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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손실을 막는 게 시급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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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전략적 손실을 막는 게 시급한 때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8> 아셈 정상회의 기회 살려야

북측의 요구로 지난 2일 판문점에서 군사실무회담이 열렸는데, 그걸 앞두고 우리 정부 일각에서 상당히 희망적인 관측이나 분석을 했다고 들었어요. '거봐라, 우리가 원칙을 지키니까 드디어 먼저 저렇게 회담을 하자고 하지 않느냐'는 식이었다는 거죠.

남북간에 군사회담을 한다는 건 둘 중의 하나예요. 하나는 군사적 긴장완화를 하기 위한 접촉. 또 하나는 군사적으로 긴장 높이기 위한 수순으로 경고성 대남 발언을 하기 위해서 나오는 거.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절대로 전자일 수가 없는데 그런 판단을 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참 야...남북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희망적 관측으로 일관하다 보면 문제가 더 복잡해지겠다는 걱정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예상과 달리 그 회담에서 북쪽은 굉장히 강한 톤으로 전단(삐라) 살포 문제를 제기하면서, 거기에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못하게 막지 않으면 개성공단에 영향이 갈 수도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죠.

그래서 그 뒤에 정부가 조치를 좀 취했죠. 그러나 전단을 살포하는 민간단체들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민간단체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식으로 반발하니까, 통일부가 '말해 봤는데 그 사람들이 말을 안 듣더라. 여기까지 밖에 못 하겠다'는 식으로 설명했단 말이죠. 그것도 성의 있는 태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그냥 한 번 지나가는 말로 툭 '하지 마!' 했다가 '왜 그래?' 하니까 '그래, 알았어. 안 되겠네.' 이렇게 비춰졌죠.

차라리 정부가 아무 소리 않고, 그 문제와 관련해서 민간단체들과 협의를 계속해 나가겠다는 식으로 여유를 뒀다면 북쪽이 보름도 안돼서 16일 날 노동신문에서 그렇게 극력 반발하는 모양새를 취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물론 그 사이에 탈북자 단체, 또 북한 인권 문제를 그야말로 강하게 제기하는 단체들과 깊은 연관이 있는 수전 솔티 미국 디펜스포럼 회장인가? 그 사람한테 서울평화상을 준 것도 북을 굉장히 자극했을 거예요.

수전 솔티는 황장엽 선생을 미국에 초청해서 의회 증언을 시키겠다고 했던 사람인데, 지난 정부 10년 동안엔 그게 잘 안됐죠. 그런데 정권 바뀌자마자 그 수전 솔티를 불러다가 상을 주는 거...물론 서울평화상에서 한 거지만 북쪽으로서는 정부가 그걸 허용 내지 인정, 또는 협조했기 때문에 되는 거 아니냐고 볼 수 있죠. 더구나 수전 솔티가 전단 뿌리는 현장에까지 가서 격려하는 게 굉장히 자극이 됐을 겁니다.

그걸 보면서 이건 자기들을 굉장히 무시 내지는 자극하는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특히 전단 내용이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등과 관련이 있었으면 더 그랬을 거라고 봅니다. 탈북자들은 자기네들도 그런 전단을 보고 (탈북을) 결심했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렇게 될 정도의 내용이라면 현재 김정일 위원장이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 당국으로서는 더욱 좌시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16일에 그런 걸 중단 안 시키면 남북관계를 전면 차단하겠다고 나오지 않았나...물론 전단 얘기 말고도 '작전계획 5029' 얘기도 했지요. 그것도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을 계기로 해서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그럴 경우에 미군을 앞세워서 군사적으로 북으로 올라가는 내용이란 게 밝혀지면서 북 당국으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 수전 솔티 디펜스포럼 회장과 탈북자단체들이 지난 10일 인천 대무의도 해상에서 대북 전단이 담긴 풍선을 날리고 있다. 북한은 2일 전단 살포에 대해 강력 비난하며 이같은 행위가 계속된다면 개성공단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합뉴스

또 11월 초엔가 사단 규모의 상륙작전이 예정되어 있어요. 예년에는 미 해병 1개 중대가 포함된 연대 규모의 상륙훈련을 했는데, 금년에는 미 해병 1개 연대하고 우리 해병 2개 연대가 합동으로 사단 규모의 상륙훈련을 한다고 보도된 적 있습니다. 북으로서는 이게 작계 5029의 실질적인 시작이 아니냐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고, 이런 것들이 북을 자극해서 노동신문 논평원 글로 표현됐다고 봅니다.

