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미소 양강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놓고 경쟁을 했다면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러시아와 미국은 사상이나 이념 대결보다는 경제와 기술력을 앞세운 경쟁구도로 판이 새롭게 짜이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중남미 각국 지도자들이 좌우라는 이념에 대한 개념보다는 자국의 경제 발전과 국가방위 등 실익을 위한 선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고 차베스로 대표되는 중남미 지역의 좌파 바람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급속도로 약화시켰고, 그 틈새를 중국과 인도가 파고들었다. 자원과 식량 확보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우면서다.
그런데 자원과 식량을 무조건 싹쓸이 해가던 중국이 돌연 태도를 바꾸어 각종 트집잡기에 나서기 시작했다. 곡물과 원자재 가격을 깎기 위해 중국인 특유의 상술을 발휘한 것이다. 동시에 지나친 통상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중국산 섬유류와 생필품 등을 제한 없이 수입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중남미 각국의 제조업체들은 홍수처럼 밀려드는 중국산 저가제품에 휘청 거리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중국산 제품 수입규제에 나섰지만 정치권은 거대한 시장인 중국을 포기할 수 없어 전전긍긍하는 모습마저 보였다.
중남미 각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중국의 압력에 '울며 겨자먹기'로 대응을 하고 있는 사이 러시아는 조건 없는 경협과 각종 무기 판매, 기술이전 등 실익을 앞세우고 접근을 시작한다.
중남미 지역에서 중국 열기가 조금씩 식어가는 사이 러시아가 대대적인 물량 공세를 펴며 영향력 확대에 나선 것이다.
러시아가 중남미지역에서 무서운 속도로 세력을 넓힐 수 있게 된 데는 이 지역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활동과 무관치가 않다.
러시아는 중남미 지역을 휩쓴 좌파 바람을 타고 각국을 상대로 곡물과 육류 수입량을 꾸준히 늘려 나가고 있으며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협력, 우주개발 프로그램, 각종 첨단 군사무기 판매와 기술 이전을 약속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우선 전략적 동맹국인 베네수엘라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에너지와 금융 등 경제협력을 담보로 최신예 전투기에서 장갑차, 잠수함, 공격용 헬기, 군사용 레이더, 개인용 자동화기까지 각종 첨단군사무기들을 아무런 제한 없이 공급해주고 있다.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에 이들 무기들을 판매만 하는 게 아니라 현지생산 등 기술이전까지 서두르고 있는 상황이다.
베네수엘라의 뒤를 이어 볼리비아와 에콰도르가 운송용 트럭과 감시용 헬기 구입을 결정했고 광산개발권 협력을 맺기도 했다.
브라질과는 우주개발 협력을 맺고 이 분야에 상호협력을 꾸준히 강화하고 있으며 브라질 각 지역의 상업분야 투자액을 매년 늘려나가고 있다. 최근 러시아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지역에 오는 2010년까지 100억 달러 규모의 상호 상업발전을 위한 투자협정을 맺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칠레와는 상호 정치와 경제발전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고 금융위기에 대한 대처, 어업, 농업,광산 공동개발, 교육, 과학기술 교환, 에너지, 군사학 교환 협정을 맺는 등 양국간 긴밀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우루과이와는 상호 군사교류 협정을 채결하고 군사무기교역과 기술 이전 등 실질적인 협력방안을 연구중에 있다.
러시아 정부는 페루와도 군사협력 협정을 채결하고 이른 시일 안에 각종 기술지원을 통한 상품의 현지조립 생산체제를 가동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친미파 정부로 분류되는 콜롬비아 역시 러시아산 군사장비와 공격용 헬기구입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콜롬비아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러시아산 장갑차와 수호이 전투기 구입에도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파라과이와는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해 상호 외교관 교환을 약속하고 파라과이산 쇠고기를 비롯한 농산물 수입은 물론 본격적인 경제협력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러시아는 아르헨티나와 군사적인 협력관계보다는 경제 교역을 우선시하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아르헨티나 경제부의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는 브라질에 뒤이어 아르헨티나를 최고의 무역교역국 가운데 하나로 선택한 것으로 확인됐다. 러시아가 중국을 의식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시장공략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천연가스와 석유 가격의 상승으로 경제 대국으로 재등장한 러시아가 중남미 지역 영향력 강화 움직임이 어느 선까지 미칠지가 관심사다. 또 이 과정에서 세계의 경찰국임을 자처하는 미국이 자신들의 뒷마당을 순순히 포기하게 될지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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