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책-리먼브라더스의 파산 방치에서부터 7000억 달러짜리 구제금융에 이르기까지-에 대해 가장 먼저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며 사태의 진전을 정확하게 전망해온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모처럼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는 평가를 내린 정책이 있다.(☞관련 기사: '혈세로 비싸게 사주기'가 금융위기 대책? )
하지만 이것 역시 미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내놓은 정책은 아니다. 영국 정부가 지난 8일 과감하게 실천에 옮기면서 곧바로 유로존 15개국이 12일 긴급 정상회의 끝에 이에 동참하는 합의를 내놓는 등 국제적인 흐름 속에 미국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방안이다.(☞관련 기사:유로존 15개국 "글로벌 금융위기 공동대책 합의")
이 방안의 핵심은 은행에 대해 직접 구제금융을 투입하는 동시에 이에 상응하는 주식을 잠정적으로 취득하는 것이다. 여기에 은행 간 대출에 대해 정부가 보증을 해주는 것이다.
"영국이 금융위기 대책 국제적 흐름 주도"
크루그먼은 13일 <뉴욕타임스> 칼럼 'Gordon Does Good' (원문보기)에서 "이번 대책이 효과를 발휘할지는 차치하고, 유럽과 미국에서 금융위기 해소를 위해 정확히 어떻게 할 계획인지 아직 모른다"면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와 앨리스테어 달링 재무장관이 전세계적으로 어떤 구제방안이 추진되어야 할지를 규정했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크루그먼에 따르면, 영국은 세계 금융중심지이기는 하지만 경제규모로 볼 때 미국과 비교가 되지 않으며 영국의 중앙은행은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영향력에 비해 보잘 것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영국의 리더십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크루그먼은 "영국 정부는 이번 금융위기를 냉철하게 파악하려는 의지를 보였고, 이에 따른 결론을 신속하게 행동으로 옮겼다"면서 "이러한 냉철함과 결단력은 미국은 물론 서구 어느 정부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영국 정부가 은행들에 투입하겠다고 밝힌 500억 파운드는 경제규모 차이를 감안하면 미국 정부의 7000억 달러 구제금융과 맞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영국식 해법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크루그먼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
주택가격 거품이 꺼지면서 모기지를 담보로 한 자산 보유자는 막대한 손실을 떠안게 됐다. 많은 금융업체들은 시장경제가 필요로 하는 신뢰를 제공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부채와 너무 적은 자본에 허덕이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들 금융업체들은 자산을 매각해 부채를 갚고 자본을 늘리려고 애를 썼지만, 이런 노력은 오히려 자산 가격의 악순환을 부르면서 자본이 더욱 줄었다.
주택소유자에 대한 지원은 바람직한 방안이지만 부실대출로 인한 막대한 손실을 막을 수 없다. 또한 현재의 금융 패닉 국면에 신속한 효과를 발휘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앞서 많은 금융위기에서 채택됐던 방안, 즉 정부가 부분 국영화를 대가로 금융업체들에게 자본을 직접 투입하는 것 이외에 대안이 없다.
"폴슨, 방향 바꾸고도 짜증날 정도로 꾸물거린다"
그런데 왜 미국 정부는 이런 방안을 신속하게 선택하지 않았을까. 크루그먼은 그 배경에 헨리 폴슨 재무장관의 수상한 입장을 직접 거론했다.(☞관련 기사: "폴슨, 누구냐 넌...")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벤 버냉키 FRB 의장조차 개인적으로는 '정부의 직접 자본 투입' 방안을 선호했다. 하지만 폴슨 장관은 7000억 달러 구제금융안을 발표할 때 이런 방안을 거부하고, 금융업체의 부실자산을 매입하는 방안을 택했다.
크루그먼은 "알다시피, 폴슨은 귀중한 몇 주의 시간을 보내고서야 방향을 바꾸었다"면서 "하지만 지금도 짜증날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개탄했다.
그는 "폴슨의 초기 대응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된 것이라는 느낌을 떨치기 힘들다"면서 "사익을 위하고 공익을 외면하는 철학을 가진 행정부에서 일하기 때문에 금융분야의 부분 국영화를 선택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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