그 글에 대해서 통일부 대변인이 '당국의 입장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는데, 물론 당국의 입장은 아니지만, 당국 입장을 예고하는 시그널입니다. 노동신문은 조선노동당 기관지라서 누가 기고 형식으로 쓸 수 있는 신문이 아닙니다. 우리처럼 독자 투고란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당의 방침을 인민들에게 전달하고 바깥세상에 알리는 보도 매체입니다. 요컨대 노동신문 논평원의 글은 북한의 당과 정부의 입장이라고 봐야 합니다.

통일부에서 아직은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해석함으로써 북쪽이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차원이라면 말이 되지만, '당국의 입장이 아니니까 별거 아니야. 그래서 우리는 특별히 새로운 조치를 취할 것이 없어' 하는 식으로 북쪽에 읽혀진다면 그 다음단계로 나가는 것을 촉진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죠.

"노동신문 논평원 글이 무슨 독자투고입니까?"

그런데 그게 나오고 나서 그 다음날이죠, 17일에 통일부 대변인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과 관련해서 공동조사를 굳이 요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식의 얘기를 했어요. 최소한 재발 방지 약속은 받아 내야 되고, 안전보장 조치는 좀 더 강화돼야하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얘기했죠. 금강산 관광이 잘 하면 재개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줬습니다.

어떻게 보면 북쪽이 그런 식으로 세게 나온 다음날 통일부가 금강산 쪽에서 출로를 여는 조치를 취하는 모양새가 됐는데, 전반적으로 남북관계를 잘 관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는 걸로 보고,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당초에 공동조사라는 건 받아들여질 수 없는 요구였어요. 남북이 민족 내부적으로는 특수관계이긴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별개의 국가입니다. 근데 공동조사는 사실 형사주권 문제예요. 북측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공동조사를 하자는 것은 엄격한 법 논리로 말하면 형사주권의 제한을 요구하는 겁니다. 북쪽에.

그리고 이쪽에서 모의실험 같은 걸 해서 "이 방향에서 쏘았다. 몇 백미터 거리에서, 몇 발을 쏘았다" 등등을 말해버렸기 때문에 북으로서는 공동조사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될 구실이 생겨버렸어요. '너희들이 일방적으로 다 짜 맞춰 놓고 우리보고 시인하라는 거냐?' 이렇게 나올 수 있죠. 그러니까 이쪽에서 자가당착적 조치를 한 겁니다. 정부에 그걸 조율할 정도의 사령탑이 없었나...

그런데 지난 16일에 평소 아는 분이 사장으로 계시는 '나인 jit'라는 회사가 개성공단 내 공장 준공식을 한다고 해서 축사를 하러 갔었습니다. 간 김에 개성시내 관광도 잠시 했는데, 그때 그쪽 사람들이 내가 오는 걸 알고 여러 가지 얘기를 좀 듣고, 자기네들도 얘기하려고 준비를 해 왔더라고. 개성에 가니까 북쪽 사람들이 날 보자마자 "오늘 개성 오시고 30일에는 또 평양에 가시더구만이요 잉" 하면서 말을 걸어오더라구요. 뭔가 나한테서 듣고 싶은 말이 있고, 또 자기들도 할 말도 좀 있어서 기다렸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했죠.

