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연일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가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국가 부도 상황에 처한 아이슬란드와 헝가리, 벨로루시, 파키스탄 등에 구제 금융을 제공할 계획이다. 또한 EU의 주요국들은 은행 예금에 대한 정부보증 한도 확대 등 신용경색 위기에 공동으로 대처하기로 하였으며, 브릭스(BRICs)로 대변되는 거대 신흥시장과 아시아 각국의 주식 시장도 연일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2000년 이후 매년 10 ~12%에 달했던 경제성장률이 금년 3/4분기에는 한 자릿수(9.0%)로 내려앉았고 주식 가격과 부동산 가격도 금년 하반기부터 대세 하락기에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중국인들의 소비심리는 크게 위축되었고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2008년 9월, 월별 소비자신뢰지수(CCI)는 200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중국 경제성장의 둔화는 중국 기업들로 하여금 공급 측면과 수요 측면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먼저 공급 측면에서 한계 상황에 몰린 중국 기업들의 시장 퇴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북미지역에 대한 수출 물량이 많았던 지역의 중소 제조업체들의 유동성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광둥성 주강(珠江)삼각주 지역에 집중적으로 위치한 전기, 전자, 컴퓨터, 완구, 신발 업체들은 수출 물량의 감소와 위엔화의 평가 절상이라는 이중고를 겪으면서, 전체 기업의 약 10%가 이미 문을 닫았거나 부도 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게 되자 가공 무역과 수출 증대를 기반으로 한 경제성장 모델이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중국 제조업의 유동성 부족은 주강삼각주 중소기업으로부터 중국 전역의 자동차, 기계, 철강 산업의 대기업으로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아울러 외부환경 변화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서비스업도 중국인들의 소비심리 위축으로 인해 전년과 같은 고도성장을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수요 측면에서 대미(對美) 수출 감소와 중국 내수시장의 침체가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 하반기 수출 감소가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비롯되었다면 내수시장의 침체는 부동산 시장과 주식 시장의 동반 부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04년 이후 꾸준히 상승하였던 중국 연해지역 대도시 부동산 가격은 2007년 대비 20~30%씩 급락했다. 특히 주강삼각주의 대표 도시인 션전(深圳)의 상업용 주택 거래 가격과 거래량은 전년 대비 각각 28%, 68%씩 폭락, 중국 부동산 가격 하락의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중국 주식 시장은 부동산 시장보다 더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상하이 주식시장의 종합주가지수는 2007년 10월 대비 약 70% 폭락했고 28조 위엔에 달했던 시가총액도 13조 위엔으로 주저앉았다. 무엇보다도 향후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8~9%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종합주가지수가 2007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반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중국 경제성장의 둔화는 결국 중국 산업과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의 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공급 측면의 변화에서 살펴보았듯이, 상대적인 저(低)성장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계 기업들의 퇴출이 상시적으로 발생할 것이며, 동시에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중국 기업들의 경쟁우위 요인은 결과적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중국 기업들은 수출 부진과 소비심리가 위축된 내수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며, 이러한 경쟁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아래 세 가지 측면에 대한 고려와 성찰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첫째, 기업의 내부 역량을 중시하는 자원준거관점(Resource Based View)의 확산이다. 자원준거관점에서 기업이란 다양한 자원과 역량의 결집체로서 특정 기업의 자원과 역량은 독특하며, 자유로운 이동과 거래에 제약을 받는다고 간주한다. 즉 앞으로 중국 기업들은 해외시장과 중국 내수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수익성이 좋은 매력적인 산업에 진입, 중국 정부의 직간접적인 지원 하에 진입장벽을 높이 쌓는데 주력하기보다는 자체 브랜드와 원천기술 확보를 통한 핵심역량의 발굴과 강화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다. 상하이자동차가 2006년 10월 독자적으로 개발한 중형 세단 '로위(Roewe, 荣威)'를 출시하고 국내외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는 것이나, 화웨이(华为技术有限公司)가 통신장비제조와 통신기술 관련 특허를 3만 3천 여개나 보유하고 있는 점은 중국에서 자원준거관점의 확산과 관련이 깊다.
둘째, 기업간 이동장벽(Mobility barrier)의 형성이다. 이동장벽이란 산업 내부에서 유사한 경영전략을 구사하는 기업군(전략집단)으로부터 상이한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군으로 이동하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의미한다. 향후 중국 경제성장의 둔화는 각 기업들이 추구하는 목표 시장과 경영전략의 차이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 것이다. 치루이자동차(奇瑞气车)가 3~5만 위엔대의 독자 브랜드 QQ를 출시하여 성공을 거두면서, 경형·소형 승용차 시장의 최대 강자로 부상한 것이나, 거란스(格蘭仕)가 1997년 이후 10여년간 마이크로웨이브 오븐 생산과 판매에서 중국 및 세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점은 시장 세분화와 원가우위(가격), 제품 차별화(품질)에서 다른 기업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이동장벽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운영의 효율성(Operational effectiveness)을 뛰어넘는 종합적인 경쟁우위 요인, 즉 전략적 포지셔닝(Strategic positioning)의 창출이다. 운영의 효율성이란 비슷한 기업 활동을 다른 기업들보다 더 잘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벤치마킹을 통한 모방이 쉽고 확산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경쟁의 수렴' 현상이 나타나고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전략적 포지셔닝은 특정 기업이 경쟁 기업들과 원천적으로 다른 활동을 수행하거나 같은 활동을 무엇인가 차별화된 방법으로 수행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경쟁우위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면 운영의 효율성을 바탕으로 양산 능력 향상에 크게 의존하였던 제조업체들은 점점 어려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갖지 못한 채, 외부환경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릴 것이기 때문이다. 레노버(Lenovo)가 IBM의 PC 사업부를 인수한 뒤, PC 제조와 판매, 부품 조달에 있어서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을 구축한 것이나 바오강(宝钢)이 철강 제품의 양산뿐만 아니라 고부가가치, 고품질 제품 생산 및 환경보호와 에너지 절감을 경영전략의 핵심 과제로 다루는 것은 자신만의 고유한 포지셔닝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과 관련이 깊다.
최근 중국 사회 모든 영역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可持续发展) 모델에 관한 연구와 논의가 매우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중국도 이제는 현 세대의 경제적 성과를 위해 후손들의 중장기적인 생존 기반을 더 이상 훼손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중국 기업들도 이미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던 전략에서 벗어나 중장기적인 성장, 다시 말해, 지속 가능한 경쟁우위 기반 마련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번 미국발 금융위기는 중국 기업들로 하여금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더욱 공격적으로 탐색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