의 재정 안정에 큰 기여를 했다며 "교황청은 경제적으로 안정됐으며 다시는 가난해지지 않게 됐다"고 말해 교황청이 무솔리니의 비자금을 받았다는 정황을 뒷받침했다.
<가디언>은 교황청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무솔리니 비자금의 존재를 비밀로 한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나, 1999년 재정을 관리할 회사를 설립한 이후에도 영국에서 매입한 부동산을 왜 비밀에 부쳤는지 납득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런던의 안토니오 멘니니(Antonio Mennini) 대주교에게 교황청이 영국에서 사들인 부동산을 왜 아직까지 비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지만 멘니니 대주교는 이에 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교황이 이 비자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에 대한 물음에도 답변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교황청 비자금, 조직적으로 관리했나
<가디언>은 2차 대전 말기의 경제전쟁성(Britain's Ministry of Economic Warfare) 자료를 통해 무솔리니로부터 받은 비자금을 관리했던 기록을 확인했다. 당시 교황의 재정 담당이었던 베르나르디노 노가라(Bernardino Nogara)가 이 자금을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가라는 당시 교황청의 재정을 관리해주는 로마의 변호사였다. 1931년 기록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사들인 유럽 전역의 자산을 관리하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룩셈부르크에 역외 회사를 설립했다. 이것이 현재의 브리티시 그로룩스다. 룩셈부르크는 1929년 당시 세계 최초의 조세 피난처였다. 신문은 2차 대전이 발발한 이후에 그로룩스가 미국과 스위스 내륙으로 옮겨지게 됐고 이후 1999년 영국에서 브리티시 그로룩스라는 주식회사를 세웠다고 보도했다.
한편 현재 무솔리니 자금으로 시작된 투자는 파울로 멘니니(Paolo Mennini)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교황청 내부에 있는 사도좌재산관리처(APSA, Amministrazione del Patrimonio della Sede Apostolica)에 소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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