그래서 내가 말했죠. "그러나 저러나 당신네 말이야, 경위야 어찌되었건 금강산에서 사람을 쏴 죽여 놓고 우리 보고 되레 사과하라고 하고 말이야, 또 남쪽에서 만나자고 하는 모양이던데 그렇게 대꾸도 없고. 왜 그래요?" 그러니까 그쪽 사람들이 "아니 금강산이야 우리가 막았습니까? 남쪽에서 막았죠. 아, 남쪽에서 풀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얘기하더라고요. 그게 그쪽 사람들의 원래 어법이기는 해요. 항상 자기들은 아무 잘못도 없고 할 일 다 했는데 상대방이 문제를 일으켰고, 자기들은 피해자라는 식으로 하는 어법이 있죠. 특히 그 일선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더 그래요. 훈련이 잘 돼있어.

근데 내 느낌이...나만 그런 걸 느낀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다 그런 얘기를 해요, 이구동성으로. "남쪽에서 막았지 우리가 막았습니까?"라는 말에서 오는 느낌이 금강산 관광 개시 10주년(11월 18일)을 계기로 다시 열려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러려면 관광 중단 조치부터 풀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식의 느낌으로 다가오더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돌아왔는데 17일에 통일부에서 공동조사 조건을 푸는 식의 얘기를 하니까 '아, 이거 내부적으로 물밑 대화가 좀 됐나' 하는 생각도 들고..물론 난 밖에 있으니까 내막은 잘 모르지만.

"시민단체를 그렇게 존중하는데 촛불시위는 왜 막나"

그러나 형식은 아마 이렇게 해야 할 겁니다. 정부가 관광 중단 조치를 풀고, 현대아산은 명승지개발지도총국하고 조율을 해서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고, 신변안전 보장을 좀 더 철저하게 하는 조치를 취하는 거. 예를 들면 2004년 1월 29일 체결된 금강산 관광지구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를 구체적으로 보완하는 조치를 취해야겠죠.

그러나 일이 그쯤 되려면 사실은 우리 국민들의 정서를 생각해서 명승지개발지도총국보다 조금 높은 당국 명의로, 가령 아태(아태평화위원회) 대변인 이름으로 한다든지 해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에 대해서 심히 유감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 노력하자' 정도의 멘트가 나와야 할 겁니다. 남북간에 유감이란 말은 실질적으로 사과의 뜻으로 그동안 통용돼 왔었어요. 그래야 우리 국민들의 정서도 가라앉을 테니까.

벌써 100일이 넘었는데...물론 유가족들한테는 원통하고, 그 일에 걸린 사람들한테도 어떻게 보면 북한이 괘씸한 일인데, 이쪽의 잘못도 없잖아 있단 말예요. 현대의 잘못도 있죠. 철저하게 사전교육을 안 한 거. 그리고 아무리 새벽에 일출을 보고 싶어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야 하는데 별 생각 없이 넘어간 건 본인의 잘못도 있는데...북쪽이 규범대로 해버린 것도 책임이라기보다는 도리상 그럴 수 없던 측면이 있어요. 그러니 유감 표명하고 재발방지나 신변안전 보장을 강화하는 식으로 해서 빨리 해결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정부가 빨리 관광 중단을 풀어야 해요. 11월 18일에 임박해서 하지 말고, 10월 말이 되기 전에 풀어줘야 됩니다.

그렇게 하고, 동시에 아까 그 전단 문제도 득실을 좀 따져봐야 돼요. 민간단체가 하는 일을 막을 수 없다는 식으로 면피성 발언만 하면 안 돼요. 북한을 자극하는 전단을 뿌리는 걸 민주국가란 이유만으로 방치하면 남북관계가 받을 피해가 커져요. 그것 때문에 관계가 더 경색되면 어떻게 할 겁니까? 북핵 문제는 풀려나가고 북미관계는 개선되는데 남북관계는 뒤로 쳐질 경우에 받게 되는 국가적 불이익, 또는 국민적 불만을 생각한다면 정부가 좀 나서야죠.

