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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 어땠습니까?

[기자의 눈] 라디오 연설, 그 불길함에 대하여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라디오 주례연설을 끔찍이 챙겼다. 2001년 취임 후 현재까지 총 404회를 했는데 단 한 주도 거르지 않았다. 주제가 특별할 때에는 부인 로라가 대신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하지만 라디오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숱한 거짓말을 남겼다.

"이라크는 12~14시간마다 의심스러운 금지된 무기 재료들을 이동시키면서 (유엔 대량살상무기) 사찰단원들과 폭탄을 감추기 위한 게임을 해왔다. 이라크의 무기 과학자들은 사찰단에 협조하지 말도록 협박을 받고 있다. 사담 후세인은 9.11 테러를 저지르는 테러리스트와 연계를 갖고 있고 이라크는 그들에게 생화학무기를 넘겨줬을 수 있다." (2003년 3월 8일자 라디오 연설)

요컨대, 후세인은 알카에다와 연계되어 있으며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14일 후 이라크를 침공하는데 있어 가장 큰 명분이 됐던 이 말은 역사에 길이 남을 거짓말로 기록될 것이다.

2005년 7월 30일자 라디오 연설에서는 이런 말도 했다. "세금을 공제하고 소비를 억제한 덕분에 오늘날 미국 경제는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경제는 지금 엄청난 위기에 빠져 있고, 이는 부시 시대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거짓말이 됐다.
▲ 1933년 1월 32일 히틀러의 첫 라디오 연설이 담긴 CD

라디오, 히틀러와 괴벨스의 '주둥이'

하지만 라디오를 애용하고 수많은 거짓말을 남겼던 인물은 따로 있다. 아돌프 히틀러. 그는 라디오가 대중 선동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의 말을 받아들여 '라디오 정치'를 적극 활용했다.

1933년 권좌에 오른 히틀러는 독일제국방송국(Reich Broadcasting Corporation)을 접수했다. 각종 프로그램에 엄격한 검열을 가했고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프로그램들을 내보냈다. 당시 독일 사람들이 나치당의 연례 전당대회였던 '뉘른베르크 집회' 소식을 처음 들었던 것도 라디오를 통해서였다. 나치 당국은 거리에 커다란 스피커를 쌓아 두고 뉘른베르크에서 전해지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당시 라디오는 일반인들이 소유하기에 너무 비싼 물건이었다. 이에 히틀러는 지멘스나 텔레푼켄 같은 라디오 제작 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해 폭스엠팽어(Volksempfanger. 국민라디오)를 싼 가격에 공급하게 했다.

1933년 이후 7년간 700만대가 보급된 폭스엠팽어는 소련이나 영국에서 날아오는 전파를 잡을 수 없게 만들어졌고 채널은 겨우 2개였다. 1938년에는 가장 싸고 대중적인 라디오 클라인엠팽어가 도입되었는데 사람들은 그걸 '괴벨스의 주둥이'라고 불렀다.

"언론은 정부의 피아노가 돼야 한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말들은 물론 모두 거짓말이었다. 2차 대전에서 독일이 엄청난 공습을 받고 연합군이 동서 양쪽에서 협공을 해 들어올 때도 나치는 승리의 길로 가고 있다고 선전했다. 독일제국방송국에서 만드는 뉴스 프로그램들은 불리한 전세를 암시하는 어떤 보도도 할 수 없도록 철저히 검열받았다.

심지어 1945년 4월 연합군이 베를린을 포위하고 히틀러가 지하 벙커에 은신해 있을 때에도 라디오에서는 독일이 곧 역사적인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괴벨스는 4월 20일 히틀러의 생일이 되면 독일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키는 괴벨스의 선전술에 의해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연합군이 자기네 마을에 들어올 때까지 독일이 전쟁에서 졌다는 걸 몰랐다. 연합군의 <베를린 라디오>가 히틀러의 자살소식을 전하고서야 비로소 패전 사실을 깨닫게 됐다.

"대중은 거짓말을 듣고 처음엔 부정하고 그 다음엔 의심하지만 거짓말을 되풀이하면 결국 믿게 된다. 언론은 정부의 손 안에 있는 피아노가 돼야 한다."

괴벨스는 대중 선동에 관한 수많은 '명언'을 남겼고,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는 전후 괴벨스의 대중 선동 기술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로널드 레이건 이후 미국 대통령의 주례연설이 정착된 것도, 부시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을 그토록 아꼈던 것도 결국 괴벨스의 유산인 것이다.
▲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 첫 녹화 장면 ⓒ청와대

왜 굳이 라디오여야 했나

히틀러 시대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도 라디오가 있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노변정담(fireside chat). 루스벨트의 라디오 연설을 일컫는 이 말은 1930년대 대공황의 고통을 겪고 있던 미국인들을 마치 난로가에서 속삭이듯 설득하고 다독인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언론전문지 <미디어오늘>의 10일자 칼럼에 따르면 노변정담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미화된 측면이 많다. 루즈벨트는 뉴욕 주지사 시절부터 라디오 연설을 했는데, 정적을 향한 강력한 공격 수단으로, 혹은 자기가 제출한 법안을 통과시키는 압력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노변정담이라는 '훈훈한' 이름은 그같은 공격성을 순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루스벨트의 라디오도 히틀러나 부시의 라디오와 다를 바 없는, 정치 선전의 유용한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물론 히틀러의 그것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루스벨트도 라디오를 통해 대중의 눈과 귀를 가리는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이야 라디오가 아니라도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그렇지만 히틀러와 루스벨트, 부시의 사례를 볼 때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도구로 라디오 연설을 택한 것은 어딘지 모르게 불길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의 첫 방송이 나간 13일 오전, 출근길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에겐 희망이 있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뜨거워 졌을까? 혹시 히틀러와 괴벨스를 떠올린 건 아닐까? 이도 저도 아니고 그냥 채널을 돌려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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