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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판에선 시인이 일꾼을 이긴다"

다큐멘터리로 보는 오바마의 정치역정 <하> 힐러리와의 대결

지난달 29일 <EBS>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인종을 넘어 백악관을 꿈꾸다, 버락 오바마'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 공영방송 <PBS>가 제작한 이 다큐를 지상 중계한다. <편집자>

2008년 초 만해도 오바마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오바마의 최측근으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지낸 톰 대슐은 "첫 경선이 이뤄지는 아이오와주에서 꼭 이겨야 했습니다. 그래야 경선을 완주할 기회가 생기는 거였죠"라고 말했다.
<전편 보기>

<상> "연설은 좀 하는데 상원은 좀 몰라요" - 시카고와 하버드 시절
<중> "벨벳 장갑을 낀 강철 주먹" - 정치입문

<'오바마 스토리' 연재 다시보기>

<상> 오바마, 아버지의 이름으로 - 몸으로 역사를 가르쳐준 그들
<중> 흑인, 위대한 유산 영광스러운 짐 - 흑인으로 산다는 것
<하> 미국 정가에 느닷없이 등장한 흑진주 - '바위' 같은 아내 미셸

승리의 견인차가 된 2003년 연설

민주당의 경선 후보는 총 7명이나 됐다. 하지만 우승 후보는 늘 하나였다. 민주당의 스타 정치인 힐러리 클린턴. 힐러리가 승리하지 못할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조지메이슨대 로서 윌킨스 교수는 "자금도 넉넉하고, 당내 지지도도 높고, 클린턴의 아내니까요. 어떤 지역에선 성(姓)이 클린턴이란 것만으로 표가 나왔습니다"라고 말했다.
▲ 전통적인 민주당원과 백인 노동자들에게 클린턴에 대한 향수는 대단했다. 어떤 지역에선 성(姓)이 클린턴이란 것만으로 표가 나왔다. ⓒ로이터=뉴시스

힐러리는 경험을 내세웠다. 하지만 오바마 진영의 전략은 달랐다. 대변인 로버트 깁스는 "우리가 먼저 생각한 건 미국인들이 워싱턴 정계의 변화를 바란다는 거였어요. 유권자들은 다른 방식의 정치를 원했죠"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유권자들에게 내세울 이슈도 있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일관된 태도였다. 카산드라 버츠 보좌관은 "이라크 전에 대한 오바마의 생각은 늘 같았고, 전쟁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줬어요"라고 말했다.

"제가 무조건 전쟁에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오늘 이곳에 모인 여러분들을 봐도 애국심은 충분히 넘쳐흐르는 것 같습니다. 제가 반대하는 건 전쟁을 어리석게 한다는 것입니다."

일리노이주 의회 상원의원 시절이었던 2003년 10월 2일 시카고의 소규모 반전집회에서 한 이 연설은 오바마에게 엄청난 도움을 준다. 오바마의 '일관성'을 가장 강하게 보여준 것이다.

<오바마-약속에서 권력으로>의 저자 데이비드 멘델은 "오바마는 처음부터 이라크 공격에 반대했습니다. 반면에 힐러리 클린턴, 존 에드워즈 등 다른 후보들은 이라크 공격에 찬성하는 표를 던졌고요"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지난해 7월 23일 열린 민주당 경선 후보 토론회에서 "이라크 철군 방법은 공격 전에 세웠어야 했다"라며 "하지만 미국은 그렇게 하지 못한 책임은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져야 한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를 바라보는 힐러리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 시민운동식 선거운동을 펼친 오바마 운동원들 ⓒ오바마 공식 홈페이지

또 다시 가동된 '청년-진보-반전' 연합전선

오바마의 아이오와 경선 전략은 반전세력과 청년층, 진보 진영의 연합세력을 구축한다는 것이었다. 버츠 보좌관은 "오바마의 생각은 시민운동 단체들과 연계해 선거를 치르는 것이었어요. 공동체 조직가 시절의 경험에서 나온 전략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논쟁>의 저자 매트 바이는 "현장에서 직접 뛴 오바마의 운동원들은 아주 능률적이었고 힐러리 측 운동원들을 능가했어요. 힐러리 진영은 운동원들의 재능을 잘 활용하지 못했죠. 오바마는 아주 전문적이고 잘 짜인 선거운동을 지휘했는데, 그건 다시 말해 그를 꺾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죠"라고 말했다.

이라크전에 대한 오바마의 일관된 태도와 시민운동식 선거운동, 변화에 대한 열망은 많은 청중들을 불러 모았다. 오바마는 당시 아이오와 유세에서 "몇 명이 일어섰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일어섰고, 덕분에 수 천 명이 일어섰고, 수 백만 명이 일어섰다. 아이오와 주민 여러분도 일어서 달라"고 외쳤다. 그 뒤에는 아내 미셸과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매트 바이는 "오바마의 아이오와 선거 운동은 대단했어요. 4년마다 뭔가가 등장하는 게 선거판이지만 오바마는 그중에서도 특별했죠. 유세 때마다 모여드는 수 천 명의 청중만 봐도 그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아이오와 승리 후 청중들을 향해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승리해 역사를 바꾸고, 나아가 미국과 세계의 상처를 치유하는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오바마는 새로운 걸 줬어요. 영감을 줬습니다. 그러나 힐러리는 기본적으로 일꾼이죠. 법안을 만들고 통과시키는 방법을 잘 압니다. 반면 오바마는 시인이에요. 유권자들은, 특히 청년층은 일꾼보다 시인을 좋아하죠."