정책이란 건 항상 득실을 따져서 득이 좀 더 크면 그쪽으로 가는 겁니다. 그게 디시전 메이킹(decision-making)이에요. 어느 쪽이 유리하고 좀 더 좋은 쪽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는 조치냐를 결정하는 게 디시전 메이킹입니다. 민주국가인데 어떻게 막느냐는 식으로 한다면...그렇다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촛불시위는 왜 막습니까? 그러니까 이현령비현령으로 하면 안 된단 말이야. 정부의 정책에 비판적인 건 막으면서, 전단 살포는 방치하니까, 북쪽에서는 이 정부의 뜻이 그쪽이란 식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죠.

그건 북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가는 게 아닙니다. 그런 걸 잘 관리해서 우리가 전략적 손실을 입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외교에서는 전략적 이득만을 챙길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익은 엄두도 못 내고 전략적 손실을 예방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할 경우가 많죠. 남북관계에서도 사실 전략적 이익을 챙기기보다 전략적 손실을 막기 위해서 조치를 해야 할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 다음에, '작계 5029' 문제는 정부가 부인을 하진 못하겠지만 더 이상 논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정도의...그러니까 '개념계획을 작전계획으로 바꿀 계획이 없다, 가까운 시일에 그럴 계획이 없다'는 식으로 분명히 얘기 해주고, 그리고 이어서 남북관계가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길 바라지 않는다는 정도의 멘트를 해줘야죠.
▲ 지난 12일 개성공단의 모습.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남북관계의 냉각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개성공단이 최근의 험한 파도를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연합뉴스

"통일 문제는 종부세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해서 금강산 문제하고 전단 문제 풀리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해 얘기도 해야 합니다. 말장난 하지 말아야 해요. 두 선언을 부정한 적이 없다는 식으로 얘기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겁니다. 존중한다는 얘기를 분명히 하는 게 여러 가지로 전략적 손실을 예방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7.4공동성명 같은 옛날 문서랑 섞지 말라는 겁니다. 옛날 문서에 들어간 내용 중에 지금 남북이 다시 그것들을 끄집어내서 협의해도, 존중하고 이행할 만한 내용은 이미 6.15와 10.4선언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이전 정부가 했다고 해서 이렇게 부정하면, 이명박 정부도 앞으로 정상회담을 할 수 있고 실제로 할 텐데, 그때 합의한 걸 다음 정부가 부정해버리면 밖에서 뭐라고 할 겁니까? 또 남북관계도 객관적으로 보자면 국가 대 국가의 관계인데, 정권 바뀌었다고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 걸 제3국이 보면 한국의 외교적 신인도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저 사람들은 자기 맘에 안 들면 전 정부 걸 부정하는 구나, 라고 생각할 거 아녜요.

그리고 전 정부한테 정치적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10.4선언을 계승할 수 없다고 하는데...이 정부건 전 정부건, 정부와 여당은 기본적으로 정치집단이에요. 정치집단이 하는 일에는 매사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겁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정치적 의도 없는 일만 할 겁니까? 경합관계에 있는 정치집단이 해놓은 거지만, 그걸 잘 이어받아서 발전시키면 자기 정치집단의 공으로 될 수 있는 겁니다. 그걸 빨리 빨리 챙겨야죠. 남북관계가 잘 되면 이명박 정부의 공이 되지 어떻게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의 공이 됩니까?

김대중 정부도 1989년 노태우 정부 때 만든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그리고 김영삼 정부 때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그대로 이어 받았습니다. 그렇게 통일문제 만큼은 전 정부 걸 계승해서 더 좋은 방향으로 풀어나가는 게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거지...이건 뭐 종부세 문제하고는 다릅니다.

그러니까 아셈(ASEM) 정상회의(24~25. 베이징) 같은 걸 계기로 이명박 대통령이 6.15와 10.4선언에 대해 확실한 입장을 밝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전 정부의 약속이지만 남북 간의 합의를 잘 이행하는 모양새를 국제사회에 보여 주는 건 외국과의 약속도 잘 이행할 거라는 신뢰를 사는 길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하고 약속해 놓으면 다음 정부에서도 지켜지겠구나"하는 신용을 얻는 길 아닙니까? 장소도 좋아요. 서울보다는 멀지만 평양과 제일 가까운 곳이 베이징 아녜요?

이명박 대통령의 아셈 연설에서 그런 얘길 하고, 그 다음에 금강산 풀고 전단 문제도 관리하고 그러면 북쪽이 거부할 명분이 없을 거예요. 근데 북한이 거부하지 못하게 하려면 좀 더 화끈하게 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오바마가 당선되면 북미관계는 굉장히 빨리 갈 텐데 오바마 취임 때까지 석 달도 안 남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빨리빨리 북미관계를 따라가야죠. 사실은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를 끌고 가야 하는데, 어쨌든 지금은 따라가기 위해서라도 이런 조치를 빨리빨리 취해나가야 합니다.

만약 아셈 연설 계기를 놓치면 내년 신년 초 같은 때 밖에 기회가 없을 겁니다.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이나. 그때는 시기적으로 늦죠.

김영삼 정부 시절에 북미관계가 우리 어깨 너머로 빨리 진전되는 것에 대해서 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니까 미국은 핵문제 해결을 위해 자꾸 뒤에서 딴소리 하는 한국을 좀 멀리하려고 했고, 북한은 북한대로 '너희들은 빠져라'고 해서 그게 통미봉남이 된 겁니다. 통미봉남은 북이 먼저 시작하지 않아요. 우리가 북을 어떻게 상대하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결과적으로 오는 겁니다.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빨리 개선해 나가는 건 그럴 필요가 있을 때 그러는 건데, 자기네 국가이익과 관련해서 개선시킬 필요가 있으면 핵문제와 관련해 대북 요구조건도 낮추죠. 그때 우리가 '왜 그렇게 양보 하냐? 왜 우리 안 데려 가냐? 우리 떼놓지 마라'고 해봐야 미국은 뒤도 안 돌아보고 갈 겁니다. 그건 이미 93~4년에 체험했어요. 앞으로 그러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그러니까 한미관계 잘 하면 통미봉남 어림없다는 건 그래서 (손사래를 치며) 말도 안 되는 거예요.

남북관계가 반발 정도 앞서갈 때 미국도 우릴 무시 못 하지, 뒤에서 '당신네 잘해놓으면 따라 갈게'하면 돌아보지도 않아요. 가다가 뒤돌아서 빨리 오라고 부르지도 않아요. 2009년부터 전개될 북미관계나 북핵문제 상황을 예측하고 그 시간을 역산하면, 지금 빨리 조치를 취해서 남북관계를 어느 정도 원상복구라도 시켜 놔야 합니다. 그러면 북미관계에 뒤쳐지지 않게 갈 수 있어요. 왜냐면, 남북간에는 그동안 축적된 게 있으니까. 그게 아직은 허물어지지 않았어요. 1년이 채 안 되었으니까...그걸 디딤돌로 하면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보다 반발 앞서 가면서 북미관계가 좀 더 좋게 발전되도록 선도(先導)하고, 그리고 그게 북핵 문제 해결 속도를 높이는 작용도 할 겁니다.