"세상에, 저러다가 진짜 될지도 몰라"

정치컨설턴트인 매트 다우드의 분석처럼 오바마는 아이오와에서 놀라운 일을 해냈다. 주민 대다수가 백인인 지역에서 흑인이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일부러 흑인들에게 지지를 호소하지 않았다.

"이런 선입견이 있습니다. 흑인 정치인은 흑인들한테나 표를 얻지 그 이상은 못한다는 거죠. 아이오와는 리트머스 시험지였습니다. 오바마가 흑인이 아닌 유권자들한테서 표를 얻을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는 곳이었죠." (톰 대슐)
▲ 아이오와 경선 이틀 후인 1월 5일 뉴햄프셔의 한 체육관 앞에 오바마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모인 주민들 ⓒ로이터=뉴시스

"백인들의 주에서 백인의 표를 얻은 흑인 후보라면 비범한 사람이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흑인 정치인이 아닌 거죠." (조지메이슨대 로서 윌킨스 교수)

아이오와 경선 당일까지도 오바마 진영은 힐러리를 이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투표는 시작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바마의 보좌진들은 각 선거구에서 올라오는 보고에 만세를 불렀다. 투표장마다 사람들이 줄을 섰다는 것이다.

댄 발츠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아이오와 경선에 23만9000명이 몰려올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23만900명은 몰려왔고 그것만으로도 모든 예상은 깨졌어요"라고 말한다.

힐러리는 3위에 그쳤다. 백인이 90%인 지역에서 거둔 승리는 오바마를 불안하게 보던 다른 지역 유권자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보냈다.

로서 월킨스 교수는 "다들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어요. 세상에 진짜 될지도 몰라. 꿈은 현실이 됐고, 흑인 공동체는 짜릿한 승리의 기쁨에 넘쳐 흘렀습니다"라고 그날 밤을 기억한다.

드디어 터진 '라이트 핵폭탄'

그러나 20여개 주의 경선이 몰려 있는 슈퍼화요일이 지나도 민주당의 대선 후보는 결정되지 않았고,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선 분위기는 결국 혼탁해졌다.

그러던 와중에 지뢰가 터졌다.

"'신이시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가 아니라 '신이시여, 미국을 저주하소서(God Damn America)'입니다. 성서에도 나옵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국민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미국을, 신이시여 저주하소서!"

오마바가 다니던 교회의 담임목사 제레미 라이트가 뱉어 낸 말은 순식간에 미국 전역에 방송됐다.
▲ 제레미 라이트 목사 ⓒ로이터=뉴시스

앤 콘블럿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그 테이프는 힐러리 진영이 찾아낸 게 아니었습니다. 라이트 목사의 존재와 성향은 이미 알려져 있었어요. 오바마의 자서전에도 이미 언급된 사람이죠. 손만 뻗으면 딸 수 있는 과일인데도 힐러리 진영은 찾지 못한 겁니다. '담당자가 누구야? 왜 1년 전에 테이프를 찾지 못한 거야?'하고 자책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죠."

충격에 빠진 오바마는 즉각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리고 "그 연설은 정말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그의 발언은 저의 생각, 제 존재 자체와 대치되는 것이다"라며 라이트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흑인 민권운동가로 유명한 제시 잭슨 목사는 "두 사람 모두에게 가슴 아픈 결별이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이들이니까요. 오바마도 안타까웠을 겁니다"라고 회고했다.

'부통령 후보 바이든', 오바마의 '구식' 사고방식

정치적인 타격도 상당했다. 언론은 노동자와 백인들 사이에서 오바마에 대한 지지가 줄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힐러리는 맹렬히 추격해 왔고, 경선은 여전히 치열했다. 대슐은 "클린턴 부부는 강력한 상대였어요. 특히 백인 블루칼라 계층의 지지는 당해낼 사람이 없었죠"라고 말했다.

이로써 백인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는 건 오바마의 숙제가 된다. <이기는 법>을 쓴 마크 핼퍼린은 "백인 노동자 계층은 오바마의 최대 약점 중 하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오바마가 믿을 만한지, 자신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있는지 불안해했죠. 풍족하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나 신뢰받는 정치인이 됐다고 자부하던 오바마에게 그건 큰 충격이었습니다. 대선 승리를 위해선 백인 노동자 계층의 지지도 꼭 필요했고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6월이 되자 힐러리는 결국 패배를 인정했다. 그리고 오바마를 돕기 시작했다.
▲ 지난 10월 20일 오바마의 플로리다 유세를 돕기 위해 나온 힐러리 ⓒ로이터=뉴시스

그 다음은 러닝메이트를 선택해야 할 차례였다. 오바마는 노동자 계층 출신으로 35년간 외교위원회에서 경험을 쌓아 온 65세 상원의원 조지프 바이든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피터 베이커 <뉴욕타임스> 기자의 말대로, 미국 정계의 세대교체를 상징하던 오바마는 상원의 거물이자 흰 머리의 60대 상원의원을 선택한 것이다. 라이언 리자 <뉴요커>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오바마의 47년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결정이었죠. 오바마는 도박을 하지 않았어요. 시카고의 공동체 조직가 시절, 하버드 로스쿨 시절, 상원의원 시절에도 그랬죠. 그런 면에서 보면 오바마는 상당히 신중하고 구식인데다가 보수적인 사람입니다."
▲ 9월 27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공동 유세를 하고 있는 오바마와 바이든 ⓒ로이터=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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