- 지난 13일 <문화일보> 칼럼에 정 전 장관님을 비난하는 글이 실렸는데 어떻게 보셨나요?
문화일보 10월 13일 오후여담 '슬픈 영혼' 전문

인간이 자신까지 속일 수 있다면 뭘 못할까?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에서 통일부 장관을 두번이나 지낸 정세현의 이야기. 정세현? 그는 청년시절 때려잡자 공산당식 반북 이데올로기를 생산해내는 공산주의 연구기관에 발을 디딘다. 그 분야에서 성실하고 머리가 좋다는 평판을 받아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을 거치면서 북한 전문가로 성장한다. 말하자면 그가 좌파정권의 통일부 장관을 지내면서 '수구 꼴통'이라고 비난했던 그 수구 반북주의의 유망주가 된다. 그는 김영삼(YS) 정권이 들어서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의 통일문제 담당 비서관으로 발탁된다. 그런데? YS 정권이 비전향장기수 이인모 노인을 조건없이 북송한 사건이 터졌다. YS정권의 일시적인 좌편향이었다. 그는 청와대 출입기자들 앞에서 부들부들 떨며 분노했다."북한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조치다. 북한한테는 엄격한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다. 어이? YS 정권 사람들의 수난시대가 열린 것. 그런데 정세현이 살아남는 것 아닌가? 그는 경기고에 서울대 출신, 수십년 지인도 그를 서울 출신으로 알고 있었다. 갑자기 "난 원래 호남 출신"이라고 커밍아웃. 국정원장 특별보좌역으로 들어가더니 통일부 장관으로 승승장구하면서 정부 내에서 좌파·친북 정책의 선봉에 선다. "엄격한 상호주의는 말도 안된다"며 끼리끼리 민족주의의 남측 대변인 역할에 충실한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TV토론에 나와 "통일이되면 북핵은 민족자산이 되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출세를 위한 자기 기만!

이명박 정권의 통일부 장관 김하중, 그는 김대중 청와대의 외교안보수석이었다. 그런 뒤 7년2개월동안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주중대사를 지낸 인물이다. 김정일도, 중국도 헷갈린다며 재미있어 할 것이다. 부끄럽다. 3대 정권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우에서 좌로 넘어간 정세현처럼. 좌·우를 넘나드는 게 '오토매틱'이다. 국감에서 자유선진당 국회의원 박선영이 김하중에게 "영혼을 판 것 아니냐"고 앙칼지게 물었다. 짜릿하다. 그랬더니 김하중이 박선영에게 "반성하세요"라고 대들었다고. 영혼을 팔고살 수 있다니, '영혼 매매(賣買)'라는 말인가? 이런 영혼 상인들을 중용한 정권의 영혼은 더 나쁘다. 슬픈 영혼들이여!

엄청난 인격살인이었습니다. 우선 호남 커밍아웃에 대해. 내가 전주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호남 출신이 별로 없어서 눈에 띄었어요. 당시에는 경기중 졸업생들은 전원 무시험으로 올라가고 나머지 60명을 서울 시내와 지방 출신 증에서 시험으로 뽑았는데, 한 도에서 그저 많아야 대 여섯 명입니다.

그래서 누가 전라도고 경상도인지 처음부터 표가 났습니다. 타교생이라고 특별대접도 받았죠. 사투리 흉내 내면서 은근히 놀리고 그랬지. 죄 아닌 죄가 됐어요. 참 웃기는 일이지. 쪼그만 나라, 그나마 두 쪽 난 나라에서 말이야. 경상도도 걔들대로 놀림을 받더라고. 억양 때문에. 충청도애서 온 애들은 말 느리다고 놀림 받고. 그러나 그건 세월가면 잊어버리는 거죠. 그래서 지금은 모두 친한 친구들입니다.

그 후에 대학에 가고 통일원에 들어오면서 이리저리 어울리죠. 한국사회에서는 처음 만나면 고향부터 따지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끼리끼리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면서 어울리는 세월을 살아 왔는데, 어떻게 서울사람으로 행세를 하면서 삽니까.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커밍아웃했다니? 나 참...

김대중 정부에서 통일부 차관으로 발탁된 경위나 배경도 난 모르겠어요. 근데 나는 77년 통일원에 들어가서 계속 통일 문제만 하다 보니까, 지방색이고 뭐고 그런 걸 떠나서 그때그때 일을 시킬만하다고 생각해서 승진도 시키고 발탁도 했겠지요. 김영삼 정부 때 통일비서관이 된 건 대학 선배님이 수석비서관이 되시면서 같이 일하자고 해서 그 연줄로 가게 됩니다. 그것만 확실히 내가 알아요. 노무현 대통령도, 그 분 대통령 되기 전까지 개인적으로 일면식도 없던 관계였어요.

그러니까 '호남출신 커밍아웃', 그건 정말 심각한 인격살인이고, 모욕적인 얘기고...고등학교를 서울서 나왔다고 해서 서울 사람 행세한 것처럼 몰아 부치는 건 무리지요. 아, 우리나라 사람들 처음 만나면 바로 고향, 본관 따지고, 파 따지고, 누구 친구 누구 형 하면서 관계 설정하는 건데, 그냥 짐작으로 아무렇게나 쓴 거죠.

그것 말고 또 사실관계가 틀린 게 몇 개 더 있어요. 남북관계와도 관련된 얘기라서 좀 설명을 하고 싶은데...먼저 이인모 노인 송환 때 내가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하면서 상호주의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부들부들 떨었다는 대목.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93년 3월 초에 이인모 노인 송환을 결정하고 3월 5일인가 6일인가 송환 방침을 발표했을 겁니다. 한완상 통일부총리께서 발표해요. 그리고 12일 북한이 NPT 탈퇴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송환 방침을 정했기 때문에 13일에 송환을 합니다.

근데 내가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근무 시작한 건 4월 초입니다. 신원조회 때문에 정식 발령은 5월 초에 납니다. 그러니까 4월에는 비공식 사전근무 형식으로 갑니다. 신원조회가 잘못되면 언제든지 원대복귀 해야 하기 때문에 기자들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더구나 나는 캠프 출신도 아니니까 그냥 일만 했죠. 정권 초기에는 수석비서관들도 기자들을 조심하는데, 그냥 비서관이 어떻게 기자들 앞에서 정부가 하는 일이 맘에 안 든다고 몸을 부들부들 떱니까. 이인모 노인 보낼 때는 청와대에 있지도 않았어요. 민족통일연구원 부원장이었어요.

그리고 그 때는 '상호주의'라는 말도 없었어요. 그건 98년 4월 베이징 비료회담에서 처음 나온 말이에요. 내가 수석대표였는데 비료를 주는 대가로 가을에 이산가족 상봉을 요구하는 걸 북에 설명하면서 상호주의라는 말을 썼어요. 북한이 70년대 남북대화 때부터 즐겨 쓰던 '호상성'이라는 말을 베껴 쓰기가 좀 뭐해서 우리식으로 번역을 해서 써봤던 겁니다.

대신 이런 말을 했죠. 남북의 현실을 봐서 상호주의를 하되 기본적으로 비동시로 할 수밖에 없다. 봄 비료와 가을 이산가족 상봉을 바꾸는 비동시. 그리고 비료를 주고 이산가족 상봉을 받는 비대칭. 또 하나 비등가. 우리 형편이 경제적으로 좀 낳으니까 우리가 돈이 들어가는 지원을 하고 북이 그 대가로 이산가족을 협조하는, 거기 드는 경비가 비료값보다 적으니까 비등가로 할 수밖에 없다는 단서를 붙였죠. 거기 취재간 기자들도 그런 내용을 다 들어서 압니다. 내가 말한 상호주의에는 그렇게 '비동시, 비등가, 비대칭'이라는 기본 전제가 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수쪽에서는 '비동시, 비등가, 비대칭'이란 중요한 말은 싹 떼버리고 그냥 상호주의란 말만 가지고 왜 상호주의 안 하냐고 햇볕정책과 1차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를 비판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어쨌든 김대중 정부 초기에 쓰기 시작한 상호주의는 분명히 비동시, 비등가, 비대칭이란 전제가 있죠. 선공후득이란 개념도 있고. 먼저 주고 나중에 받는다는. 그러니까 이인모 노인 송환할 때 상호주의 안 걸었다고 부들부들 떨었다는 건 사실관계 자체가 달라요.

또, 내가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 후에 TV에 나와서 핵무기는 민족의 자산이니까 그대로 둬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했다는 부분. 참 내...한 마디로 난 그런 얘길 한 적이 없습니다. 문화일보 그 분이 아마 그걸 착각했을 겁니다. 2002년 1월말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된 뒤에 2월 초에 북한의 미사일, 핵 개발 문제에 관한 KBS 심야토론이 있었어요. 토론 프로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서 안 나가야 되는데 멋모르고 나갔어요.

그때 패널 중에, 논리의 비약이 심하고 막 그냥 견강부회하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분이 있었어요. 북한이 미사일과 핵무기를 가지고 적화통일을 하려고 한다는 식으로 갖다 걸었어요. 그래서 내가 적화통일이란 개념 자체가 굉장히 낡은 거 아니냐. 적화라는 건 공산화시키겠는 건데 지금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소련도 다 포기했고, 중국도 거칠게 표현하면 자본주의화 되고 있고...그런데 아직도 공산화 통일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국민을 협박하냐. 그러면서 북이 핵이나 미사일 집착하는 건 적화통일을 하기 위한 게 아니라 일종의 대미 협상카드로의 효용이 크다고 생각지 않겠냐는 얘길 했어요.

그랬더니 C일보와 D일보가 거의 동시에 사설에 내 이름을 박아가지고 북한 대변인이냐, 정세현 장관 왜 이러냐 하고 공격했어요. 내 말 거두절미해서. 아마 그 분은 2002년 2월 초의 그 상황을 착각해서 2006년 10월의 상황으로 옮겨온 것 같아요. 그것도 내가 핵무기를 민족 자산이라고 말했다는 식으로 뻥튀기를 하다니...

나는 사실 북핵은 완전 제로 상태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미국이 어물어물하다가, 또는 동북아 국가들을 컨트롤하는 레버리지로서 유용하다고 보고 북핵을 슬그머니 인정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는 사람이에요. 몇 군데서 한 그런 강연 내용이 언론에 인용된 적도 있어요.

이렇게 다른 건 다 사실관계를 따지면 되지만, '호남출신 커밍아웃' 문제는 일지와 기록이 확인이 안 되니까 아주 고약하죠. 그러니까 더 분명히 해야죠. 전북 출신 공무원 모임인 삼수회라는 게 있습니다. 통일원 들어가서 가입했고, 통일부 장관 재임 시절엔 회장도 했어요. 무슨 커밍아웃입니까? 전북 출신 공무원들이 바봅니까?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간접적으로 누구를 통해서 왜 그런 글을 썼나 알아봤더니, 나름대로 자기는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썼다는데...그냥 이 정도로 얘기하고 말죠. 뭐 그거 가지고 싸우겠어요. "언제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모른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YS 때 S일보 기자로 청와대 출입했었는데, 안면도 있는 사이지만 보수적 시각을 갖다 보니 진보로 보이는 나를 소재로 삼았는지 그건 모르겠는데...

어떤 분이 그럽디다. 지난 10년간의 남북관계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딸리다 보니까, 그걸 적극 옹호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궁지에 몰아넣으면 영향력이 줄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그게 맞는 말인지 뭔지 잘 모르지만, 우리 정세토크 독자들을 위해 한마디 해두고 싶습니다.

그리고 김하중 장관에 대해서도 그랬던데...공무원들에 대해서 영혼이 있다 없다 얘기를 하는데, 기본적으로 공무원들이 밑에서부터 정무직(장차관)으로까지 커 나오는 동안에 정권은 계속 바뀌게 돼있습니다. 정무직하던 사람이 정권 바뀐 뒤에 자기발로 줄서고 다니거나 엽관운동해가지고 자리를 차지하면 영혼이 있네 없네 할 수도 있겠지만, 새 정부가 필요에 의해서 뽑아 쓴 직업공무원 출신을 보고 영혼을 팔았느니 뭐니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비현실적인 얘기죠. 공무원들한테 연속성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국가 행정이나 정책이 일관성을 가지고, 나라가 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는 데 일조한다고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現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경남대 북한대학원 석좌교수)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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